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이 지난달 13일 오전 경북 경산시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에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기 전 기자들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 직속 군사경찰인 국방부 조사본부가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내용을 재검토한 뒤 내놓은 첫 보고서를 보면,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이 ‘가슴 장화를 신고 물가에 들어가서 수색하라’는 등의 지시를 통해 채 상병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조사본부는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 임 사단장에게 ‘범죄 정황이 확인된다’고 기술했지만,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주재한 회의를 거친 뒤 나온 최종 보고서에선 임 사단장이 혐의 적시 대상에서 제외됐다.
■임성근, “가슴 장화를 신어라”
조사본부는 임 사단장에게 안전대책 수립 의무가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그가 안전대책 수립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립을 방해했고, 복장 등 부대원들의 외양 관리에만 신경 쓰는 등 주의 의무를 게을리했다고 판단했다.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던 8명에게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의 단서가 되는 정황’이 있는지를 살피는 방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4일 한겨레가 확보한 보고서를 보면, 임 사단장은 지난해 7월15일 경상북도 재난상황실로부터 호우피해 복구 지원 요청을 받으면서 주요 지원사항이 실종자 수색임을 인지했다. 그러나 부하들에겐 전파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난 17일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박아무개 7여단장에게 “피해복구 작전의 중점은 실종자 수색이다”라고 임무를 하달했다. 비슷한 시간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을 출발해 경북 예천 수해 현장으로 향했고, 오전 11시9분 수해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임무 하달 1시간 뒤인 오전 11시, 임 사단장은 곧장 수색 지역으로 출동하라고 지시했다. 부대원들은 안전대책을 수립할 시간도, 안전장비를 갖출 여유도 없이 출동해야 했다.
보고서는 이튿날인 18일 현장지도에서 임 사단장의 무리한 지시가 ‘수중 수색’으로 이어졌다고 명시했다. 보고서를 보면, 임 사단장은 병력들이 물에 들어가지 않고 도로 위주로 수색활동을 하던 모습을 본 뒤 “(수변에) 내려가서 수풀을 헤치고 찔러보아야 한다. (물가에 들어가는) 그런 방법으로 71대대가 실종자를 찾은 것 아니냐? 내려가는 사람은 가슴 장화를 신어라”라며 구체적 수색 방법을 거론했다. 보고서는 “결국 채 상병이 장화를 신고 수중 실종자 수색을 하게끔 했다”고 적시했다.
그의 지시는 계속됐다. 18일 수색작전을 지휘하던 육군 제2작전사령부가 ‘안전교육을 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위험성 평가를 하던 부하에게 임 사단장은 “병력 투입 안 시키고 뭐 하냐, 병력들 빨리 데리고 와”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위험성 평가 여건을 보장하지 않았다”고 봤다.
현장지도를 하면서 “복장 착용 미흡(일부 체육모 쓴 인원 있음), 슈트 안에도 빨간색 추리닝 입고 해병대가 눈에 확 띌 수 있도록 가급적 적색 티 입고 작업”을 지시한 점도 사고 원인으로 꼽혔다. 보고서는 “안전대책이나 안전확보 업무를 게을리했다”며 “이런 지시는 채 상병 소속 7대대장으로 하여금 현장 통제보다 사단장 방문 지역에 먼저 가 외적 자세만 확인하게 해 (대대장의) 안전 업무를 훼방했다”고 밝혔다. 임 사단장이 19일 오전 6시50분, 공보정훈실장에게서 수중 수색 중인 사진을 보고받은 뒤 “훌륭하게 공보업무를 했다”고 칭찬한 점도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정황으로 적시됐다. 채 상병은 2시간10분 뒤 실종됐다.
■수중수색 지시, 임성근 책임 희석
국방부 조사본부 첫 보고서와 최종 보고서의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임 사단장의 지시가 ‘수중 수색’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판단이다. 조사본부는 첫 보고서에서 “임 사단장이 ‘(수변에) 내려가서 수풀을 헤치고 찔러보아야 한다. (물가에 들어가는) 그런 방법으로 71대대가 실종자를 찾은 것 아니냐? 내려가는 사람은 가슴 장화를 신어라’라고 구체적 수색 방법을 거론하는 바람에 결국 채 상병이 장화를 신고 수중 실종자 수색을 하게 됐다”고 적시했다. 임 전 사단장의 지시가 수중 수색으로 이어졌고, 결국 채 상병이 사망에 이르렀다는 논리다.
하지만 조사본부의 최종 보고서에선 이 내용이 빠졌다. 오히려 “수중 수색이 있었는지 여부 등은 기록이 없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며 채 상병 사망과 임 사단장 지시의 연결고리를 희석시켰다.
첫 보고서를 보면 조사본부는 현장 간부 2명만 제외하고,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한 관계자 6명의 혐의를 특정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사본부는 첫 보고서에서 임 사단장 등 6명에게 ‘범죄의 단서가 되는 정황’이 있는지 여부를 단정적으로 서술했다. 하지만 현장 간부 2명에 대해서는 “직무상 의무가 있는지 여부를 명확히 하기 위한 추가 조사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이 안전 업무를 소홀히 했지만, 혐의를 특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취지다.
최종 보고서에는 임 사단장 관련 표현도 누그러졌다. 최종 보고서는 혐의자의 혐의를 특정한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임 전 사단장에 대해 “안전관리 소홀 등의 정황이 발견됐다”고만 썼다. 4쪽에 걸쳐 단정적 표현으로 그의 지시와 행동이 채 상병 사망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적시했던 첫 보고서와 달랐다.
조사본부의 첫 보고서가 군 내에 공유된 지 사흘 뒤인 지난해 8월17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과 유재은 법무관리관, 조사본부장을 불러 재검토 결과를 두고 회의했다. 이 회의 뒤 조사본부의 검토 결과는 최종 보고서 내용대로 정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