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입지 좁아져
그래픽=양인성
한때 지역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던 지방은행들이 생존 위기에 내몰렸다. 전국 영업망을 기반으로 한 시중은행의 침투와 플랫폼을 등에 업은 인터넷전문은행의 매서운 성장세에 지방은행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최근엔 지방은행의 맏형 격인 부산은행이 24년 동안 맡아온 부산시금고를 시중은행에 빼앗길 처지에 놓이면서 ‘지방은행 수난시대’라는 말도 나온다.
가계 대출, 인터넷은행에 따라잡혀
5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3월 말 기준 경남·부산·전북·광주·제주은행과 시중은행으로 전환한 iM뱅크(옛 대구은행) 등 6곳의 가계대출 잔액은 68조8627억원으로 집계됐다. 카카오뱅크·토스뱅크·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 3곳의 가계 대출 잔액은 66조483억원으로 지방은행을 바짝 뒤쫓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2017년 국내에 처음 출범했는데, 출범 8년 만에 지방은행 가계 대출 규모를 따라잡은 것이다.
3년 전인 2021년까지만 해도 지방은행 가계 대출 규모(58조7469억원)는 인터넷전문은행(25조4363억원)의 2배 이상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의 가계 대출 규모는 2022년(36조1539억원), 2023년(48조2118억원) 등 큰 폭으로 성장하다가 올해엔 60조원을 넘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낮은 금리뿐만 아니라 지난해 출시된 대출 갈아타기 서비스 등의 영향이다.
또, 은행들이 싼값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요구불예금도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쏠리는 추세다. 모임통장과 같은 각종 이색 통장 등 고객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적극적으로 시장에 내놓으면서 고객을 확보한 결과다. 요구불예금은 예금주가 지급을 원하면 언제든지 조건 없이 지급하는 예금으로 통장 이자율이 굉장히 낮다. 은행은 요구불예금을 높은 이자로 대출해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은행 자금 조달의 효자 노릇을 한다.
2021년까지만 해도 지방은행의 요구불예금은 28조원 수준으로 인터넷 전문은행(약 14조)보다 많았다. 하지만 2022년 인터넷전문은행에 역전당해, 2024년엔 지방은행(26조5200억)과 인터넷은행(48조2857억)은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그래픽=양인성
비수도권 지자체 금고 낙찰률은 50% 수준
심지어 최근엔 시중은행이 지방자치단체 금고 유치에 발을 뻗으며, 지방은행은 지자체 금고 사업권 확보도 쉽지 않다. 이자율이 연 1%가 채 안 되는 지자체 금고는 지방은행의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여겨진다. 지자체 금고로 선정되면 해당 지자체와 산하기관의 예산과 기금을 관리할 수 있다.
최근엔 부산시금고를 두고 부산은행과 시중은행이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시 전체 예산의 70%를 차지하는 주금고는 2001년부터 부산은행만 신청하며 독점해왔다. 하지만, 지난달 14일까지 진행된 올해 주금고 공모에는 부산은행뿐만 아니라 KB국민은행, IBK기업은행도 뛰어들었다. 올해 24년 만에 처음으로 은행 간 경쟁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를 두고 지역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에선 “지역 소멸을 부추기는 행위를 자행하는 지역 시금고 유치 과당경쟁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등 비판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5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비수도권 지자체 금고 낙찰률은 최근 3년 연속 90%를 웃돌고 있다. 반면, 지방은행의 낙찰률은 3년 연속 50% 안팎으로 2건 중 1건만 낙찰받는 수준이다.
주담대 틈새 시장도 가로막혀
지방은행들은 활로를 찾기 위해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주담대 시장에 뛰어드는 차별화 전략을 펴기도 했다. 지난달 초 부산은행이 1조원 한도로 선보인 주담대 특판은 최저 2% 후반대 금리로 불과 13일 만에 완판됐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가계 대출 급증을 막기 위해 은행들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면서 한 달 만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시중은행들이 주담대 문턱을 높이는 추세에 맞춰, 지방은행들도 ‘풍선 효과’를 막기 위해 주담대 금리를 잇따라 올리고 있는 것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iM뱅크는 전날부터 주담대 금리를 0.5%포인트 인상했다. 부산은행과 경남은행도 지난달 말부터 각각 0.4%포인트, 0.2%포인트씩 주담대 금리를 올렸다.
지방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금리를 올리면서 지방은행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아보이자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아졌다”며 “사실 지방은행들은 올해 가계 대출 증가율이 미미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출 여력이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내고 “기업 및 기관 영업에서 시중은행의 지방 침투가 가속되고, 가계 부문에서 인터넷전문은행과의 금리 경쟁이 심화되면서 지방은행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며 “지방은행의 역할이 약화되긴 했어도 지역주민과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면서 지역 경제를 지원하는 지방은행의 역할은 필요하다”고 했다.
☞지방은행
전국적인 영업망을 갖춘 시중은행과 달리 본점을 지방에 두고 영업 구역도 해당 지역에 집중돼 있는 은행을 말한다. 시중은행과 인터넷은행은 전국을 영업 구역으로 하지만, 지방은행은 정관에서 특정 지역으로 영업을 제한하고 있다. 최소 자본금은 시중은행은 1000억원인 데 반해, 지방은행과 인터넷은행은 250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