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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3-05-12 1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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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여러분도 거울 속에서 ‘고길동 아저씨’의 얼굴을 보셨나요?
내용

 

입력2023.05.12. 오전 8:03   수정2023.05.12. 오전 9:13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버전 총감독 김수정

영상자료원서 영화복원 차원
리마스터링...“얼떨결 재개봉”

“만화는 불합리한 부분 희화화
누구라도 이걸 즐길 수 있어야”

26년만에 재개봉하는 <아기공룡 둘리:얼음별대모험> 김수정 작가·감독이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아기공룡 둘리> 연재할 때 받았던 팬레터의 대부분이 고길동씨를 이렇게 저렇게 혼내주라는 주문이었어요. 그랬던 팬들이 이제는 고길동 외전을 만들어달라고 요청을 하곤 해요.”

“승질 드러운” 주인집 아저씨 고길동을 골탕 먹이며 어린이들을 웃게 만들던 둘리가 고길동의 나이가 됐다. 1983년 4월22일(<보물섬>연재)에 태어나 올해로 마흔살. 둘리를 사랑했던 팬들도 이제는 아들 딸과 조카, 둘리와 친구들까지 먹여 살리는 쌍문동 고길동씨의 애환과 심통을 이해하게 됐다. 오는 24일 27년만에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을 앞둔 <아기공룡둘리:얼음별 대모험>의 총감독 김수정 작가(72)를 9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에서 만났다.
 

<아기공룡둘리:얼음별 대모험> 포스터.

김 작가는 “얼떨결에 재개봉이 이뤄지게 됐다”고 했다. 리마스터링도 영화 복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영상자료원이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영상자료원의 리마스터링 작업이 끝난 뒤 부산과 전주, 부천영화제 등에서 상영 요청이 왔어요. 영화제에서 반응이 생각보다 뜨거웠던지 배급사에서 재개봉 제안을 했죠. 둘리를 사랑했던 팬들이 영화를 보면서 잠시라도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국민 캐릭터로 슈퍼 아이피(IP∙지적재산권)로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는 둘리지만 김 작가에게 <아기공룡 둘리> 애니메이션은 영광보다는 상처의 역사에 가깝다. “1987년부터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 붐이 일기 시작했어요. 올림픽 앞두고 국내 애니메이션 하나 없는 게 말이 되냐는 방송사의 움직임이 있었죠.” <아기공룡 둘리>도 <한국방송>(KBS)에서 1987년부터 방영해 큰 사랑을 받았지만 김 작가에게는 편치 않은 경험이었다. “원작자로 제작 회의에 참가했지만 제 의견과 무관하게 제작사가 밀어붙인 방향으로 진행됐죠. 우려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 현실이 되어 방송으로 나왔고요.” 그때 그는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결과물이 1996년 7월 개봉한 <얼음별 대모험>이다. 당시 서울 관객 30만명으로 그해 한국영화 흥행 4위의 기록을 얻었다.
 

<아기공룡둘리:얼음별 대모험>.
 

<아기공룡둘리:얼음별 대모험>.

평도 반응도 좋았지만 그가 꿈꿨던 후속편 제작은 이뤄지지 못했다. 잘못된 계약으로 인해 돈을 벌고도 돈이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체 제작비 10억원 중에 5억원의 투자를 받은 곳에 개봉이 끝나고도 5년 동안 23억원을 갚아야 했어요. 돈이 들어온다는 사실에만 기뻐서 제대로 계약서를 읽지 못한 거죠. 그때 10억원 정도만 남겼더라면 그걸로 후속편을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아직도 뼈아픕니다.”

김 작가는 고 이우영 만화가 사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말을 이었다. “보통 직장인보다 사회생활이 부족한 만화가들은 계약서를 읽는데 익숙지 못해요. 게다가 본인의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고 하면 너무 기쁘고 들떠서 계약서를 꼼꼼히 못보는데 상대는 이런 일에 노련한 기업들이거든요.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을 하던 2000년대 초 표준계약서도 만들었지만 그래도 저작권 분쟁이 계속 일어났어요. 지금도 신신당부해요. 계약서 꼼꼼히 보고 어려우면 주변 사람들한테 보여주기라도 하라구요. ”

우여곡절 끝에 2009년 티브이 시리즈 <아기공룡 둘리>(SBS)를 다시 성공시키고 <얼음별 대모험>을 이을 극장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콘티 작업도 끝나고 실무 제작이 들어가기 직전 제작사가 부도를 맞으며 엎어졌다. 이후 그는 한국을 떠나 가족과 캐나다에서 5년을 지내며 동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세권을 쓰고 그렸다. 둘리 탄생 이후 유일하게 둘리와 떨어져 살던 시간이었다.

쓰라림을 추스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2021년 새 창작집 <사망유희>를 낸 다음 방치됐던 극장판 작업의 콘티를 다시 펴보게 됐다. 만화로 내년부터 공개할 <아기공룡 둘리: 방부제 소녀들의 지구대침공>이다. “포르말린과 나프탈렌이라는 외계인 소녀가 자신들이 살던 별이 멸망해서 새로 살 곳을 찾다가 지구에 도착해 겪게 되는 이야기예요. 사람들이 지구를 너무 더럽게 쓰니까 버려진 별인 줄 알고 여기에 정착하려는데 둘리 친구들과 엮이면서 벌어지는 소동이죠. <얼음별대모험>보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고길동씨도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할 겁니다. 하하”
 

둘리나라 제공

아이들의 귀여운 소동 속에 현실의 문제를 툭툭 던져놓았던 김씨의 작품답게 이번에도 환경문제, 용역 등 현실의 그늘도 담긴다고 한다. 대통령이 군복을 입고 나와 총을 거꾸로 들고 허둥대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명박 대통령 때 그리기 시작했던 건데 이걸 어떻게 고칠지도 고민이다. 창작을 하며 정치 검열은 물론이고 둘리와 친구들이 버릇없다고 민간단체 등의 지적에 시달렸던 그라 검열이라면 이골이 날 듯도 한데 고민이 된다고 한다.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다루는 작품이 아니라고 만화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을 어떻게 이야기 안 할 수 있나요. 작품을 그리면서 둘리와 고길동씨 중 누구 편도 들지 않는 공정함을 지키려고 했던 것처럼 좌우를 떠나 창작물이 사회를 대하는 태도는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화는 세상의 불합리한 부분을 희화화할 수 있어야 하고 누구라도 웃으며 이걸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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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202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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