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4.07.28. 오후 10:04
사도광산 내 터널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참담한 노역을 한 현장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한국은 일본 측이 조선인 노동자들에 관한 전시 공간을 현지에 설치하고, 매해 일본 중앙정부 관계자가 참석하는 추도식을 열기로 약속한 것을 전제로 찬성했다.
그러나 갈등 불씨가 여전하다. 일본이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한 사실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을 도외시하는 일본의 태도로 인해 9년 전 유사한 갈등을 빚었던 군함도 논란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7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회의에서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를 표결 없이 컨센서스(만장일치) 방식으로 결정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출구에 28일 이 소식을 축하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
그런데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 뒤 카네 타케히로 주 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과 그들의 고난을 기리기 위해 새로운 전시물을 사도광산 현장에 이미 설치했다”면서도, 정작 강제 동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담화에서 언급한 공식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14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는데, 반가운 소식이다. 힘써온 많은 현지 관계자들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저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만 두고 자축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자의적으로 왜곡할 여지를 남겼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이 물밑 교섭에서 강제 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현지 시설에서 상설전시를 하고, 전시 중 한반도 출신자가 1500여명 있었다는 점 노동환경의 가혹함을 소개하는 방안 등을 타진해 한국이 최종 수용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한국 외교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으나,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사도광산은 일본 니가타현 북서부에 있는 사도섬에 있다. 에도시대(1603~1868년)부터 금광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일제가 강제 동원한 수많은 조선인들이 노역을 해야하는 현장, 그 자체였다. 군사물자에 필요한 구리·철·아연을 집중적으로 캐기 시작하면서 광산의 기능이 바뀐 것이다.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이곳에 끌려와 가혹한 환경에서 노역에 동원됐다.
사도광산의 선광장 모습. [외교부]
2019년 발표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 1140명의 조선인들이 사도광산에 동원돼 강제 노역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 정부가 공식 판정한 사도광산 강제 동원 피해자만 148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73명이 진폐증과 폐질환 같은 후유증을 앓았다. 사망자는 9명(사망률 6%)으로 일본 전 지역 조선인 노무자 사망률(0.9%)보다 높다.
당초 일본은 사도광산이 17세기 세계 최대 규모의 금 생산지였다는 점만 부각해 세계유산 등재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로 한정했다. 조선인 강제 동원이 이뤄진 일제강점기 이후 시기를 완전히 배제한 꼼수였다. 이에 한국이 세계유산 등재 철회를 요청하며 반발했다. ‘완전한 역사’를 반영하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원칙에도 위반됐다. 그러자 일본은 “관련 조치를 취하겠다”며, 사도광산 현장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노동환경을 기리는 전시물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2층에 마련된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실. [외교부]
실제로 사도광산에서 약 2㎞ 떨어진 외곽에 마련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는 당시 조선인 노동자의 실태를 드러내는 자료들이 일부 포함돼 있다. 문제는 일본어는 물론 영문 안내문 어디에도 ‘강제 동원’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점이다. 징용의 강제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물론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평가도 없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15년 군함도 등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도 조선인 강제 동원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키지 않았다.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로 약속해 만든 ‘산업유산정보센터’는 군함도에서 무려 1000㎞ 떨어진 도쿄 한복판에 건립됐다. 조선인 차별이나 인권 침해 사실은 제대로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일본의 말만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이유다.
헤럴드 경제
이정아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