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식 한국의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한국소식2023-04-24 11:20:33
0 4 0
비대면 진료 초진 허용,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이유
내용

 

입력2023.04.23. 오후 7:01

 

지난 2022년 11월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행된 '의료영리화 정책 즉각 중단 촉구 기자회견'. 대한의사협회 등 5개 보건의약단체가 참여했다. 보건의약단체들은 대부분 비대면 진료의 허용을 의료영리화 정책의 일환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진=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진료의 한시적 허용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가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초진입니다.

초진은 처음 하는 진찰이라는 뜻으로, 여기에선 환자가 처음 받는 진찰을 뜻합니다. 초진 허용 여부에 따라 보건의료계의 지각변동이 올 수도, 비대면 플랫폼 기업의 몰락이 초래될 수도 있습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 총 5건을 상정했습니다. 해당 법안들을 통과시킬지 말지를 법안소위에서 논의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법안소위는 25일 열릴 예정입니다. 법안소위는 비슷한 법안을 함께 심사하며 소위 내에서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 이를 묶어 대안을 만들고 통과시킵니다.

법안소위에 상정된 법안 5건 중 1건을 제외하고는 초진을 비대면 진료 허용 범위에서 제외했습니다. 이른바 재진만을 허용했다는 의미인데, 환자가 초진을 받을 때는 병의원에 직접 가서 진료를 받고, 해당 병의원에 두 번째 진료를 받을 때는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는 방안입니다.

유일하게 비대면 진료에 초진을 허용한 법안은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입니다. 김 의원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위원입니다. 국회 스타트업 연구모임인 '유니콘팜'의 공동대표이기도 합니다.

김 의원은 최근 비대면 진료 입법을 위한 긴급 토론회를 열고 초진을 포함한 비대면 진료 허용 필요성을 적극 어필한 바 있습니다. 김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의 제안자 11명 중 복지위 소속 위원은 한 명도 없습니다. 초진과 관련, 여야간 대립이 아닌 복지위 Vs 비(非)복지위 대립 구도를 보입니다.

초진에 담긴 '산업적 의미'…의사 위에 서는 플랫폼

코로나19 이전 상황으로 잠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초진은 환자가 어떤 증상을 느끼거나 질병을 앓고 있다고 의심되는 경우 병의원을 찾아가면서 이뤄집니다. 

이때, 의사는 진찰하고, 검사하고, 질환을 특정해 치료를 시작합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며칠 뒤에 오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의사가 선택한 치료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환자의 증상이 혹여 그대로거나 악화되는 경우 다른 질환을 의심하고 다른 치료를 진행하거나 큰 병원(상급종합병원 등을 통칭)에 진료를 의뢰해 더 많은 검사와 확인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환자는 다행히 초진 이후 증상이 완화됐습니다만, 당뇨병이어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이 환자는 당뇨병으로 인한 병의원 방문은 재진으로 분류됩니다. 약물로 관리되는 당뇨병 환자는 주기적으로 진료를 받고, 의약품을 처방받아 약국에서 조제약을 수령하고 복용합니다.

여기에서 비대면 플랫폼의 서비스가 갈립니다. 비대면 진료에 초진을 허용하는 경우, 비대면 플랫폼은 의료기관 선택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머리가 아플 때 어떤 병의원을 갈 것인가를 선택할 때 비대면 플랫폼은 '가장 가까운 병의원'을 소개할 수도 있고, '가장 방문자 평가가 좋은 병의원'을 소개할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이 잘 활용하는 '프리미엄 서비스'에 등록된 병의원부터 소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프리미엄 서비스는 비대면 플랫폼 기업과 유무형적 관계를 맺은 이후 병의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뜻합니다.

종합하자면, 초진의 허용은 비대면 플랫폼의 BM(비즈니스 모델) 외연을 크게 넓혀줍니다. 비대면 플랫폼 입장에서는 가맹 병의원을 늘리고, 비가맹 병의원 대비 차별된 형태로 병의원-환자 연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환자의 병의원 선택에 비대면 플랫폼이 관여하기 때문에 가맹 병의원이 많을수록 비대면 플랫폼의 시장 장악력도 커집니다. 병의원이 비대면 플랫폼에 종속되는 역학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도 커집니다.

약국가, '초진? 약배송 자체가 문제'

비대면 진료에 초진이 허용된다면 약국은 어떻게 될까요? 약국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단순히 초진 허용과 제외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약국은 병의원 바로 아래층이나 옆 점포 등 '최대한 병의원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환자가 병의원에서 받은 처방전으로 약을 조제해 가져가야 하는데, 병의원 바로 옆에 있으면 환자들은 십중팔구 그 약국으로 갑니다. 2000년에 진행된 의약분업으로 인해 약 조제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약국에서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구조를 적극 활용한 약국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문전약국'입니다. 큰 병원에서는 하루 수 천명의 환자가 방문합니다. 이 병원에서 발행하는 처방전은 하루 수 천건에 달합니다. 이러한 환자를 주요 고객층으로 하는 약국이 문전약국입니다. 서울 내에는 문전약국 한 곳이 연매출액이 100억원이 넘는 곳도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희망하는 환자가 조제약을 받으러 약국까지 가진 않습니다. 조제약 배송 서비스가 가능하다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조제약은 서울에 있는 약국에서 받든, 강원도에 있는 약국에서 받든 간에 같습니다. 환자, 그리고 비대면 플랫폼 입장에서는 배송비가 가장 싼 약국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변수가 있습니다. 모든 약국이 모든 약을 다 보유하고 있진 않습니다. 환자가 병의원 바로 옆 약국을 선호하는 이유도 해당 병의원이 처방한 의약품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병의원에서 비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가 조제약을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해당 병의원 바로 옆 약국에서 조제약을 받는 방법입니다.

비대면 플랫폼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도로 연결망이 잘 갖춰진 입지에 약 배송만을 위한 약국 설립을 유도하는 방안'입니다. 현행법상 약사만이 약국을 설립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 약국 운영은 할 수 없습니다. 

통상 병의원 옆 약국 점포는 비싼 편입니다. 서울에서는 보증금과 권리금 등을 포함하면 약국 양도양수 거래 규모는 10억원이 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를 역이용해 병의원과 관련 없는 창고형 점포에 약국을 설립하고, 비대면 진료에서 나오는 처방전만 받아 조제하는 이른바 '창고형 배달전문 약국'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창고형 배달전문 약국 자체는 위법이 아닙니다. 다만 영업 과정에서 현행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큰 형태입니다. 면허 대여 약국 의혹이 가장 큽니다. 약사 면허는 대여할 수 없습니다.

약 배송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가장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문전약국입니다. 하루 수 천명의 환자가 제출하는 처방전이 비대면 플랫폼을 이용해 다른 곳으로 흘러가면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매출 타격에 대응하기 위해 문전약국 또한 비대면 플랫폼을 활용한 약배송에 적극 뛰어들 가능성도 높습니다. 문전약국은 여러 명의 약사를 고용해 운영하는 약국입니다. 규모 자체가 대형이기 때문에 약배송에 합류하기 위한 자본력과 인력이 부족하진 않습니다.

가장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약국은 동네약국입니다. 비대면 진료 환자가 동네약국을 특정해 조제약을 배송받겠다고 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대부분의 동네약국은 약사 한 명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형태의 약국들과 비교해 약배송 업무까지 같이 하기에는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약국가에서는 비대면 플랫폼의 성장이 곧 동네약국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플랫폼, '재진만 허용, 사형선고와 다름없어'

아까 설명한대로 비대면 진료에서 초진을 허용하면 비대면 플랫폼 BM 외연이 커집니다. 반대로 재진만 허용할 경우 BM이 극도로 저하됩니다. 환자의 병의원 선택이 대부분 '초진한 병의원'으로 고정돼있기 때문에 비대면 플랫폼의 입지가 줄어듭니다. 비대면 플랫폼은 재진 환자와 병의원을 연결해주는 과정에서 서비스를 창출해야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재진 환자가 적다는 점도 비대면 플랫폼이 걱정하는 부분입니다. 비대면 진료가 가장 이상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는 '경증 환자의 진료'인데, 경증 환자의 진료는 대부분 초진으로 끝납니다. 한 번 병의원 갖다 와서 진료와 치료, 그리고 조제약을 복용했더니 증상이 호전돼 병의원을 가지 않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사실상 재진만 허용하는 비대면 진료는 비대면 플랫폼의 줄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각종 성명 발표와 토론회 개최 등은 이러한 위급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의료계와 약국가에서는 초진은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특히 약배송 자체가 약국가의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한약사회 등에서는 아직까지 원칙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설혹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재진만 허용된다면 비대면 플랫폼의 영향력이 축소돼 비대면 서비스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점도 노리고 있는 듯합니다.

안치영 기자(acy@bloter.net)

스크랩 0
편집인2024-09-18
편집인2024-09-18
편집인2024-09-18
편집인2024-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