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식 한국의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한국소식2023-02-09 12:24:19
0 3 0
[생활/문화] 번역 수요는 폭증하는데…‘투잡’ 아니면 어려운 번역가들
내용

 

입력2023.02.09. 오전 10:55

 

“시장이 넓어졌다는 것은 분명 장점…다만 오히려 기존 형성 가격 위협받을 수도 있어”
“1달에 1권을 작업하면 전문 번역가 가능 그런데 그게 만만치 않다.”
[데일리안 = 장수정 기자] 서울대는 ‘옥스퍼드대’로, 카카오톡은 ‘와츠앱’으로, 반지하는 ‘세미 베이스먼트’로 바꿔 전달한 것이 영화 ‘기생충’이 미국에서 인기를 얻은 요인 중 하나다. 그리고 이는 영어 자막 번역가 달시 파켓의 공이었다. 이를 통해 달시 파켓은 번역이 왜 중요한지, 번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번역가가 콘텐츠를 전달하는 나라의 문화를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문화를 알지 못하면, 의미를 잘못 전달해 재미가 반감될 수 있으며, 때로는 작품의 의미까지도 훼손할 수 있다.
 

넷플릭스 통해 해외 공개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넷플릭스지난해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설명하는 중요 대사 중 하나인 소개 때 언급되는 ‘역삼역’을 영어 자막에서는 ‘역삼 스테이션’(Yeoksam Station)이라고 직역했다. 대사 특유의 대칭성을 없앴을 뿐 아니라, 의미 또한 살리지 못한 것이다. 더빙판이 ‘시빅’(Civic)이라는 단어로 호평을 받은 이유였다.

이는 곧 번역가가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AI와 같은 기계 번역이 그들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도 하지만, 이렇듯 미묘한 뉘앙스까지도 포착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결국 전문 번역가들의 몫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번역가들도 이러한 변화를 체감 중이다. 배명자 독일어 번역가는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한다. 기가 막히게 잘 된 번역들이 (온라인상에서) ‘짤’로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아졌다는 것이 그 반증이라고 여긴다”라고 말했으며, 한 영어 통·번역가 또한 “수요는 폭증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여러 콘텐츠들은 물론, 해외 시상식에 진출하는 국내 작품들의 숫자도 늘면서 통역사들의 역할까지도 늘고 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것이 번역가들의 어려웠던 현실까지는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영화부터 드라마, 소설, 웹툰까지 ‘글로벌’을 겨냥하며 시장 확대를 노리고는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번역가들을 위한 환경 마련에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번역가들이 콘텐츠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하며 좋은 결과물을 내놓고 이를 통해 콘텐츠가 더욱 사랑을 받으면서 시장이 확대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은다. 영상 번역의 경우 분당 3000원~5000원 수준으로 가격이 형성돼 있는데, 이는 수년전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가격이라는 것. 또한 영상 번역 과정에서 들이는 품과 시간 등을 생각하면 ‘결코 많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결국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거나, 또는 다른 일과 콘텐츠 번역을 병행하게 되고, 이것이 곧 완성도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지적이었다.

한 영어 자막 번역가는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시장이 넓어졌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겠으나, 단가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생겨났고, 오히려 기존에 형성된 가격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드라마, 영화, 나아가 웹툰이나 유튜브까지도 번역가를 필요로 하면서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번역가들도 늘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완성도를 위해 몰두할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출판 번역 시장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배 번역가는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번역료 단가가 너무 낮다. 출판사 사정으로 번역료가 몇 달씩 늦게 지급되거나 못 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 거대 출판사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출판사가 영세한 상황이라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번역에 드는 품과 시간까지 함께 고려하면 더욱 낮아지는 단가에, 이마저도 제대로 받기 힘든 현실을 생각하면 전문 번역가가 되기 위해선 환경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배 번역가는 “번역가들 사이에 일반적으로 통용되기로, 1달에 1권을 작업하면 전문 번역가로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만만치 않다. 매달 한 권씩 번역 계약을 하기도 어렵겠지만, 무엇보다 300쪽이 넘는 책을 한 달에 끝내려면 주 52시간 노동으로는 어렵다”면서 “그래서 후배들이 물어보면, 저는 아직도 ‘투잡’ 뛸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말해준다”고 말했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기자 프로필

스크랩 0
편집인2024-09-18
편집인2024-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