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이 난감하고 불편한 부모님들 보세요
입력2022.11.08. 오전 8:13
[서평] 나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소녀X몸 교과서'
80년대 생인 필자 세대는 본격적인 성교육을 받 자랐다고 여겨지는 세대이다. 학창시절 구성애씨가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여 성에 대한 문답식 코너를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다.
그 후로 20년 이상 지났고 필자는 이제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사춘기에 접어드는 10대 딸의 성교육을 고민하는 부모가 되었다. 산부인과 의사이니 성교육 전문가 아니겠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전문적인 지식은 알지 몰라도 내 배로 낳은 내 자식의 성교육은 난감하고 불편한 평범한 부모일 뿐이다.
성교육의 현주소
한국에서 제도권 교육을 받은 40대 이하라면 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기에 걸쳐 성교육을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가르치는 성교육의 내용은 지나치게 생물학적이고 해부학적이다.
임신이 되는 과정에 대해 정자와 난자 단계를 강조하는 교육은 하지만, 막상 콘돔과 경구피임약의 복용 등 피임은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부 성교육 강사들이 안전한 자위와 성관계, 피임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교육하기 시작하였으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교육부가 2013년부터 6억 원을 들여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년별로 개발하여 2015년 전국의 학교에 배포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1)에는 다양하고 포괄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필자가 산부인과 의사로 10대~20대 환자들을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 공교육의 성교육이 실제 성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환자는 성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자신의 생리주기와 정상적 생리주기, 안전한 성관계와 피임 방법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부모 역시 포괄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더라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의 교육은 너무 많이 알려줄 필요 없다며 반대한다. 콘돔 씌우기 시연을 위해 콘돔과 바나나를 준비했다가 수업이 취소되거나2), 이차성징 뒤 겪을 수 있는 몽정 등에 대한 정보 전달을 위해 준비한 '교육용 정액 체험'이 취소되는 일3) 등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 자체도 시대착오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다. 교육부 표준안은 성교육 중 '야동', '자위' 등의 낱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청소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뿐 아니라 '동성애' 항목을 삭제하는 등 차별적인 내용을 담아 비판을 받았다.4)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기는커녕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하고 성차별을 조장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교육에 있어 콘텐츠만큼, 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교육이 도달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상태 및 방향이다. 교육부 표준안은 우리 사회에서 성교육의 현주소와 지향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답답한 마음의 한 줄기 빛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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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성교육을 고민하다 찾은 한 줄기 빛, 소녀*몸 교과서 |
ⓒ 우리학교 |
성교육의 구체적인 내용과 방향, 스토리텔링이 정리되지 않아 한창 답답할 때 <소녀X몸 교과서>라는 책을 만났다. 부제는 '내 몸을 알고 싶은 모든 십 대 여성에게'였는데, 십 대 뿐 아니라 나다움과 나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책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 파트는 '몸X사춘기'인데 이차성징에 따른 몸의 변화와 월경에 대해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단어 선택이나 대화의 방식이 필자에게는 놀랍도록 생생했다.
진료실에서 매일같이 만나는 내 몸과 성에 대해 무지한 환자들에게 설명하는 내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책을 읽는 내내 해당 페이지를 여러 부 출력해서 비치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큼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내용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놓았다.
두 번째 파트는 '몸X섹슈얼리티'로 성정체성과 성적지향, 연애/동의/갈등, 자위/성관계, 성 매개 감염, 임신과 출산, 피임 및 임신중지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현재의 성교육에서 꼭 필요하지만 다뤄지지 않는 부분으로 아이가 이런 내용까지 이렇게 자세하게 알아야 할지 고민이 들 수도 있겠다.
책의 서론에서는 '이 책을 함께 읽는 어른들에게'라는 제목으로 이에 대해 부탁하고 있다. 참고로 이 책이 담아낸 이야기는 '포괄적 성교육(CSE)'을 기반으로 한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가이드라인에서 만 12~15세 청소년에게 권장하는 수준으로, 많은 청소년이 이미 교육받는 내용이다.
세 번째 파트 '몸X세상'에서는 성적 대상화, 여성 혐오, 미디어 리터러시, 포르노그래피, 가스라이팅, 성폭력, 디지털 성범죄 등 사회 문화적인 현안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시중의 성교육 지침서에서 잘 다루지 않는, 이 책의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음식점 벽에 붙은 주류 광고 모델의 포스터, 게임 속 여성 캐릭터, 예능 프로그램 속 여성 연예인 등을 예시로 들어 생각해볼 지점을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가스라이팅, 스토킹, 성폭력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 책이 딸의 성교육을 고민하던 답답한 필자의 마음에 한 줄기 빛과 같은 느낌이기도 했으나 "아, 내가 먼저 쓸 걸"이란 질투 섞인 후회도 살짝 했다. 내 주변의 모든 딸에게, 그리고 그 딸의 부모들에게, 나아가 책의 첫 장에 쓰인 문구처럼 '여성의 몸과 삶을 이해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1) 교육부 학생건강정보센터 https://www.schoolhealth.kr/web/search/selectTotalSearchList.do?bbsId=&lstnum1=2108&pageIndex=1&pageUnit=10&sortOrder=&searchWrd=%EC%84%B1%EA%B5%90%EC%9C%A1
2) 바나나에 콘돔 씌워보기 성교육…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먼타임스. 2020.07.06. http://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940
3) '교육용 정액체험'은 성교육이 아닌가. 여성신문. 2022.07.25.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016
4) '황당한' 성교육 교재로 반드시 가르치라는 교육부. 한겨레. 2015.08.24. https://m.hani.co.kr/arti/society/schooling/705781.html#cb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이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11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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