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9.02. 오전 4:31
순직 해병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1일 기각됐다. 군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현역 군인을 상대로 한 구속영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하며 언론 접촉을 끊기 위한 '입막음'으로 비칠 만큼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한 탓에 기존 수사가 역풍을 맞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중앙지역군사법원은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지금까지의 수사진행 경과, 피의자가 향후 군 수사절차 내에서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다짐하는 점, 피의자의 방어권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 단계에서는 증거인멸 내지 도망의 염려가 적어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군검찰은 "(박 대령이) 언론을 통해 허위 주장을 반복하며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면서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구속 수사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수용하지 않았다. 군검찰은 박 대령이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지 말고 보류하라'는 지시를 어겼다며 '항명' 혐의를 적용했다. 이어 지난달 30일 영장을 청구하면서 이 장관에 대한 '상관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했다. 군검찰은 "피의자가 공연히 거짓 사실을 적시해 상관인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시켰다"고 적시했다. 앞서 박 대령은 국방부 검찰단에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 "대통령실 회의에서 VIP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뒤 수사 결과 언론 브리핑이 취소됐다"고 주장했다. 심사를 마친 박 대령은 "많은 성원에 힘입어 조사와 재판에 성실히 임해 저의 억울함을 규명하고, 고(故) 채수근 상병의 억울함이 없도록 수사가 잘됐으면 좋겠다"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박 대령 측 김정민 변호사는 "현명한 판단을 한 판사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앞으로 외압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구속을 기정사실화하던 군 당국은 적잖이 당황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군검찰 책임론도 제기된다. 군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것도 모자라 돌연 '상관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하며 과도하게 박 대령을 압박한 탓에 역공을 맞을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군검찰은 영장 청구 당시 "잇따른 피의자의 일방적 주장 발표에 유감을 표한다"며 언론을 통한 박 대령의 입장 표명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영장 기각으로 상황이 뒤바뀌면서 박 대령 측 주장이 탄력을 받는 기류다. 박 대령은 지난달 25일 투표 결과 과반에 미달해 결론을 내지 못한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를 다시 열어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그 결과를 보고 나서 국방부가 자신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게 순서라는 것이다. 해병대 수사단장에서 보직해임된 박 대령은 이에 대한 무효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또 국방부 검찰단장과 법무관리관이 장관을 잘못 보좌하고 위법한 법 집행을 했다며 이들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한 상태다. 호우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원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1일 사전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으로 들어서며 예비역 동기생들과 포옹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이날 박 대령의 영장실질심사는 3시간가량 지연돼 열렸다. 군사법원에 출석하는 과정에서 박 대령과 변호사가 바로 연결되는 출입문을 이용하겠다고 하자, 법원 측은 국방부 위병소를 거쳐 영내를 통해 이동할 것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박 대령은 강제구인이 집행돼 법원으로 끌려갔다. 이 과정에서 박 대령 주변에 모여든 군대 동기들은 해병대 군가인 '팔각모 사나이'를 부르며 응원했다. 이들은 해병대 예비역 장병과 시민 1만7,139명의 서명이 담긴 구속영장 기각 탄원서를 전달하며 힘을 보탰다. 군검찰은 기각 결정 이후 입장을 내고 "피의자가 군사법원에 약속한대로 성실히 소환조사에 임해줄 것을 기대한다"며 "만약 다시 출석거부 등 수사를 지연시킬 때는 필요한 법적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며 향후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