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4.03. 오전 3:02
푸틴 만나 “美중심 세계질서 반대”
스페인-싱가포르 총리와도 회담
6일엔 마크롱-EU집행위장 만나
우크라戰-경협 지렛대로 외교 공세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서방과 아시아 주요국 지도자들을 잇따라 만나며 대미 경쟁에서의 우군 확보를 위한 공세적 외교를 펴고 있다. 시 주석이 지난달 20∼2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이후 외교적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과 경제 협력 등을 지렛대 삼는 형국이다.
● 習, 릴레이 정상회담으로 ‘美 견제’
중국은 ‘보아오 포럼’ 등을 계기로 세계 각국 정·재계 리더를 최근 대거 초청했다. 위 사진은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오른쪽)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3월 31일 베이징에서 회담한 뒤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아래 사진은 리창 중국 총리(왼쪽)와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는 모습. 베이징=신화 AP 뉴시스1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중국판 다보스포럼’ 보아오포럼(3월 28∼31일) 참석을 위해 중국을 찾은 스페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각각 정상회담을 했다.
시 주석은 지난달 31일 베이징에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가진 회담에서 “중국과 유럽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유럽의 전략적 독립성이 필요하다”면서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는 중국과 유럽은 서로 협력하며 좋은 친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에 가담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에둘러 전한 것으로 해석된다.
같은 날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미국의 행보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시 주석은 “싱가포르가 중국의 이익과 가장 밀접하게 통합돼 있다”면서 “디커플링(탈동조화)과 (공급)망 단절에 저항해야 하며, 특정 국가가 아시아인의 행복 추구권을 박탈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과 원활한 흐름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 일본 외교장관이 2일 베이징에서 만나 각종 현안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특히 중국은 미국과 공조를 강화하는 일본을 견제했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은 “미국은 일찍이 집단 따돌림 수단으로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잔혹하게 압박했는데 지금은 중국에 이 수법을 다시 쓰고 있다”면서 ‘위호작창(爲虎作倀)’이라는 성어를 언급했다. ‘나쁜 사람의 앞잡이가 돼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미국에 밀착한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반면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상은 미중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대만해협에서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 마크롱 “中, 우크라戰 역할” 당부할 듯
중국은 유럽과의 거리 좁히기를 통해 미국의 압박을 방어하는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EU를 갈라치기 해 미국의 중국 봉쇄 정책을 벗어나려는 의도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사진)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이번 주 중국을 방문해 6일 시 주석과 3자 회동을 할 예정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방중은 2019년 12월 취임 이후 3년 4개월 만에 처음이다.
구체적인 회동 안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장기화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 달라고 시 주석에게 촉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한 싱크탱크 행사 연설에서도 “중국의 향후 러시아 정책이 EU와 중국 관계를 좌우할 결정적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 역시 시 주석에게 러시아를 지원할 경우 재앙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할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은 지난달 31일 익명의 엘리제궁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이 참담한 결정을 내린다면 전 세계적 갈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리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협력하고 우리의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엘리제궁은 중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에 즉각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이기 때문에 이번 회담을 중시하고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