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식 한국의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한국소식2023-03-07 10:59:27
0 2 0
[생활/문화] "7년 째 월급이 안 오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내용

 

입력2023.03.07. 오전 9:38   수정2023.03.07. 오전 9:48

 

외주자 보는 출판사 시선을 비판한다
7년째 그대로인 작업단가, 경력도 능력도 반영 안돼
말 안 되는 일이 외주자에게는 늘 벌어진다

"무엇이 출판을 죽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다 내가 죽소"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가 소식지 2호 제호에 밝힌 출판노동자들의 외침이다. 70%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 신간 30%를 차지하는 외주화(외주작업 의뢰). 다단계 하도급 중간착취, 예술인고용보험 미적용. '출판의 위기' 담론을 빌미로 책을 만드는 현장에선 온갖 불안정 노동 문제가 지속돼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출판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이 매일 '재직노동'과 '외주노동', 청년과 여성의 출판 노동 현실을 기고한다. 결국 5인미만 사업장과 외주·프리랜서로 일하는 출판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사용자 단체를 상대로 한 단체교섭이다. -편집자 주

2022년 12월16일 국회에서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출판 외주노동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국회에서 마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 자리에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회장을 대신해서 참석한 류원식 상무이사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내가 만나본 외주자들에게 입사 권유를 하면 대부분 거절하더라. 그분들이 현재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의 말은 한마디로 '외주자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다. 만족하니까 외주 일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류원식 총무담당 상무이사(교문사 대표)가 지난해 12월16일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객석에서 플로어로 나와 발언하고 있다. 윤철호 출협 회장은 이날 토론회에 불참했다. 사진=김예리 기자정말로 외주가 좋아서 시작한 외주자가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다. 백 보 양보해서 정말 자기 의지로 외주자가 되었다 해도, 그에 따른 모든 문제를 군말 없이 감수해야 한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 작업 단가가 몇 년이 지나도록 오르지 않고 그대로이거나, 작업비 지급이 계속 밀리거나, 계약서를 쓰지 않으려 하거나… 이런 수많은 불합리함까지도 견디며 계속 일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인지. 외주노동자는 어떤 불가피한 사정, 때로는 의지에 따라 외주라는 작업 형태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에 따른 불합리함까지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선택한 것은 아니다.
 

경력에도 안 오르는 작업단가에 좌절

비용 아끼려 외주자 쓰는 출판사들

나는 흔히 말하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여성이다. 외주자로 일하던 초기에는 계속 직장을 구했지만 잘되지 않았고, 결국 외주자로 눌러앉게 되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다. 그 긴 세월이 지나도록 작업비 단가가 인상된 것은 몇 번에 불과하다. 아마 다른 외주자들도 이런 사정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몇 년이 지나도록 꼼짝도 않는 단가에 좌절하고, 올려달라고 요구할 때는 그 거래처의 일이 끊길 위험도 각오해야 한다. 회사가 난색을 표하면 당장 불안한 생계를 생각하면서 묵묵히 받아들이는 게 보통이다. 가뜩이나 작년부터는 물가가 미친 듯이 올랐으니 실질적으로 임금이 크게 삭감된 셈이다. 만약 재직자들이 7년이 지나도 월급을 올려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말도 안 되는 일이 외주자들에게는 늘 쉽고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다. 20년이 넘도록. 출판사는 그렇게 비용을 아끼자고 외주자를 쓰는 것이겠지만.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출퇴근 안 해도 된다는 그 알량한 장점을 누리는 대가가 이렇게 클 일인가 싶다(요즘은 외주자에게 출퇴근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외주자가 사비로 감당해야 하는 컴퓨터 등 각종 작업 도구 마련과 유지 보수 비용, 각종 보험료는 왜 생각하지 않는가. 언제 일이 끊길지 몰라 늘 불안한 외주자 처지는 왜 감안하지 않는가. 경력이 20년이 되는 외주노동자가 받는 작업비에는 왜 경력과 능력에 따른 보수가 반영되지 않는가. 이 모든 게 전부 출판사들이 비용을 쓰지 않으려고 외주노동을 사용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출판노동유니온) 달력 표지. 출판노동유니온 제공

20년 일해도 신입 연봉 못미치는 외주자 현실

출판의 한 축 외주노동자, 제대로 대우하라

앞에서 말한 국회 토론회에서 안명희 출판노동조합협의회 의장이 지적한 대로, 출판노동자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출판업계가 영세해서가 아니다. 외주자를 마음껏 쓸 수 있기 때문에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이 많을 뿐이다. 출판사 내부에 직원이 한 명만 있어도 외주자만 쓸 수 있다면 책을 1년에 몇 권이든 낼 수 있다. 외주자들이 하나도 없다면 대다수 출판사들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출판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외주자들은 제대로 대우를 받고 있을까. 매출이 좋을 때는 외주자에게 그 이익을 나눠 주지도 않으면서, 회사가 어려울 때는 외주자가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출판계 사정이 안 좋다고 늘 앓는 소리를 하면서 작업비를 올려주지 않으려 한다. 외주자로 살아오면서 20년 넘도록 출판계 사정이 좋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사용자들이 매년 빠짐없이 입에 올리는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은 어쩌면 외주노동자들이 정당한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판단력을 흐리게 하려는 가스라이팅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난해 12월16일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출판사 책임 인정해야…안정적으로 책 만들고파앞으로도 이런 외주노동의 환경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출판업계에서 재직자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외주노동과 재직을 오간다. 외주자가 되면 한 곳의 일만 받아서는 생계가 어렵기에 여러 군데서 일을 받아 과로에 시달린다. 그 일거리들마저도 불안정하여 끊기곤 한다. 아무리 일해도 단가는 여전히 오르지 않는다. 20여 년 동안 한 해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내 연평균 수입은 출판사 신입 편집자의 연봉에도 훨씬 못 미친다. 내가 무능한 것일까, 이런 현실을 당연히 여겨야 할까.

출판사들은 "일 잘하는 3~4년 차 편집자를 구하기가 어렵다" "쓸 만한 외주자를 구하기 힘들다"고들 아우성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되묻고 싶다. 그 노동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으면서 값싸고 편하게 써먹으려고만 한다면 누가 계속 그 바닥에 남아서 일하려 할까.

문제 해결은 출판사들이 외주노동에 대해 그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출판사의 영세함을 핑계로 외주노동자들이 놓인 암담한 상황을 남의 일인 양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출판사 대표들이 모인 출협부터 표준 계약서를 만들고 작업 단가의 합리적 기준 등을 논의하는 일에 함께 나서야 한다. 언제까지 자기들은 사용자 대표성이 없다고 발뺌할 것인가.

외주노동자는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다. 안정적인 조건에서, 좋은 책을 계속 만들고 싶다.

[ 출판노동 기고① 재직노동- 에코백 메고 2200번 타고 퇴근해 24시간 카페로 들어가는 사람들 ]

152x225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조합원)

스크랩 0
편집인2024-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