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그림자 금융 상징’이자 ‘부동산 위기 중심’ 중즈그룹 끝내 파산
중즈그룹 부채 규모 4600억 위안, 총자산은 2000억 위안에 불과
헝다그룹 사태로 급속히 나빠진 자금사정에 비구이위안이 직격탄
中, 부동산 시장 부양 위해 담보보완대출 방식 3500억 위안 공급
중국 베이징시 제1중급인민법원은 지난 5일 “중즈그룹의 총자산이 부채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채무를 상환할 능력도 없다”며 이 회사가 낸 파산신청을 받아들였다고 관영 신화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룹 산하 부동산 신탁회사인 중룽(中融)국제신탁이 지급불능을 선언한지 3개월여 만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파산은 중국 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 중 하나"라며 "가뜩이나 취약한 소비 및 투자심리에 더욱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즈그룹의 파산은 (중국) 신탁 부문에 잠재적인 균열을 드러냈다"며 덧붙였다.
중즈그룹은 지난해 11월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우리가 4600억 위안(약 84조 5000억원) 규모의 부채가 있는데, 총자산은 2000억 위안”이라고 공개했다. 이어 창업자 셰즈쿤(解直錕) 최고경영자(CEO)가 2021년 사망한 이후 "고위 임원과 핵심인력이 이탈한 데다 셰즈쿤 CEO의 사망으로 인해 내부 경영진은 난장판이 되고 그룹의 투자상품도 잇따라 부도 처리됐다"며 부실원인을 설명했다.
이 때문에 중즈그룹은 공안(경찰)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베이징 공안은 중즈그룹 자산운용 부문이 364억 달러(약 48조원)의 적자를 냈다며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그룹 핵심 관계자들이 잇따라 체포됐다. 북경상보(北京商報)에 따르면 중즈그룹 산하 상장사 톈산쉬무(天山畜牧)와 메이지무(美吉姆)는 11월29일 각각 마창수이(馬長水·60) 회장, 마훙잉(馬紅英·39) 회장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밝혔다.
베이징 공안국 차오양(朝陽)분국은 앞서 25일 소셜미디어(SNS) 웨이신(微信·Wechat·중국판 카카오톡)을 통해 중즈그룹 용의자에 대해 '형사강제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형사강제조치는 형사사건 용의자의 도주와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소환과 구금, 체포 등 인신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을 말한다. 마창수이 회장은 중즈그룹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와 부회장을, 마훙잉 회장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은 셰 회장의 최측근 인물이다.
1995년 설립된 중즈그룹은 ‘큰손’들과 우량 기업들의 자금을 끌어들여 은행 대출을 받기 힘든 중소기업이나 부동산 개발업체들에 돈을 빌려준 뒤 수익을 챙기는 신탁산업, 이른바 그림자 금융 사업을 해왔다. 한때 자산이 1400억 달러를 넘기도 했지만, 당국이 시장과열을 막기 위해 2020년 하반기부터 엄격한 규제에 나서면서 자연히 그림자금융도 흔들려 곤경에 빠지게 된 것이다.
중즈그룹의 위기는 지난해 8월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Country Garden)이 디폴트(채부불이행)를 선언하면서 본격화했다. 중룽국제신탁 등 그룹 산하 4대 자산관리 업체들이 유동성 위기로 고객들에게 투자수익금 지급을 중단하면서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중룽국제신탁이 3500억 위안의 만기상품 상환을 연기했는데, 비구이위안 등에 투자한 게 유동성 위기를 불렀기 때문이다.
격분한 중룽국제신탁 고객 20여명은 그룹 본사를 찾아가 투자원금과 이익금을 돌려 달라는 시위를 벌였고, 공안이 이를 간신히 진압했다. 중국 신탁회사들은 부동산 경기호조에 힘입어 그동안 은행예금보다 높은 6~10% 수익률을 내건 재테크상품 '리차이‘(理財)를 판매해 재미를 톡톡히 봤다. 그런데 투자한 부동산 업체가 도산하면서 이익금은커녕 만기가 돼도 원금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중국 당국이 두팔을 걷었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부동산 부양을 위해 통화정책수단인 담보보완대출(PSL) 방식을 통해 3500억 위안을 정책은행에 공급한 것이다. 인민은행은 지난해말 국가개발은행과 중국수출입은행, 중국농업발전은행 등 3개 정책은행에 PSL 3500억 위안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정책은행에 투입한 PSL은 이른바 부동산 3대 프로젝트, 임대주택 건설·도시 판자촌 재개발·공공 인프라시설 건설에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전했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건설사들에 사상 처음으로 무담보 은행 대출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은행들이 일부 건설사에 운전자금을 무담보로 대출해주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전역 미분양 주택 수백만 채와 미완공된 주택들을 소화하는데 필요한 자금 4460억 달러를 수혈하려는 가장 강력한 시도로 평가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시행할 경우 대출자금을 일상적 운영자금으로 쓸 수 있기에 건설사들은 잠재적으로 그만큼 부채상환을 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건설사에 대한 대출은 토지나 자산을 담보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번 정책이 “전례 없는 부동산업체 지원”이라고 블룸버그는 강조했다.
당국은 이미 부동산 구매자 대상 담보대출 규제 완화, 2000억 위안 규모의 특별대출 등 다양한 정책을 도입한 바 있다. 다만 이런 조치가 부동산 업체들의 상환능력과 의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이들 업체가 발행한 달러화 표시 회사채들은 이미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용어 설명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system)은 은행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당국의 규제와 감독을 받지 않는 비(非)제도권 금융기관이나 상품을 뜻한다. 대출자와 중개인 등 참여자들이 고수익·고위험 채권을 사고팔며 유동성을 창출하지만, 투자구조가 복잡하고 손익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그림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의 그림자금융 규모는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와 맞먹는 3조 달러(약 3948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인지는 중국 정부만 알 수도 있고, 혹은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