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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4-01-09 09: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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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불닭볶음면은 쓰레기, 찜질방 옷은 테러블? 조롱받는 한국 문화
내용

 입력2024.01.09. 오전 3:01

 

넷플릭스 신작 ‘선 브라더스’ 속
비아냥 대상 된 한국 문화 논란

 

‘선 브라더스’의 형 찰스(맨 왼쪽) 일행이 코리안 타운의 한국계 조폭들을 만나는 장면. 분홍색 옷을 입은 테런스 강이 한국어로 중재하려 하지만 ‘찌질이’ 취급만 받는다. /넷플릭스
‘불닭볶음면’이 ‘쓰레기(trash)’라고? 지난 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국 드라마 ‘선 브라더스(원제 ‘The Brothers Sun’).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중국계 말레이시아 배우 양자경(楊紫瓊·양쯔충)이 주연을 맡고, 아시아계 제작자가 중화권 작가와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 만든 드라마다. 양자경의 근사한 연기와, 오락 드라마로서 손색없는 전개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관련 소재들이다. 1분 동안 오고 가는 한국어 대사를 비롯해 한국을 상징하는 소재들이 빈번히 나온다. 불닭볶음면은 ‘쓰레기’로, 한국 찜질방 옷은 ‘끔찍한(terrible)’ 옷으로 묘사된다. 한국계 조연은 얻어터지는 ‘찌질이’ 역할이다. 중화권 소재를 대하는 방식과는 온도 차가 있어, 마냥 즐기기에는 석연치 않은 뒷맛이 남는다.
 

한국적 소재, 비아냥 대상 돼


대만 폭력 조직 삼합회 우두머리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 8부작 액션·범죄·가족 드라마다. 가족을 지키려 두 아들 중 한 명을 데리고 LA에 숨어 살던 아내(양자경 분)의 정체가 들통나며 반대 세력의 타깃이 된다. 미국 문화에 동화된 동생 브루스와, 삼합회 일원으로 자란 형 찰스가 가치관 차이로 좌충우돌하며 위기를 넘긴다. 음식을 통해 문화를 보여주는 장면이 많은데, 정성스레 만든 대만 파인애플 케이크 펑리수와 차, 딤섬 등 여러 중화권 음식이 조명된다.

반면 한국을 상징하는 음식은 ‘불닭볶음면’과 ‘생마늘’이다. ‘불닭볶음면’은 빌런으로 나오는 여성 검사가 계속 봉지째 들고 다니면서 먹는다. 경찰이 가루 떨어지는 걸 혐오하며 불닭볶음면을 빼앗더니 이렇게 말한다. “Ugh, This is trash(으, 이건 쓰레기야).” 한국어 자막에는 ‘불량 식품’으로 순화됐지만, 경찰의 혐오하는 표정과 어조가 생생히 전해진다. 한국계 조폭이 생마늘을 된장에 찍는 장면도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다.

무엇보다 한국계로 나오는 브루스의 친구 역 테런스 강이 굴욕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양쪽 엄지손가락에 고문을 당하고, 골프공으로 맞아 얼굴 가득 흉측한 멍을 달고 나온다. 그럼에도 삼합회 ‘꼬붕(부하)’이 되고 싶어 하는 설정이다.
 

”OTT 최소한의 제작 기준 필요”


코미디 형태를 빌렸지만 이런 대사도 있다. 브루스가 밀린 학비 때문에 학교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데, 직원이 한국계다. 브루스는 “인종주의”라고 항의하며 이렇게 말한다. “내 조상(중국인)들이 당신 조상(한국인)한테 저지른 전쟁범죄 때문에 나한테 복수하는 거겠죠”. 여기에 한국계 조폭과 직원 모두 ‘돈뭉치’를 내놓자 순순히 원하는 걸 들어준다. 브루스는 한국 찜질방을 “끔찍한 반바지랑 슬리퍼”를 착용하는 곳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극본은 공동 제작자이기도 한 아시아계 바이런 우(Byron Wu)가 썼다. 미국 매체에 따르면, 중국계와 대만계로 작가진을 꾸렸고 한국계 작가도 포함하려 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그는 “아시아계 동료들과 공감한 문화적 차이를 녹였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국적 소재를 이렇게 활용해야 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한국 문화를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는 내용들”이라며 “넷플릭스는 제작자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런 방침이 특정 문화권의 왜곡된 시선을 거르지 못할 위험도 있다”고 했다. 세계인의 정서에 부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화 비평 사이트 IMDb엔 ‘선 브라더스’가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진부한 묘사’를 담고 있다는 평가도 올라오고 있다.
 

김민정 기자 mj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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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202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