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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4-06-04 10: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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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에베레스트보다 힘들었다"…64세 엄홍길, 재도전 끝 정상에
내용

 

입력2024.06.04. 오전 7:30

 

 

미답봉 ‘쥬갈 히말라야1봉’ 최초 등정
한국·네팔 수교 50주년 기념 등반…첫 도전 실패 후 6일 만에 쾌거


강력한 눈폭풍을 만나 정상을 200여 m 남기고 1차 등정에 실패한 뒤 엿새 만에 마침내 쥬갈 히말라야 정상에 오른 엄홍길 대장이 태극기를 펼쳐들고 감격에 젖은 모습. 엄 대장은 2007년 로체 등정 이후 17년 만에 고산 등정에 나서 '도전에 나이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줬다

 

 

한국-네팔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히말라야 미답봉未踏峯 원정에 나섰던 '한국-네팔 우정 원정대 2024Korea-Nepal Friendship Expedition 2024 (대장 엄홍길)'가 쥬갈 히말라야1봉(6,591m) 등정登頂이라는 쾌거를 남겼다.

엄홍길(64·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대장은 지난 5월 3일 오후 6시55분(현지시각 3시40분) 쥬갈 히말라야1 정상을 밟았다고 위성전화로 급전했다. 오전 1시 정상 도전에 나선 지 14시간 40분 만이다.

쥬갈 히말라야1 정상에 오른 엄 대장은 세찬 바람이 부는 가운데 거친 목소리로 "마침내 쥬갈 히말라야1 정상에 올랐다. 처녀 등정에 성공했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조선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불굴의 정신,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올랐다"며 "주위에서 60대 중반의 나이를 보고 다들 우려했지만, 도전에 나이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 원정대가 사상 처음 등정한 쥬갈 히말라야 1봉은 가칭 '한-네팔 희망봉' '한-네팔 우정봉'이나 '코리아피크' 등으로 명명돼 양국 국민 사이에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

 

 

엄홍길휴먼재단UHF(이사장 이재후), 대한산악구조협회KARA(회장 노익상), 네팔등산협회NMA 합동으로 구성된 한국-네팔 원정대는 눈폭풍을 동반한 기상이변과 눈사태, 낙빙落氷 등 갖은 시련 속에서도 인내와 K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등정에 성공, 한국과 네팔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간 특별한 이정표를 남겼다.

원정대는 앞서 지난 4월 27일 한 차례 정상 등정에 나섰다가 정상을 불과 200여 m 남기고 초강력 눈폭풍을 만나 정상 문턱에서 하산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악천후 속에서도 엄 대장과 KARA 대원 6명, 그리고 NMA 소속 베테랑 산악인이자 셰르파 3명, 총 10명이 로프를 깔면서 등정에 나선 지 1박2일, 25시간의 사투 끝에 하이캠프로 무사히 복귀했다.

 

 

마침내 쥬갈 히말라야 1봉 정상에 오른 한국의 대표적인 산악인 엄홍길 대장(왼쪽)과 네팔을 대표하는 산악인 락파 덴디 셰르파가 한국-네팔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깃발을 들고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했다.

 

 

엄 대장은 대원들이 사고 없이 안전하게 하산한 것에 위안을 삼았다. 베이스캠프로 철수한 엄 대장은 "원정대에 좌절은 없다. 반드시 다시 등정해 대한 산악인의 기개를 보여 주자"며 대원들을 격려했고, 대원들 역시 "두 번 실패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천우신조였을까. 5월 3일 맑은 날씨 예보를 하늘이 준 기회로 삼았다. 오전 1시 정상 공격에 나선 엄 대장과 락파 셰르파 등 3명은 거침없이 정상을 향해 나갔다. 험준한 지형을 관찰하며 결국 한 발씩 내디뎌 마침내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첫 정상 등정 실패 엿새 만에 끝내 정상에 서는 감격을 맛본 것이다. 엄 대장과 락파 덴디(36), 람바 바부(35) 셰르파 총 3명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다음날 구은수(KARA 부회장·54) 한국 측 등반대장을 비롯한 4명의 KARA 대원들이 정상에 올랐다.

 

엄 대장은 "이번 원정은 에베레스트 등정보다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초등, 미답봉의 고충을 알고 도전에 나섰지만 이런 험준한 지형일 줄 몰랐다는 것이다. 엄 대장은 "산세가 너무 험악했다. 하이캠프(5,300m)를 떠나면 바로 70~80도 경사면이 펼쳐져 수직 벽을 타는 듯한 고난도의 지형인데다 악천후까지 더해 애를 먹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매일 눈폭풍이 몰아쳐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밭을 헤치며 길을 만드는 작업(러셀)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루 고생해 길을 만들어놓으면 다음날 눈이 내려 흔적도 없이 만들어 낭패를 보기 일쑤였다.

그는 "통상 하이캠프를 구축한 뒤 캠프 1, 캠프 2를 설치하면서 정상 공격을 조율해야 하는데 쥬갈 히말라야는 하이캠프를 떠나면 완만한 곳이 없어 텐트 1동 설치 공간 확보조차 어렵다. 캠프 설치 자체가 불가능했다"며 "하이캠프를 떠나면 당일 아니면 1박2일 동안 정신력과 체력을 바탕으로 사활을 걸고 정상 등정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고 했다.

 

 

6,000m급이지만 8,000m 맞먹는 험준한 지형

이번 등정지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북동쪽으로 145km 떨어진 곳인 쥬갈 히말라야로 애초 네팔 정부가 한국-네팔 수교 기념으로 60여 년 만에 공개한 처녀 등정지라 루트를 만들어 가야 하는 고난의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쥬갈 히말라야 1 피크가 생각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았다. 해발고도 6,000m급이지만 거의 8,000m급과 유사한 지형과 험준한 산맥으로 연결돼 공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10m 앞도 보이지 않는 악천후 속에 생사를 오가는 투쟁을 벌여야 했다.

엄 대장은 "대원들 모두 초인적인 인내심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채 반드시 등정에 성공하려는 의지를 보였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며 "며칠 동안 체력을 보충해 재도전에 나섰고 원정기간 유일하게 맑은 날이 전개된 날 정상에 올랐다"고 했다.
 

 

원정대는 지난 4월 5일 카트만두에 도착, 4월 8일부터 베이스캠프를 향한 카라반(이동)을 시작했다. 4월 13일 쥬갈 히말라야 4,700m 고지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베이스캠프에서 정상 공격을 위한 준비를 마친 뒤 4월 15일 베이스캠프에서 600m 위에 전진기지 격인 하이캠프를 구축, 정상 도전을 위한 루트 설정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아무도 오르지 않은 미답봉인데다 애초 구상했던 등정로 설정 작업이 예상과 달리 정상과의 길이 단절되는 바람에 첫 시작부터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엄 대장은 쥬갈 히말라야 정상 공격을 위한 정밀한 루트 재설정에 나서 애초 등정로 대신 정상을 직접 공격하는 정공법을 택하기에 이르렀다.

 

 

 

고도의 체력 필요한 등정 길

원정대는 지난 4월 25일 며칠 고생 끝에 5,800m 고지에 캠프 1을 차리려 했지만 텐트를 칠만 한 장소가 없었다. 한국-네팔 합동 원정대는 베이스캠프를 떠난 지 13일이 지났지만, 추가 캠프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 결국 하이캠프에서 정상 등정을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정상 등정 일을 조율하던 엄 대장과 대원들은 눈폭풍이 잠잠하기를 기다리다 마침내 4월 27일을 D데이로 설정했다. 하지만 쥬갈 히말라야 지역은 베이스캠프 설정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눈폭풍이 몰아쳐 더 이상의 날씨 덕을 보는 대신 보름 전후로 시야가 다소 확보되는 야간 산행에 기대를 건 것이다.

엄 대장은 "이번 원정은 하루하루 날씨와의 전쟁이었다"며 "봄인데도 동계 등반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추위와 눈바람이 몰아 닥쳤다. 4월 베이스캠프에서 이런 추위를 맞아본 것도 평생 처음이었다. 하지만, 한국과 네팔 수교 50주년을 맞은 특별 산행이니만큼 반드시 성공해 양국 간 큰 이정표를 세우고 싶었다"고 했다. 사실 이번 원정대가 베이스캠프 도착한 첫날부터 하루도 눈이 내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며칠 동안은 베이스캠프와 하이캠프에 설치한 텐트가 통째로 날아갈 정도의 강력한 눈폭풍이 불어 닥쳐 극도의 공포감을 주기도 했다. 하루는 대원들 전체가 텐트를 사수하느라 바람 방향을 상대로 사지로 텐트를 붙잡고 저지하면서 3시간 동안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등반 중 대원 추락… 눈사태 만나기도

이번 원정은 크고 작은 사고도 계속됐다. 지난 4월 17일 하이캠프에서 캠프1 구축을 위해 트래버스(수직이동)에 나섰던 변준기 대원이 하켄(머리 부분에 구멍이 있는 못, 바위 틈새에 박아 자일을 꿰거나 손잡이나 발판 따위로 쓴다)이 떨어져 추락하면서 로프에 손목이 뒤틀리는 사고가 발생했고, 나흘 후 21일 캠프1 구축에 나섰던 네팔 대원 다메 셰르파는 눈사태에 휩쓸려 600m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다. 다행히 대원들의 신속한 구조작업으로 구사일생했다. 두 명 모두 구조 헬리콥터 편으로 카트만두 병원으로 급송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이번 원정을 현지 지원했던 은가와 니마 셰르파(SORA ADVENTURE TREKS AND EXPEDITION 대표)의 역할이 컸다. 그는 병원 측과 협조해 병원 옥상에 헬기를 착륙시키는 신속한 조치로 대원들의 안전과 생명 확보에 기여했다.

 

4월 27일 1차 등정 당일엔 엄 대장도 얼음에 박힌 아이스스크루(얼음에 박는 못)가 떨어져 나가면서 위험천만한 상황을 겪었다. 그는 머리가 바위에 충돌하기 직전 어깨를 갖다 대며 큰 사고를 모면하는 등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이번 원정대는 엄홍길휴먼재단, 대한산악구조협회, 네팔등산협회등 한국과 네팔의 사상 첫 합동 등반이었다. 엄홍길 대장이 양국 합동 등반대장으로, 한국 측 구은수 등반대장을 비롯한 정재균(전북구조대·52), 백종민(강원구조대·51), 김동진(제주구조대·51), 엄태철(대구구조대·48), 변준기(대전구조대·46) 대원 총 7명이 나섰다. 네팔에서는 시샤팡마(8,013m)를 제외한 히말라야 13좌 등정자로, 최연소 K2(8,611m) 등정자이자 네팔 여성 최초 안나푸르나 1봉(8,091m) 무산소 등정자인 다와 양줌(34·NMA 부회장·베이스캠프 동행), 히말라야 9좌 최단 등정 기네스 세계기록 보유자이자 14차례 에베레스트(8,848m) 등정자인 락파 덴디(36), 람바 바부(35), 다메 셰르파(30) 등 양국의 베테랑 산악인들로 합동 등반대를 구성했다.

 

푸쉬파 카말 다할 네팔 총리(가운데 검은색 모자)는 한국과 네팔의 산악 전문가들로 구성된 합동원정대가 무사히 등정한 것을 축하했다. 그는 "이번 원정 성공으로 한국과 네팔의 영원한 우정을 담는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남겼다"며 "한국과 네팔이 수교 50주년을 맞아 산악인뿐만 아니라 정부와 민간차원 등 다양한 방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엄 대장은 지난 2007년 로체(8,400m) 등정을 마지막으로 8,000m급 16좌(봉) 완등에 성공하면서 고산(6,000m 이상) 등정을 중단했다. 어찌 보면 산악인의 현역 은퇴한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한국과 네팔의 수교 50주년을 맞은 올해 본인이 직접 원정 경비(바이오스타 줄기세포연구원 후원 등)를 마련, 원정대를 구성했다.
 

푸쉬파 카말 다할 네팔 총리는 한국과 네팔의 산악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번 원정대가 무사히 등정한 것을 축하했다. 그는 "이번 원정 성공은 한국과 네팔의 영원한 우정을 담는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남겼다"며 "한국과 네팔이 수교 50주년을 맞아 산악인뿐만 아니고 정부와 민간차원 등 다양한 방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푸쉬파 카말 다할 총리는 원정 직전 원정대 전원을 총리실로 불러 격려한 바 있다.

 

정병선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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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2024-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