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6.08. 오전 11:29
‘3000만 돌파’ 앞둔 ‘범죄도시’ 시리즈 흥행요인은
영화 ‘범죄도시3’가 개봉 7일째인 지난 6일 누적관객수 6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 질주 중이다. 1편 688만명, 2편 1269만명으로 이미 도합 1957만명 관객이 ‘범죄도시’ 시리즈를 극장에서 관람한 상태다.
3편마저 누적관객수 1000만명을 넘게 되면 ‘범죄도시’ 시리즈는 3000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최초 프랜차이즈 영화로 등극하게 된다. 이쯤되면 가히 신드롬, 한 편의 극장영화가 아니라 전사회적 현상이라 할 만하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주인공 마석도 형사. 그는 아이언맨이나 배트맨 류의 하이테크 영웅이 아니다. 또 초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슈퍼맨 류의 천부적 초월적 영웅도 아니다. 그는 상식을 가진 ‘맨주먹 영웅’이다.‘1만5000원 영화 티켓값 논란’을 한방에 불식시킨 ‘범죄도시’ 시리즈는 왜 매번 개봉 때마다 성공할까. 배우 마동석이 연기하는 ‘한국형 히어로’ 마석도 형사는 어떤 매력으로 객석을 매료시킬까.
반복되는 서사에 삽입되는 유머코드도 엇비슷하고, 가진 무기라곤 ‘맨주먹’뿐인 데다 그다지 철저히 청렴하지도 않은 영웅 캐릭터에 한국인이 이토록 열광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숨겨져 있을 터. ‘범죄도시’ 시리즈의 흥행에 대한 사회적 요인을 평론가 도움을 받아 살펴봤다.
상식·정의 안통하는 사회일수록
혼돈 제압할 ‘영웅’의 탄생 기대
‘범죄도시’ 시리즈는 사법체계 시스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공간에서 출발한다. 1~3편 모두 악한의 폭력을 무력하게 바라만 보는 길거리 시민들 사이로 이 상황을 유일하게 정리할 수 있는 마 형사를 등장시키며 이야기는 전개된다.상식과 정의가 통하지 않는다고 인식되는 보편적 불안감, 무능한 공권력 때문에 시민 개인의 안위가 위협 받는다는 공포감이 ‘범죄도시’ 시리즈 안팎에 작동한다.
현재까지 ‘범죄도시’ 시리즈에 등장한 4인의 ‘악한(장첸, 강해상, 주성철, 리키)’은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실화를 모티프 삼는데 1편의 장첸은 2004·2007년 가리봉동 차이나타운 왕건이파와 흑사파 사건에서 골자만 뽑아내 탄생한 악한이고 2편의 강해상은 2011년 필리핀 한국인 연쇄 납치 살해 사건, 3편의 주성철·리키는 2017년 일본 야쿠자의 마약 필로폰 반입 사건을 영화적으로 변주한 캐릭터다.
여기서 ‘범죄도시’ 시리즈의 서사 구조는 매번 오차없이 반복된다. ‘길거리 혼란을 단번에 정돈하는 마석도 형사의 등장→주변인에게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악한의 악행→ 시스템으로 검거하지 못하는 악한과 그의 무리를 타도하려는 마 형사의 분투→폭력의 권력 위계 최정점에 선 악한과 마 형사의 최후 한판 대결→핵주먹과 불싸다귀의 세례를 받아 악한이 무너지면서 구현되는 정의.’
극중 시민들의 불안감과 관객의 내면은 마석도의 무력과 제압 직후 동기화(동일시)된다. 여기서 작동하는 기제는 사법 시스템이 아니라 마석도라는 형사 개인의 정의감이다.조흡 문화평론가는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거나 경제적 불안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의 정서는 공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20세기 정치학자 로퍼트 팍스턴의 파시즘 이론에 근거해 ‘범죄도시’ 시리즈의 심층을 들여다봤다. 그는 ‘범죄도시1’을 “차이나타운을 평정하고 살인을 일삼는 조선족 폭력배들과 이들의 체포를 위해 분투하는 영웅적인 형사의 대결을 담은 ‘공포’스러운 영화”로 정의하며 “공포와 불안감이 팽배할수록 대중은 ‘영웅’의 탄생을 재촉하게 된다. 대중은 카리스마가 강한 리더에게 몰입하거나 그 인물을 영웅시함으로써 개인이 갖고 있는 공포감을 해소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무능하고 불공정한 공권력 반발
시스템 아닌 개인 정의로 해결도
관객은 극장 밖 관찰자였을 때 막연하게 느꼈던 공포감을 극장 안 참여자로서 줌인(zoom in)해 바라보게 된다. 영웅 마석도 형사의 유일무기한 ‘흉기’인 주먹에 의지하면서 그의 ‘예정된’ 제압 과정을 안전한 객석에서 구경하는 것이다.
무능하고 불공정하다고 인식되는 공권력에 대한 대중적 반작용으로 관객이 마석도 형사의 원맨쇼 활극에 빠져든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높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근본적으로 사법체계 시스템조차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자비한 악한들이 침범해버린 시민들의 공간에서 출발한다. 1~3편 모두 악한의 폭력을 무력하게 바라만 보는 길거리 시민들 사이로 이 상황을 유일하게 정리할 수 있는 마석도 형사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전개되기 때문이다. 마 형사는 악한이 시민의 안전을 아랑곳하지 않고 활개치는 현실 지옥을 전복시킬 물리적 힘의 메시아처럼 시민들 사이에서 등장한다. 극중 시민들의 불안감과 극장 관객의 흔들리는 내면은 마 형사의 악한 제압 과정을 거치며 비로소 동기화(동일시)된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서사 구조는 매번 오차없이 반복된다. 그 시작은 ‘길거리 혼란을 단번에 정돈하는 마석도 형사의 등장’이다.노철환 영화평론가는 “작년 1200만 관객을 넘긴 ‘범죄도시2’는 단지 영화의 액션과 코믹함 때문이 아니며, 코로나19 시대에 공권력의 책임이란 의제를 둘러싼 사회적 불안과 불만이 겹쳐지며 도출된 결과”라며 “영화는 제작 특성상 2~3년 후의 한국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될 만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최초의 기획 의도와 2~3년 뒤 개봉 당시 상황이 맞아 떨어져야만 천만 영화가 되는데 ‘범죄도시’ 시리즈는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시대정신을 겨냥한다”고 말했다.
‘범죄도시’ 첫 장면에서 작동하는 기제는 사회가 공인한 치안과 사법 시스템이 아니라 마석도라는 형사 개인 내부에서 솟구치는 정의감이다. ‘영화는 사회의 거울이며, 한 사회의 집합적 멘탈리티는 시각적 및 서사적 모티프의 인기에서 드러난다’는 20세기 철학자 지그프리트 크라카우거의 영화이론도 ‘범죄도시’ 시리즈 흥행을 설명해낸다.
‘범죄도시’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한들은 모두 한국 시민사회의 외부자이자 타자들이다. 3편의 악한 주성철(사진)은 한국인이지만 일본 야쿠자의 마약을 빼돌려 이를 중국 측에 넘기려 한다. 한국은 한중일 마약 거래 현장이다.
맨주먹만 쓰는 ‘아날로그 슈퍼 히어로’
마석도 형사는 천재적 재능으로 자수성가한 아이언맨이나 다이아몬드 수저 출신으로 자본으로 기술을 사는 배트맨 류의 하이테크놀로지 영웅이 아니다. 초월적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슈퍼맨 류의 천부적 영웅도 역시 아니다. 마 형사가 사용하는 무기는 거의 맨주먹뿐이며 이를테면 그는 ‘완력(腕力) 영웅’이다. ‘슈퍼 히어로’인 형사 개인 한 명이 범인을 완파하는 공식 속에서 마 형사는 정직하게도 ‘몸’만 사용한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1편 장첸의 오함마와 칼, 2편 강해상의 마체테(정글도), 3편 리키의 사무라이 검에 비해 마석도의 주먹과 손바닥은 상대적으로 덜 잔인해 보인다”며 “주먹 단 한 방으로 악한을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다 보니 그의 주먹은 경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악한의 서슬퍼런 무기와 아날로그 슈퍼 히어로의 맨주먹을 대비시키면서 정의에 편에 섰던 마 형사가 악한보다 우위를 점할 때 관객들은 그 주먹의 힘에 내재된 잔혹성에도 불구하고 거부감 없이 안도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마석도 형사는 정직하게도 ‘몸’만 사용한다. 반면 악한들은 날카로운 흉기를 사용한다. 3편의 리키(사진)는 사무라이 검으로 상대를 벤다.마석도 형사의 외면을 완력 영웅으로 은유 가능하다면 그의 내면은 ‘상식적 영웅’이라 표현할 만하다. 마 형사는 우리 주변에 평범한 인물 표상 그 자체다.
마 형사는 SUV를 USB로 잘못 말하거나 ‘아가리또 고자이마스’란 괴이한 일본어를 뜻도 모르고 사용한다. 그는 시민들의 보편적 공감대 위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구타 끝에 ‘아파, 너무 아파’라며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염 섞인 엄살을 부리리도 한다. 그러면서도 “법이 우리나라 사람들 못 지키면 우리라도 좀 지켜야 하는 거 아니야” “나쁜 놈은 그냥 잡는 거야”라고 말한다. 마 형사의 이런 발언은 관객이 실재 사회에서 바라는 상식적 영웅의 모습이며 평범한 시민이 갈망하는 경찰의 이데아다.
“법이 우리나라 사람들 못 지키면 우리라도 좀 지켜야 하는 거 아니야” “나쁜 놈은 그냥 잡는 거야”라는 마석도 형사의 발언은 관객이 실재 사회에서 갈망하는 상식적 영웅의 모습이며, 평범한 시민이 원하는 경찰이다.‘범죄도시’ 1~3편 최후의 격투가 벌어지는 화장실, 버스, 경찰서는 마석도 형사의 정의가 악한의 불의를 단죄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링이 된다. 마 형사의 맨주먹 징벌은 실패할 리가 없으므로 관객들은 이미 결말이 예상되는 마 형사의 승리에 안도하면서 처형극장을 관람하게 된다. 핵주먹과 불싸다귀는 마동석의 ‘시그니처 무브’가 되고 링 위에서 보여질 마 형사의 ‘피니시 무브(레슬러의 마지막 필살기를 뜻하는 프로레슬링 용어)’를 관객들은 기대하게 된다.
‘범죄도시2’에서 강해상은 서울로 잠입한다. 그에게 한국은 최 회장을 납치살해하고 10억원을 받아내기 위해 준(準)치외법권으로 전락해버린 공간이었다.
마동석 “각본은 50편 준비돼 있다”
‘범죄도시’의 시리즈화가 처음 공식 발표된 건 작년 이맘때 ‘범죄도시2’ 언론 간담회가 처음이었다. 주연이자 제작자인 마동석 배우는 이번엔 3편을 소개하면서 모두가 깜짝 놀랄 발언을 덧붙였는데, 바로 “범죄도시 시리즈 각본이 50편 가까이 준비돼 있다”는 언급이었다. 당초 8편까지 예정됐다던 ‘범죄도시’ 시리즈를 두고 마동석 배우는 “관객들이 원할 때까지는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토리가 많다”며 추가 제작의 여지를 남겨놨다.
연변 출신 조선족 조폭, 필리핀 한국인 납치살해범, 야쿠자 마약사범을 순서대로 보여준 ‘범죄도시’ 시리즈는 올해 말 개봉할 4편에선 온라인 불법 코인의 현장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런 기획력이 가능한 이유는 ‘범죄도시’의 실질적 동인이라 할, 한국사회에서 자행되는 범죄 유형이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범죄도시’ 1~3편에 나오는 화장실, 버스, 경찰서 격투장면은 마석도 형사의 정의가 악한의 불의를 단죄하고 처단하는 하나의 링이 된다. 1편의 장첸(사진)은 마 형사에게 처단된다.실재하는 사회 범죄 유형을 차례대로 전시하는 ‘범죄도시’ 시리즈는 그야마로 ‘빌런(악한)의 전시장’이다.
‘범죄도시’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한들은 모두 시민사회의 외부자이자 타자들이다. 3편에서 주성철은 한국인이지만 야쿠자의 마약을 빼돌려 이를 중국 측에 넘기려 한다. 한국이란 장소는 타자들의 범죄에 이용당하는 공간으로서만 기능한다.
1편에서 가리봉동 역시 연변 조선족 조직폭력배들이 무법지대였고(오락실과 불법사채), 2편의 서울도 강해상이 최 회장을 납치살해하고 10억원을 받아내기 위해 준(準)치외법권으로 전락해버린 공간이었다(엘리베이터). 관객이 ‘범죄도시’를 관람하는 건 일종의 이 공포와 불안을 일거에 해소하는 마동석의 한판 쇼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행위처럼 비쳐진다.
신스틸러 장이수·초롱이 앞세워
코믹과 유머로 관람 동인 이끌어
마 형사에게 ‘고환 쥐기’ 굴욕을 당하던 장이수는 4편에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한 경험을 토대로 마 형사에게 조언하는 주연급으로 격상된다고 알려졌다.폭력 위계 서열의 하부자로서의 위성락, 양태, 장이수 캐릭터도 ‘범죄도시’를 이끄는 강력한 흥행 요인이다.
가장 주목할 조연은 배우 박지환이 연기한 장이수 캐릭터다. 1편에서 이수파 두목이었던 장이수는 2편에선 코리안드림국제결혼 사장으로, 3편에선 쿠키영상(영화 본편 상영 이후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 도중 짤막하게 보여주는 영상)으로 짤막하게나마 오락실 사장으로 나와 4편 등장을 예고했다. 마 형사에게 ‘고환 쥐기’ 굴욕을 당하던 장이수는 후속편에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한 경험을 토대로 마 형사에게 조언하는 주연급으로 격상된다고 알려졌는데, 이 코믹한 신스틸러를 보는 재미도 ‘범죄도시’ 시리즈 관람의 강력한 동인이 된다.
3편에서 고규필 배우가 연기한 초롱이는 현재 장이수급 인기를 잇고 있다. 온몸에 전신 문신을 하고 불룩 나온 배를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구찌 티셔츠로 가린 초롱이는 ‘문신 양아치’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민주절차 어긴 강압적 수사과정
마 형사 모순점에도 관객은 열광
역대급 인기에도 불구하고 ‘범죄도시’는 사실 모순점이 가득한 영화이기도 하다. 마 형사가 정말 민주적이고 정의롭느냐를 판단해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마 형사는 CCTV를 가린 ‘진실의 방’에서 자백을 강압할 만큼 절차적 정당성에 둔감하고 폭력배와 ‘형동생’ 관계를 맺고 근무시간 중에 룸살롱 접대 향응을 제공받다 늦잠까지 자는 경찰이다. 다만 악한들의 악행에 비하면 마 형사가 저지르는 위법은 오히려 시시해 보인다. 마 형사의 위법성이 현실적이어서 와닿는다는 설명도 있다.
윤 평론가는 “범죄자들이 무언가를 훔치기로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하이스트(heist) 무비를 보며 관객들은 그들이 범죄에 성공하길 바란다. 마 형사의 위법을 관객들은 오락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이라고 봤다. 조 평론가는 “마석도 형사 캐릭터의 문제점은 관객이 절대악을 제압하는 마 형사의 영웅적 활약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가 이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온갖 강압적 행동과 민주적 절차의 위반을 당연시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마석도 형사를 연기한 마동석 배우. 그는 맨주먹만 사용하는 ‘아날로그 슈퍼 히어로’다.
김유태 기자(ink@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