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서울에 흩어져 있는 빈집들
시세 60%의 행복주택으로
대학가 인근은 경쟁률 높아
시민 공모전으로 빈집 정비
24건 중 1건만 현재 진행 중영국과 홍콩에는 공실세가 있다. '빈집'에서 세금을 거둬들인다는 거다. 쉽게 말해 집을 비우지 말란 취지다. 빈집은 그 자체로 낭비여서다. 우리나라에 그런 세금은 없다. 대신 빈집을 주택으로 바꾸거나 주민편의시설로 바꾸려는 정책은 있다. 하지만 빈집을 바꾸려는 그런 시도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서울에 있는 1년 이상 빈집은 5944호다.[사진=연합뉴스]
집이 모자란다는 서울에도 빈집이 있다.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비어 있거나, 아직 입주하지 못해 잠깐 비어 있는 아파트를 말하는 게 아니다. 1년 이상 아무도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누구도 수도를 사용하지 않은 '찐 빈집'은 서울에도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이 실시하는 '빈집실태조사'에서 드러난 1년 이상 비어 있는 서울의 집은 총 5944호였다. 많은 수다.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 세대수(6335호)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다. 서울에 있는 모든 빈집을 한데 모으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 하나가 생긴다는 얘기다. 2022년 기준 서울 무주택 가구가 210만 가구에 이른다는 걸 생각하면 이 빈집들은 그 가구의 0.3%를 담아낼 수 있다. 서울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자체가 빈집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세우는 이유다.
서울에서 빈집을 활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정책은 행복주택이다. 도심에 있는 직장으로 청년ㆍ신혼부부가 출퇴근하기 좋은 곳에 만드는 행복주택은 시세의 60~80%로 공급한다. 서울도시주택공사(SH)는 '초행지붕'이란 이름으로 빈집을 바꾼 행복주택 100호를 공급했거나 계획 중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행복주택은 적게는 4호, 많게는 12호가 한동에 있다. 대다수의 빈집이 골목에 있는 데다 자동차로 접근이 어렵다는 걸 감안하면 누군가는 "빈집을 행복주택으로 만드는 건 쓸모없는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 내에서 생활해야 하는 대학생, 청년들에겐 필요한 기회다.
무주택 청년들에게 빈집을 바꾼 행복주택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경쟁률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2023년 2차 행복주택 모집에선 특히 대학교 인근 지역에 둥지를 튼 '초행지붕'의 인기가 좋았다. 연세대, 홍익대 등이 가까운 '초행지붕 연희'의 경우 전용면적 24㎡의 원룸형 주택에 지원한 대학생들은 69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2023년 서울시는 이런 빈집들을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해 공모전도 개최했다. 대상은 SH가 보유하고 있는 85개의 빈집 필지였다. 서울시는 시민들이 제시한 아이디어 중 24건을 채택했다. 아이디어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건 빈집을 '주택'으로만 사용할 게 아니라 사회교류의 공간으로 재창조하자는 제안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는 사회교류의 공간으론 도시텃밭, 놀이터, 문화시설 등 다양한 용도를 검토했다. 집을 비워놓기보다는 주민들에게 필요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도 7~8월께 공모전을 알리고 9월 심사를 통해서 10월에 당선작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빈집을 바꾸는 속도가 더디다는 거다. 첫째 이유는 예산과 사업 속도다. 서울시는 올해 빈집을 생활 SOC 등으로 정비하기 위해 11억3900만원을 책정했다. 지난해 7억5100만원보단 늘었지만, 빠른 사업추진을 예측할 순 없다.
2023년 진행했던 '빈집 공모전' 당선작의 사업화도 더디다. 당선작 24건을 올해 사업에 넣어볼 계획이었는데 실제로 반영한 건은 많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북구에서 생활정원 등을 포함한 주민커뮤니티를 제안한 당선작 1건을 진행 중이다"면서 "하지만 아직 설계 단계여서 윤곽이 완전히 드러난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빈집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빈집을 둘러싼 개발 환경 때문이다. 빈집이 있는 지역이 도시정비사업에 포함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2021년 서울 영등포 신길에 계획했던 '초행지붕'은 도시복합사업 탓에 청약 신청 자체가 무산됐다. 계획대로 진행했다면 2022년 7월 행복주택 입주자들이 새 보금자리를 찾았겠지만 지금 그 자리엔 높은 펜스만 쳐져 있다.
비단 신길만이 아니다. SH가 관리하거나 소유한 빈집 중엔 도시정비사업지에 포함된 곳들이 적지 않다. 강북구 수유동, 성북구 등이다. 빈집이 있던 땅에 행복주택을 짓거나 주민편의시설을 만들어도 대규모 도시정비사업이 시작되는 순간 주민이 거주하거나 접근하기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정비계획이 잡혀 있는 사업지 속 빈집에 예산을 투입하는 건 쉽지 않다.
낡은 집이 있는 지역에 빠른 재개발이 가능하다면 빈집 사업은 애초부터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은 재건축을 하기도 쉬운 환경이 아니다. 지역이 사업지로 지정됐다고 하더라도 철거 후 새집이 언제쯤 만들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때까지 사업지 내 빈집은 계속 비어 있을 뿐이다. 이 빈틈을 메울 수 있는 빈집 정책은 없는 걸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