입력2023.04.03. 오전 10:49 수정2023.04.03. 오전 10:50
홍콩매체 "특히 한국 업체에 미국 따르지 말라는 경고 신호"
"마이크론, 미 정부의 對中 제재 밀어붙였다는 의혹…외국기업 첫 조사"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중국이 미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생산업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대한 조사에 나선 것은 한국과 일본 같은 이웃 나라에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문가를 인용해 3일 보도했다.
상하이의 반도체연구회사 IC와이즈의 왕리푸 분석가는 중국 반도체 시장이 미국과 동맹에 의해 포위된 상황에서 개시된 이번 조사는 한국과 일본에 보내는 경고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은 대만과 함께 미국이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고자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의 일원으로, 이들 나라의 고위 관리들은 지난 2월 첫 번째 화상 회의를 개최했다.
왕리푸는 특히 한국이 중국의 마이크론 조사에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에 여전히 반도체 제조 시설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해당 조사는 미국의 행동을 따르지 말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해당 경고가 미국의 중국 상대 수출 규제에 동참한 네덜란드에도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지난달 31일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 제품에 대한 인터넷 안보 심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안보 심사 이유에 대해서는 "핵심적인 정보 인프라의 공급망 안전을 보장하고, 잠재된 제품의 문제가 인터넷 안보 위험을 일으키는 것을 예방해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안보 심사 내용이나 문제가 드러날 경우의 대응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마이크론은 지난 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CAC와 소통하고 있으며 전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외국 반도체 회사에 대해 사이버 안보 심사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마이크론에 대한 조사를 발표하기 전까지 중국은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를 시행한 것에 대해 별다른 반격을 가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마이크론이 자국 기술 산업에서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고 왕리푸는 말했다.
그는 "마이크론이 미국 정부의 대중 제재 부과를 뒤에서 밀어붙였다는 의혹이 있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만든 '반도체 칩과 과학법'(반도체법)에 서명한 이래 마이크론은 다른 몇몇 미국 반도체 회사들과 함께 로비자금 지출을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고 SCMP는 전했다.
반도체법은 미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모두 2천800억 달러(약 366조원)를 투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지원과 연구 등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약 72조4천억원)를 지원하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는 25%의 세액 공제를 적용해준다.
이후 마이크론은 상하이의 D램 설계 센터를 폐쇄했고 약 150명의 중국인 엔지니어에게 미국이나 인도로 이전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앞서 마이크론은 2021년 보고서에서 중국이 자국 D램 제조사들을 지원하면서 자사의 성장이 제한되고 중국 시장에서 내몰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네덜란드 ASML의 반도체 생산 장비나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반도체와 달리 마이크론의 제품은 중국 YMTC나 한국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제품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대만에 이어 마이크론에 세 번째로 큰 시장으로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 당국의 조사는 마이크론이 취약해진 상태에서 진행된다.
지난주 마이크론은 2023 회계연도 2분기(작년 12월∼지난 2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3% 급감하고 23억 달러(약 3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20년간 최악의 분기 손실이다.
이에 마이크론은 세계 반도체 수요 감소에 따라 올해 약 15%(약 7천500명)를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당국이 마이크론에 대한 조사에 나서면서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사들이 잠재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으며, 중국에서 사업하는 다른 다국적 기업들이 해당 조사 결과를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SCMP는 전했다.
중국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의 조사는 최소 30일이 걸린다.
그러나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의 경우 1년의 조사 끝에 80억2천600만 위안(약 1조5천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되는 등 사안에 따라 조사 기간이 훨씬 길어질 수 있다고 베이징의 반도체 전문 변호사 펑충은 말했다.
그는 "중국이 마이크론에 다양한 처벌과 제한 조치를 가할 수 있다"며 "국가보안법상 더 엄격한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왕리푸 분석가는 벌금은 가장 가벼운 경고일 수 있다며 그 후에도 아무런 반성이나 변화가 없다면 시장 접근 금지 등의 제한이 가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움직임은 '시장은 당신에게 열려있고 일정한 당근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우리를 화나게 하면 채찍으로 받아칠 것이다'라는 중국 정부 관리들의 태도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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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