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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4-01-11 11: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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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사 초3 학대 학부모가 녹음…대법 “증거능력 없다”
내용

입력2024.01.11. 오전 11:21  수정2024.01.11. 오전 11:35

 

자녀 가방에 녹음기 넣어 수업 녹취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 대화”라며 
1·2심 유죄 판결 뒤집고 파기환송

 

게티이미지뱅크
초등학교 교사의 ‘아동학대’를 의심해 학부모가 자녀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수업을 녹음했다면 해당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제3자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경우 증거로 쓸 수 없는 데 이 원칙에 예외가 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웹툰 작가 주호민씨 아들에 대한 특수교사의 아동학대 사건 등 쟁점이 유사한 다른 아동학대 사건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1일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수업시간 중 정서적 학대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 ㄱ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피해학생의 부모가 ㄱ씨의 수업내용을 몰래 녹음했는데, 이 녹취파일을 증거로 쓸 수 없다는 취지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인 ㄱ씨는 2018년 3월 수업 중에 초등 3학년 학생에게 “○○은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 “바보짓 하는 걸 자랑으로 알아요”, “쟤(피해학생)랑 놀면 자기 인생만 고장 나” 등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말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학생의 부모는 아이 가방에 몰래 넣은 녹음기로 ㄱ씨의 아동학대 정황을 파악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로부터 “선생님이 저에게 1·2학년 제대로 나온 것 맞냐는 등의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 가방에 녹음기를 넣는 방식으로 교사의 수업내용을 몰래 녹음해 증거를 수집한 것이다. 이들은 한 달여 간 수업내용을 녹음한 끝에 ㄱ씨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녹취파일을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1심은 ㄱ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2심은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이번 상고심의 쟁점은 부모가 교사 몰래 수업내용을 녹음한 녹취파일의 ‘증거능력’이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제3자가 녹음한 불법감청 내용은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고 정한다. 하지만 1·2심은 녹취파일을 증거로 인정했다.

1·2심 재판부는 “초등학교 3학년인 피해자는 스스로 자신의 법익을 방어할 능력이 없었고, 교사의 학대행위에 관해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어 부모가 상황을 파악하고 학대를 방지하기 위해 녹음하게 된 것”이라며 “녹음자와 대화자(피해자)를 동일시할 정도로 밀접한 인적 관련이 있다”고 봤다. 30명 정도의 학생들을 상대로 한 발언인 데다 공공적 성격을 가진 초등학교 수업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로 볼 수 없다는 판단도 덧붙였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뒤집어 녹취파일의 증거능력을 부인했다. 교실 내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초등학교 수업 역시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수업시간 중 한 발언은 통상 교실 내 학생들에게만 공개된 것일 뿐,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다”며 “대화자 내지 청취자가 다수였다는 사정만으로 ‘공개된 대화’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공개되지 않은 대화’인지 아닌지를 가릴 때 대화 내용이 공적 성격을 가지는지, 발언자가 공적 인물인지 등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파일 등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런 원칙에 관한 예외가 인정된 바 없다”며 “이 판결은 선례에 따라 제3자인 학생 부모가 교사의 교실 내 발언을 녹음한 경우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편집인2024-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