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기업 임원들 두루 찾던
중국판 다보스포럼 갔더니
韓참가 언론은 본지 기자뿐
정부·기업 관계자도 확줄어
한중관계 악화땐 요소수 등
경제 손실·안보 위협 불보듯
내달 정상회의, 화해 계기로
지난달 중국 하이난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 갔다. ‘중국판 다보스포럼’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행사 기간 내내 프레스센터에는 내외신 기자 200여 명이 상주했다.
셋째 날쯤 됐을 때 한 중국 신문사 기자와 인사를 나눴다. ‘한국 매일경제신문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여기서 한국 기자는 처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아무래도 한중 관계가 안 좋다 보니 많이들 안 왔겠죠?”
올해 3월 말 중국 하이난 보아오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의 프레스센터 모습. 프레스센터는 행사 기간 동안 200명 가량의 내외신 기자들로 붐볐다. 이 가운데 한국 언론사는 본지가 유일했다. <사진=보아오 송광섭 특파원>멋쩍은 표정으로 화제를 돌리고선 대화를 끝냈지만 마음 한편 씁쓸함은 한동안 이어졌다. 실제로 올해 보아오포럼에 참석한 한국 언론사가 본지 하나였기 때문이다. 언론뿐 아니라 한국 정부와 기업의 사정도 비슷했다. 포럼 참석을 위해 한국에서 온 현직 고위 공무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보가 유일했고, 본사 고위 임원이 직접 온 기업은 후원사인 삼성과 SK 2곳에 불과했다.
보아오포럼에 대한 관심이 낮아진 근본적인 원인은 경색된 한중 관계에 있다. 대만·공급망 문제 등 현안을 두고 입장 차를 보이며 관계 회복이 안 되던 차에 중국 측 최고위급 참석자의 격마저 낮아지자 행사 자체가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올해 보아오포럼에는 그동안 참석하던 국가주석이나 총리를 대신해 ‘서열 3위’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참석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선 서열 1위나 2위가 왔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호시절에는 김황식·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보아오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포럼 이사를 맡아 중국 국가주석이나 총리와 면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지난 21일 인천공항 베이징행 항공편 탑승 수속을 준비하는 체크인 카운터 앞이 텅 비어있다. 올해 1분기 인천과 베이징을 오가는 항공편을 이용한 여객 수는 14만9165명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 1분기 대비 45.1% 감소했다. <사진=이충우 기자>포럼뿐만이 아니다. 여행객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올해 1분기 한중을 오가는 항공편 여객 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11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한중 갈등이 고조에 이르던 ‘사드 사태’ 때보다도 20% 이상 줄었다. 중국 유학 수요와 비즈니스 방문도 크게 감소했다. 한때 1000명에 달하던 베이징대학교 한국인 유학생 수는 현재 300여 명뿐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현지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하고 있고, 직장인들 사이에선 중국 주재 근무와 출장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중 간 인적 교류가 끊기다시피 하면서 양국 간 소통의 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는 경제적 손실을 넘어 경제안보에도 큰 위협이 된다. 2021년 10월 중국의 수출 제한 조치에 뒤늦게 대처하면서 전국을 혼란에 빠트렸던 ‘요소수 대란’이 얼마든 되풀이될 수 있다. 이르면 다음달 서울에서 한·일·중 정상회의가 열린다. 한중 관계 회복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송광섭 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