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징둥 “고위직 미안해”...임원 급여 깎아 배달원 정규직 대우
입력2022.11.23. 오전 10:24 수정2022.11.23. 오전 11:04
시진핑의 ‘공동 부유’에 발맞춘 조치
“징둥 2000여명의 고위직 형제들에게 미안하네요. 그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회사인 징둥(京東)그룹의 류창둥(劉强東) 회장이 지난 22일 이같은 문구가 담긴 편지를 공개했다. 그는 편지에서 고위급 임원들의 급여를 깎고, 배달원 등 비정규 근로자들에게는 100억위안(약 1조9000억원)을 들여 5대보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징둥의 자료에 따르면 회사의 근로자 54만명 가운데 약 10만명(배달원 6만 7400만명 포함)이 물류 관련 비정규직이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그룹의 류창둥 회장./중국기업가
징둥의 새로운 정책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 징둥의 고위급들의 급여는 10~20% 차등적으로 삭감된다. 직급이 높을 수록 삭감 비율은 커진다. 반면,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에 준하는 복지 혜택을 받게 된다. 지난 7월 인수한 물류 계열사의 배달원과 고객 서비스 직원 등 비정규직들은 5대 보험 혜택을 받게 되고, 5년 이상 근무한 이들에게는 추가로 주택연금을 제공한다. 류 회장은 사재 1억 위안(약 190억원)을 보태 ‘직원 자녀 구조 기금’ 규모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 기금은 직원이 노동 능력을 상실하면 자녀가 22세가 될 때까지 지원금을 제공한다.
류 회장은 “말단 근로자의 복지 수준을 높이고,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중국 잡지 ‘중국기업가’는 “징둥은 전자상거래 업계 최초로 물류 일선 직원들과 정식 근로 계약을 맺고 5대 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회사가 됐다”고 했다.
류창둥 회장이 지난 2014년 징둥그룹이 나스닥에 상장하자 환호하고 있다./AP연합뉴스
징둥의 이번 조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세운 핵심 가치인 ‘공동부유(共同富裕·모두가 잘사는 사회)’에 발맞춘 것이다. 지난달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에서는 ‘부(富) 축적 메커니즘 규범화[規範財富積累機制]’라는 새로운 표현이 등장하며 중국의 공동부유 정책 지속을 예고했다.
중국 IT업계에서는 당국이 ‘중국판 배달의 민족’인 메이퇀에도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정규직 수준의 복지 혜책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메이퇀은 징둥에 비해 ‘긱 근로자’(고용주의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을 맺고 일하는 임시직 근로자) 비율이 높아 직원 복지 수준을 대폭 높일 경우 사업 모델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공동부유 명목으로 갑작스럽게 도입되는 기업의 복지 정책이 기업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징둥그룹은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단기적인 자금 압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징둥은 전형적으로 원가 절감[降本增效]을 통해 이윤을 내는 플랫폼 기업이다. 지난 2분기 흑자 전환 전까지 4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3분기 징둥이 일선 직원들의 급여와 복지로 지출한 금액은 330억위안(약 6조2500억원)에 달한다.
고강도 코로나 방역과 위축된 경제 상황도 기업들의 공동부유 참여에 부담을 주고 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 행사인 11월 11일 ‘솽스이(雙十一·쌍십일·더블 일레븐)는 올해 흥행에 실패했고, 주요 전자 상거래 기업들은 매년 발표해온 매출 규모도 밝히지 않았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b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