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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3-05-30 1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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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광화문 월대 밑에서 조선 전기 흔적 확인…“시설 갖추고 활용”
내용

 

입력2023.05.30. 오전 11:32

 

고종년간 월대 어도지와 조선 전기 유구. 문화재청조선 전기부터 광화문 앞 공간을 활용한 흔적이 발견됐다.

30일 문화재청은 광화문 월대(月臺·궁궐 주요 건물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터보다 높게 쌓은 단) 유적 하부를 조사한 결과, 고종(재위 1863∼1907)시기보다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유구를 일부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구는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다.

문화재청은 “고종년간에 월대가 축조되기 이전에도 광화문 앞 공간이 활용됐다는 사실을 조선왕조실록 등 기록을 통해서만 확인해 오다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물적 증거까지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부연했다.

이번 조사는 문화재청이 지난달 언론공개회를 통해 광화문 월대 규모와 기초시설, 전체 모습 등 그간 조사가 완료된 성과를 한 차례 공개한 이후 추가로 실시한 것이다.

조사 결과, 조선시대 전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광화문 앞 공간의 퇴적양상과 활용양상이 확인됐다.

광화문 밖 공간의 퇴적층은 자연층에서 14~16세기 조선 전기 문화층, 17세기 이후 조선 중·후기 문화층, 19세기 월대 조성층을 거쳐 20세기 근현대도로층의 순으로 형성됐다.
 

고종년간 월대 하부 퇴적양상. 문화재청조선 전기 문화층은 2007년 광화문 발굴조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번에 발굴된 유구는 고종년간 월대의 어도(御道·임금이 지나가는 길)지 서쪽 기초시설 하부 약 120㎝ 지점에 있는 조선 전기 문화층의 최상단에서 확인됐다.

사각형 석재 1매(76×56×25㎝)를 중심으로 양쪽에 남북방향의 석렬(石列·돌로 열을 지어 만든 시설)이 각각 한 줄씩 배열된 양상으로, 방형 석재 중앙에 직경 6㎝의 철제 고정쇠가 박혀 있었다.

이는 궁중 행사에서 햇빛 가리개로 사용되는 차일을 고정하기 위한 장치와 유사하다. 경복궁 근정전이나 종묘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이러한 석렬유구가 동쪽 어도지 하층 탐색구덩이 조사에서도 일부 확인되는 점으로 미뤄 보아, 고종년간 월대 어도지 하층에 전체적으로 유사한 양상의 조선 전기 유구가 분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종년간 월대 어도지 하층 조선 전기 유구(왼쪽)·고종년간 월대 어도지 하층 조선 전기 방형석재(오른쪽 위)·경복궁 근정전 쇠고리(차일고리). 문화재청조선 중기~후기 유구는 조선 전기 문화층을 일부 파괴하고 조성된 층에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교란과 파괴가 심하며 민가의 흔적 등도 확인돼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방치됐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며 “이후 고종대에 이 층을 정리하고 다시 흙을 쌓아서 월대를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복궁 영건일기’에도 광화문 앞 육조거리의 정비와 관련해 ‘광화문 앞의 민가 중 어로(御路)에 불필요한 것은 모두 철거했다(1865년 윤5월 18일)’는 기록이 있다.
 

고종년간 월대 서편어도지 하층 조선 중기~후기층 유구. 문화재청문화재청은 “광화문 앞 공간에서는 고종년간 월대와 같은 건축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조선 전기부터 바닥에 돌을 깔아 축조하는 방식의 시설들을 갖추고 다양하게 활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 기능이 상실되며 방치된 채 관리되지 못하다가 고종년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월대가 설치됐음을 알 수 있다”고 부연했다.

문화재청은 발굴조사 자료를 정밀 분석해 경복궁 광화문과 월대 공간과의 연관성, 활용성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광화문 월대 유구현황. 문화재청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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