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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3-05-17 11: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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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굴뚝 두 개” “마법의 요술 지팡이”…박보균 장관 황당한 ‘언어의 힘’
내용

 

입력2023.05.16. 오후 4:11   수정2023.05.16. 오후 4:49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해 7월 20일 정부 서울청사 별관에서 청와대 활용 청사진에 대한 대통령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참고 모델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들며 베르사유 궁처럼 청와대 본관 등을 원형을 보존한 미술품 전시장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테이트는 굴뚝이 하나입니다. 당인리는 굴뚝이 두 개가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 선문답 같은 장관의 말을 듣고 기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6일 낮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지하 식당에서 취임 1주년 언론간담회 모두 발언을 하다가 느닷없이 화력발전소 굴뚝을 화두로 꺼냈다. 자신과 윤석열 정부의 문화적 치적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그가 말한 ‘굴뚝 하나짜리 테이트’는 영국 런던 템스 강 변의 옛 화력발전소를 1990년대 건축 거장 헤르조그 드뫼롱 듀오가 리모델링한 뒤 세계 최고 권위의 현대 미술관으로 우뚝 선 테이트모던미술관이며, ‘굴뚝 두개짜리 당인리’는 옛 당인리 화력발전소 건물을 리모델링한 문화복합공간 얼개로 17일 착공식을 여는 서울 합정동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를 가리킨다. 박 장관은 착공식 현장에 와달라고 당부하면서 문체부가 주관하는 합정동 문화복합공간에 대해 자랑과 찬사 섞인 발언을 이어갔다.

“저는 그런 표현을 씁니다. 당인리 화력발전소는 테이트모던이 아닙니다. 그곳보다 훨씬 독창적입니다. 발전소 굴뚝 하나가 있다고 굴뚝 두 개인 당인리와 비교하지 말라, 최선의 최고의 문화예술이 꽃피는 곳이다, 이런 표현을 제가 (내일 행사에) 격려사로 적어서 냈습니다.”

박 장관은 모두 발언이 끝난 뒤 굴뚝 발언이 약간 이해가 안되니 무슨 의미인지 일러달라는 일부 기자의 요청을 받고 “당인리의 굴뚝 두 개는 런던 테이트모던을 모방한다는 뜻이 아니라는데 초점을 맞춰서 말씀드렸다. 내일 (착공식) 현장 와보면 실감할 수 있다”고 답했다.

간담회 뒤 박 장관의 발언을 전해 들은 미술계 전문가들은 ‘굴뚝 같은 발언’ ‘실소를 참기 어렵다’는 반응들을 내놓았다. 유럽 현대미술에 밝은 한 중견기획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비유로 재치는 커녕 설득력도 없다”면서 “문화산업을 굴뚝 없는 산업에 흔히 비유하지만, 세계적인 전시기관과 국내 신생 기관의 굴뚝 개수를 비교하며 콘텐츠를 자랑하는 건 극심한 콤플렉스(열등감)를 되레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아닌가 싶다”고 촌평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박 장관은 ‘굴뚝 비유’ 외에도 자신의 취임 뒤 문체부가 ‘언어의 힘’에 의해 변화하고 있다면서 최근 한류문화의 힘을 나타내는 조어로 흔히 쓰이는 접두어 ‘케이’(K)의 의미를 강화시킨 것도 임기 중 치적의 일부로 삼는 발언을 했다. “제게 ‘케이’란 단어는 압도적인 것을 뜻합니다. ‘케이’의 뜻을 좀 더 짜임새 있게 다듬는 것도 (제가 강조한) 언어의 힘 관점에서 중요합니다. 캐이콘텐츠는 마법의 요술 지팡이가 되어서 어떤 분야든 붙으면 프리미엄 효과도 내고 수출에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케이란 의미의 압축적 요소를 강조한 것도 제 나름대로 보람이고.”

박 장관은 지난해 7월 문체부 업무보고 당시 개방된 청와대 공간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처럼 원형을 보존한 미술품 전시장으로 활용하며 그해 하반기 중 청와대 소장 미술품 전시를 선보일 계획이라는 아트콤플렉스(미술관 단지)안을 핵심 추진과제로 언론에 관련 자료와 함께 직접 공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취임 1주년 간담회의 모두 발언에서 청와대 미술품 전시 상황에 대해 그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가 청와대 미술전시가 모두 발언에 빠진 이유와 이후 아트 콤플렉스 추진 상황은 어떤지 묻자 그는 “내가 베르사유 궁전처럼 전시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 그런 식으로 언론이 기사를 쓴 것은 잘못”이라면서 “미술품 전시는 현재 홀드(보류) 상태이며 늦더라도 전시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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