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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3-04-25 11: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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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강래구 구속영장 기각... “가진 자들의 전성시대 올까 무섭다”
내용

 

입력2023.04.24. 오전 5:31   수정2023.04.24. 오후 12:57

 

[승재현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하고,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의 핵심 인물인 강래구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강래구(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습니다. 이번 사건 첫 구속영장이 기각된 건데요. 서울중앙지법 윤재남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436자의 다소 긴 기각 사유를 통해 “강씨의 주요 혐의에 대한 증거가 일정 부분 수집됐다”면서도 검찰이 주장해 온 강씨의 증거 인멸 의혹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결정문, 어떻게 보아야 하는 걸까요?
 

먼저, 구속영장 발부 사유는 어떻게 되나요?


우리 형사소송법 제70조에선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점과 피의자가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구속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속 사유를 심사함에 있어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토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유의 입증은 누구에게 있으며, 어느 정도 입증해야 하나요?


당연히 구속 사유에 대한 입증은 검사에게 있습니다. 무죄 추정을 받는 피의자는 불구속 수사가 원칙입니다. 다만 구속 사유 입증 정도는 유죄 판단에 필요한 ‘합리적 의심을 넘는 고도의 개연성’까지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겠구나’ 정도의 입증으로 족합니다. 이를 법률적 용어로는 ‘소명’이라고 합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한 교민 사무실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이번 강래구씨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판사에 대한 비난은 자제해야 합니다. 그 사건에 대해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은 증거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판결 과정에서 든 법리에 다툼이 있어 법률전문가의 비판을 받는다면 판사는 수인해야 합니다.

먼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나온 녹취록을 종합해 보면 강씨에 대한 정당법,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범죄 소명은 되었다고 보입니다. 영장전담판사 역시 “피의자의 주요 혐의에 대한 증거는 일정 부분 수집되어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다음으로 ‘구속의 필요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강씨 구속영장 기각하면서 영장전담판사는 “수사에 영향을 줄 정도로 증거를 인멸했다거나 장차 증거를 인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형사소송법에선 ‘증거를 인멸할 염려’에 대한 ‘소명’이 있다면 영장을 발부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영장전담판사는 “수사에 영향을 줄 정도로 증거를 인멸하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아니라 ‘증거인멸의 결과’가 있었는지 판단했는데요. 법문과는 맞지 않습니다. 실제 증거를 인멸했는지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으면 족합니다.

다음으로 구속의 입증은 ‘소명’에 이르면 됩니다. ‘증명’에 이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영장전담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단정할 수 없다’는 문구는 소명으로 족한 구속영장결정문에서 사용되어야 할 문구가 아닙니다. 유·무죄 증명이 필요한 본안 재판 판결문에서 사용될 문구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장전담판사는 “피의자가 그동안의 소환조사에 임해왔고, 피의자의 주거, 지위 등을 감안할 때 피의자에게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피의자의 지위를 감안해 도망의 염려가 없다고 판시한 점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강래구씨에게 적용된 정치자금법(정치자금부정수수죄)은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매우 엄중한 범죄입니다. 피선거권이 박탈되면 국회법 제136조에 따라 당연 퇴직해야 합니다. 즉 해당 혐의에 대한 유죄 확정은 정치적 사형 선고가 될 수 있습니다. 범죄가 중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도망할 염려가 있는 것입니다.

영장전담판사는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라는 지위를 감안해 도망할 우려가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참으로 가진 자, 있는 자들의 전성시대가 올까 무섭고 두렵습니다. 공공기관 상임감사가 도망할 염려가 없다면 판사, 검사,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은 절대 도망할 염려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무죄 추정을 받는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는 신중해야 합니다. 그게 정의입니다. 그러나 구속영장발부는 형사소송법의 요건에 맞아야 합니다. 구속요건을 추가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입증의 정도를 강화해서도 안 됩니다. 법관에겐 법을 해석할 권한이 있습니다. 법을 창조하는 권한은 없습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선DB
 

이가영 기자 2ka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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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202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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