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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3-05-15 08: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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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번주 60-다음주 36시간… 獨, 6개월 단위 ‘유연근로’
내용

 

입력2023.05.15. 오전 3:01

 

일 몰릴 땐 하루 10시간까지 근무
‘6개월 평균 8시간’만 맞추면 돼
‘집중근로’ 獨, 韓보다 생산성 높아
3월 29일 독일 중부 바이에른주 하멜부르크에 있는 라이펜뮐러 고무 재생공장. 생산직 근로자들이 기계 앞에서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오전 근무조 25명은 오전 6시 45분부터 오후 3시 반까지, 오후 근무조 10명은 오후 3시 반부터 11시 45분까지 일한다. 이 회사 우베 뮐러 대표는 “일이 몰릴 때는 하루 최대 10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더 오래 일하려면 지역 노동관청의 허가를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독일의 법정 근로시간은 ‘6개월 내 하루 평균 8시간, 1년 내 일주일 평균 48시간(주 6일 기준)’이다. 초과근로 때는 하루에 최장 10시간, 주 최대 60시간 일할 수 있다. 많은 사업장은 한 주 초과근로를 하면 다음 주 덜 일하는 식으로 ‘8시간, 48시간 평균’을 맞춘다.

같은 달 31일 기자가 찾아간 헤센주 프랑크푸르트의 한 화학기업 사무실의 책상은 30%가량 비어 있었다. 직원들이 돌아가며 ‘주 2회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에 출근한 직원들은 자신의 팀 매니저에게 출근 시각을 보고하고 8시간 근무한 뒤 자율적으로 퇴근했다. 재택근무 때도 마찬가지였다. 카르스텐 리데 인사 담당 시니어 매니저는 “바쁜 주에 초과근무를 했다면 그다음 주에는 적게 일하는 식으로 하루 평균 8시간을 맞춰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과근로 시간을 단축근로로 상쇄하는 대신, 모아서 보상휴가로 소진하는 근로자들도 있었다. 리데 매니저는 “겨울방학 시즌에는 연차와 보상휴가를 붙여 장기휴가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알프스가 가깝기 때문에 2, 3주씩 스키 여행을 가는 직원이 흔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제도가 가능한 이유는 ‘정확한 근로시간 기록’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뮐러 대표는 “트럭 운전사들도 운행시간 기록 기기로 근로시간을 정확히 기록한다”고 말했다. ‘만약 허가 없이 하루 10시간, 주 60시간을 넘겨 일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뮐러 대표는 “당국에서 불시 감독을 나온다. 불법이 적발되면 일을 못 하게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독일 근로자들은 ‘짧게, 효율적으로, 유연하게’ 일하고 있었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근로시간 자료를 보면 독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349시간, 한국은 1910시간이었다. 근로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근로시간으로 나눈 노동생산성은 올해 독일이 시간당 69달러(약 9만2000원), 한국이 43달러(약 5만7000원)였다. 독일이 한국보다 집중적,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짧게 일하는 독일이 유럽 최대 제조 강국일 수 있는 비결이었다.

최근 한국은 저출산과 고령화 위기가 노동시장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낡은 고용노동 시스템, 임금 체계, 근로시간 제도는 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갉아먹고 있다. 동아일보는 ‘우리나라 고용노동 시장에 미래가 있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앞서 위기에 직면하고 해답을 찾아 나선 선진국들,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는 국내 기업과 근로자의 현재를 지난 석 달간 살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일터’의 방향을 짚어 본다.
 

獨,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기 정착… 노동생산성 韓의 1.6배


 

법정근로 ‘하루 8시간’ 규제 속
필요땐 주 60시간까지 유연성 부여
초과근무땐 돈-휴가로 확실한 보상
크리스마스 연휴 ‘한달 휴가’도 가능


3월 30일 오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한국타이어 유럽지역본부 사무실. 한창 일할 시간인데 자리 곳곳이 비어 있었다. 재택근무하는 직원도 있고 직원 간 출퇴근 시각도 다르기 때문이었다. 직원 크리스티안 뷔트너 씨는 “오늘은 오전 8시 출근했고 30여 분 휴식시간 포함해 총 8시간 근무한 뒤 오후 5시쯤 퇴근할 예정”이라며 “일이 많을 때는 10시간 근무할 때도 있다. 그러면 일이 적은 다른 날에 8시간(법정근로시간)보다 더 짧게 근무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근무 방식은 독일에서 매우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일보가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와 공동 기획으로 세계의 일터를 취재한 결과 한국과 사뭇 달랐다.
 

● 獨 근로시간, 규제 안에서 유연성 부여

독일의 법정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 초과근로 포함 최대 10시간이다. 근로일 사이에는 반드시 11시간 이상 휴식해야 한다. 의료인, 소방관 등 특례 업종을 제외한 전 업종에 적용되는 강력한 규제다.

하지만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하루 8시간’ 규제는 하루 단위가 아니라 ‘6개월 평균 하루 근무시간’으로 평가한다. 그 결과, 일주일로 환산하면 주 5일 근무 시 40시간, 주 6일 근무 시 48시간을 일할 수 있다. 초과근로를 하면 최대 60시간(주 6일 기준)도 가능하다. 이렇게 일하면 다른 날 근무시간을 줄여 규제 기준을 맞춰야 한다. 독일 정부의 노동정책 싱크탱크인 노동시장·직업연구소(IAB) 연구부서장을 맡고 있는 마르크스 프롬베르거 박사는 “‘강하게 규제하는 동시에 유연한 제도’”라고 표현했다.

독일의 ‘유연한 근로시간(Flexible Arbeitszeit)’ 체계는 1978년 유럽 최대 산별노조인 독일금속노조(IG Metall)가 법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5일 기준)에서 35시간으로 줄이기 위해 단축 운동을 벌인 데서 기인했다. 7년 투쟁 끝에 금속노조는 산하 근로자의 법정근로시간을 주 38.5시간으로 줄였다. 하지만 생산성 하락을 우려한 기업들이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면서 관련 유연 근무가 확산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각국의 노동생산성을 100이라고 가정했을 때 독일의 노동생산성은 1970년 38.8에서 2022년 106.5로 급등했다.

반면 한국은 2018년 근로시간을 주당 52시간(기본 40시간+연장 12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시간 제도를 도입했다. 프롬베르거 박사는 “한국의 제도는 장시간 근로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길게 일해야 할 때, 일을 하고도 불법 초과근로라 임금을 받지 못하는 ‘공짜 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도 같은 문제의식에 따라 근로시간을 주 단위에서 ‘연(年)’ 단위까지 확장해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을 3월 내놨지만 ‘주당 근로시간이 최장 69시간까지 길어질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가 불거지면서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 ‘몰아서 일하고 몰아 쉬기’ 정착

유연한 근로시간 운영의 대가로 독일인들은 ‘장기 휴가’도 누리고 있다. 초과근로를 휴가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각종 유연 규정과 함께 도입된 근로시간계좌제 덕이다. 현지 제조업체 인사 담당자는 “근로자가 55분 초과 근로했다면 (근로시간계좌에) 정확히 55분이 적립된다”며 “분 단위까지 기록해서 적립하기 때문에 이를 모아 단축근무나 연차로 쓴다. 보통 연 30일 주어지는 연차에 붙여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 연휴 시즌에 긴 휴가도 간다”고 전했다.

육아나 학업 등의 이유로 근로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면 사업자와 협상을 통해 바꿀 수 있다. 독일에서 근로시간의 큰 틀은 산별노조와 산별 사업자 대표 간 협상으로 정해진다. 그러나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개별 근로자 대표와 사업자가 각자의 직군, 직무, 개인에 맞게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프롬베르거 박사는 “1970∼80년대 노사가 노동생산성 제고라는 공동의 목적 아래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 도입에 합의했다. 노사 등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논의해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 “단시간 압축해 높은 노동생산성 발휘”

유연한 근로시간 운용으로 국가 경쟁력, 개인의 여가까지 확보한 독일이지만 나름의 고민도 있다. 법정근로시간이 짧고 연장근로시간도 하루 2시간으로 제한된 탓에 일부 기업 현장에서는 한국처럼 ‘공짜 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근로시간 다양화, 재택 근무가 확산하면서 기업은 노동 인력과 생산성 관리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4위 경제 대국이지만 앞으로도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본 소재 노동경제연구원(IZA)에서 만난 수석연구원 울프 리네 박사는 “독일도 저출산, 고령화로 노동력은 줄고 있고, 노동시장의 주류를 이룰 소위 ‘Z세대’들은 장시간 일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근로시간을 유연하면서도 능률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내 ‘주 4일제’ 도입 논쟁을 언급하며 “5일간 하던 일을 4일 동안 ‘압축적으로 끝내는’ 제도로 이해해야 한다. 노동생산성을 올리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하멜부르크·프랑크푸르트·본=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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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202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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