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4.03. 오전 11:26 수정2023.04.03. 오전 11:27
日외무상에게 '악당의 앞잡이 되지 말라'며 원색적 압박
美반도체회사 조사 개시 발표하며 한국에도 '무언의 경고'
하야시 일본 외무상 만난 왕이 중국 정치국 위원(우)
[중국 외교부 홈피캡처.재판매 및 DB 금지]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미·중 전략경쟁의 전장으로 부상한 반도체 부문에서 미국의 중국 상대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 맞서 중국이 미국, 일본, 네덜란드 등 관련 국가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견제와 압박에 나선 모양새다.
중국 안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 기지를 보유한 한국에 대해서도 모종의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중국 외교라인의 최고위 인사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지난 2일 베이징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국내 일부 세력이 미국의 잘못된 대(對)중국 정책을 추종하며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 관련 문제에서 중국에 먹칠을 하고 도발을 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행동은 전략적으로 근시안적이며, 정치적으로 잘못된 것이자 외교적으로는 더욱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왕 위원은 '반도체'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같은 날 하야시 외무상과 만난 친강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은 직접 반도체를 거론하며 원색적으로 일본을 압박했다.
친 부장은 "미국은 일찍이 집단 따돌림 수단으로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잔혹하게 압박했는데 지금은 중국에 이 수법을 다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쁜 사람의 앞잡이가 돼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성어 '위호작창(爲虎作창<人변에 長몸>)'을 언급했다.
위호작창은 호랑이에게 잡아 먹힌 사람은 죽어서 창귀가 돼 호랑이가 먹이를 구하러 갈 때 길잡이 노릇을 한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의 앞잡이가 돼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
미국을 호랑이에 일본을 창귀에 각각 비유하며 막말에 가까운 발언을 한 셈이다.
이에 앞서 탄젠 네덜란드 주재 중국 대사는 지난달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네덜란드가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막는다면 "결과가 없지 않을 것"이라며 "상응 조치에 대해 추측하지 않겠지만 중국은 이것을 참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생산장비 강국인 일본과 네덜란드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디커플링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 일본과 네덜란드는 워싱턴DC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미국과 협상을 진행했다. 당시 협상 결과가 공식 발표되진 않았지만, 일본과 네덜란드는 미국이 지난해 10월 발효한 대중국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동참하기로 한 것으로 보도됐다.
실제로 일본과 네덜란드에서 지난달 구체적 조치가 발표됐다.
일본은 23개 첨단반도체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법률 하위 규정을 개정해 오는 7월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발표했고, 네덜란드는 리에 슈라이네마허 대외무역·개발협력부 장관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특정 반도체 생산 장비 수출 통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규제를 여름 이전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수출 통제의 대상은 중국임이 분명해 보였다.
최근 미국이 자국법에 따른 보조금을 받는 각국 기업들의 중국 내 반도체 공장 생산능력 확장에 제동을 건 이른바 반도체법 '가드레일' 규정을 발표하며 중국을 고강도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중국도 1차로 일본과 네덜란드를 상대로 대응에 나선 양상이다.
또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은 지난달 31일 미국의 대표적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 제품에 대해 인터넷 안보 심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하며 미국을 향해서도 현 상황을 좌시하고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마이크론에 대한 조치가 미국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 시설을 보유한 한국에 대한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마이크론은 상하이에서 해온 D램 설계 작업을 지난해 말 중단하고 150명의 중국인 엔지니어에게 미국이나 인도로 이전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이는 중국에 반도체 생산 시설을 보유한 한국 등 제3국 기업들도 미국의 디커플링 압박에 응해 중국을 떠날 경우 '후과'가 있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현지 공장에 대한 미국 기업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의 유예기간 종료가 9월 말로 다가옴에 따라 중국은 일본, 네덜란드에 이어 한국에도 강도 높은 압박과 회유를 병행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픽] 중국 내 국내기업 반도체 공장
(서울=연합뉴스) 김민지 기자 minf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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