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3.07. 오전 9:38 수정2023.03.07. 오전 9:48
외주자 보는 출판사 시선을 비판한다 "무엇이 출판을 죽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다 내가 죽소"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가 소식지 2호 제호에 밝힌 출판노동자들의 외침이다. 70%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 신간 30%를 차지하는 외주화(외주작업 의뢰). 다단계 하도급 중간착취, 예술인고용보험 미적용. '출판의 위기' 담론을 빌미로 책을 만드는 현장에선 온갖 불안정 노동 문제가 지속돼왔다. 2022년 12월16일 국회에서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출판 외주노동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국회에서 마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 자리에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회장을 대신해서 참석한 류원식 상무이사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내가 만나본 외주자들에게 입사 권유를 하면 대부분 거절하더라. 그분들이 현재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의 말은 한마디로 '외주자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다. 만족하니까 외주 일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류원식 총무담당 상무이사(교문사 대표)가 지난해 12월16일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객석에서 플로어로 나와 발언하고 있다. 윤철호 출협 회장은 이날 토론회에 불참했다. 사진=김예리 기자정말로 외주가 좋아서 시작한 외주자가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다. 백 보 양보해서 정말 자기 의지로 외주자가 되었다 해도, 그에 따른 모든 문제를 군말 없이 감수해야 한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 작업 단가가 몇 년이 지나도록 오르지 않고 그대로이거나, 작업비 지급이 계속 밀리거나, 계약서를 쓰지 않으려 하거나… 이런 수많은 불합리함까지도 견디며 계속 일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인지. 외주노동자는 어떤 불가피한 사정, 때로는 의지에 따라 외주라는 작업 형태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에 따른 불합리함까지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선택한 것은 아니다. 경력에도 안 오르는 작업단가에 좌절 나는 흔히 말하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여성이다. 외주자로 일하던 초기에는 계속 직장을 구했지만 잘되지 않았고, 결국 외주자로 눌러앉게 되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다. 그 긴 세월이 지나도록 작업비 단가가 인상된 것은 몇 번에 불과하다. 아마 다른 외주자들도 이런 사정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몇 년이 지나도록 꼼짝도 않는 단가에 좌절하고, 올려달라고 요구할 때는 그 거래처의 일이 끊길 위험도 각오해야 한다. 회사가 난색을 표하면 당장 불안한 생계를 생각하면서 묵묵히 받아들이는 게 보통이다. 가뜩이나 작년부터는 물가가 미친 듯이 올랐으니 실질적으로 임금이 크게 삭감된 셈이다. 만약 재직자들이 7년이 지나도 월급을 올려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말도 안 되는 일이 외주자들에게는 늘 쉽고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다. 20년이 넘도록. 출판사는 그렇게 비용을 아끼자고 외주자를 쓰는 것이겠지만.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출판노동유니온) 달력 표지. 출판노동유니온 제공 20년 일해도 신입 연봉 못미치는 외주자 현실 앞에서 말한 국회 토론회에서 안명희 출판노동조합협의회 의장이 지적한 대로, 출판노동자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출판업계가 영세해서가 아니다. 외주자를 마음껏 쓸 수 있기 때문에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이 많을 뿐이다. 출판사 내부에 직원이 한 명만 있어도 외주자만 쓸 수 있다면 책을 1년에 몇 권이든 낼 수 있다. 외주자들이 하나도 없다면 대다수 출판사들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지난해 12월16일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출판사 책임 인정해야…안정적으로 책 만들고파앞으로도 이런 외주노동의 환경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출판업계에서 재직자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외주노동과 재직을 오간다. 외주자가 되면 한 곳의 일만 받아서는 생계가 어렵기에 여러 군데서 일을 받아 과로에 시달린다. 그 일거리들마저도 불안정하여 끊기곤 한다. 아무리 일해도 단가는 여전히 오르지 않는다. 20여 년 동안 한 해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내 연평균 수입은 출판사 신입 편집자의 연봉에도 훨씬 못 미친다. 내가 무능한 것일까, 이런 현실을 당연히 여겨야 할까. 152x225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조합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