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4.04.23. 오전 11:09 수정2024.04.23. 오후 1:36
2093년 국민연금 눈덩이 적자 불가피 복잡해진 연금셈법, 남은 시간 한 달뿐국민들이 선택한 연금개혁안은 소득보장이었다. 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노후소득을 더 탄탄하게 보장하자는 안이 재정안정론을 앞질렀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심각한 상황에서 ‘더 내고 더 받는’ 안이 실제 통과될 경우 미래세대의 부담이 가중되고 연금의 지속 가능성도 위협받을 수 있다. 56%가 지지한 연금개편안, 눈덩이 적자 불가피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론화위원회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종설문에 참여한 시민대표단 492명 중 56.0%는 소득보장을 강조한 연금개혁안(1안)을 선택했다. 재정안정에 무게가 실린 연금개혁안(2안)은 42.6%에 불과했다. 격차는 13.4%포인트로 오차범위를 넘어섰다. 공론화위는 3월부터 현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와 보험료율 9%를 어떻게 바꿀지 논의해 왔다. 소득대체율이란 국민연금에 가입한 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을 말한다. 1안은 ‘소득대체율 50% 인상, 보험료율 13% 인상’이다. 연금액과 보험료율을 크게 올리는 게 골자다. 2안은 ‘소득대체율 40% 유지, 보험료율 12% 인상’이다. 현재와 같은 연금을 받되 보험료율은 1안보다 적게 올린다. 3월 시민대표단이 국민연금 학습을 시작하기 전만 하더라도 재정안정안은 44.8%로 소득보장안(36.9%)을 크게 앞섰다. 하지만 이달 13일 소득보장안이 50.8%로 재정안정안(38.8%)을 앞질렀다. 공부와 숙의, 토론을 거치면서 소득보장안이 다수 의견을 차지한 셈이다. 첫 조사에서 ‘잘 모르겠다(18.3%)’고 답한 대표단 상당수가 소득보장안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1안에 다수표가 몰린 배경에는 기금고갈 시점이 있다. 1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기금고갈 시기는 2055년에서 2061년으로 미뤄진다. 2안의 경우 기금고갈 시점이 2062년이다. 두 방안의 보험료율 차이는 1%포인트다. 돈을 약간만 더 내도 소득대체율을 확 높일 수 있는데 기금고갈 시점도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다 보니 1안의 찬성표가 높았을 거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누적적자다. 기금고갈 시점은 별 차이가 없지만 고갈 후 적자 폭은 딴판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1안은 2093년 누적적자만 702조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2안은 누적적자를 1970조원 줄이는 효과가 있다. 보험료율도 마찬가지다. 만약 기금고갈 후 매년 보험료를 걷어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방식’을 도입한다면 2078년 소득의 43.2%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2안은 이보다 적은 35% 정도다. ‘의무가입 연령’ 상향에 대해서는 시민대표단의 80.4%가 현재 만 59세인 의무가입 상한 연령을 64세로 높이자고 답했다. 현행유지는 17.7%였다.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방안’(복수 응답)은 출산크레디트 확대(82.6%), 군복무 크레디트 확대(57.8%) 순이었다. 기초연금의 경우 현재 시스템을 유지하자는 응답이 52.3%, 수급범위를 점진 축소하자는 응답이 45.7%였다. 세대 간 형평성 제고 방안으로 제시된 국민연금 지급의무 보장은 92.1%가 동의했고, 퇴직연금은 46.4%가 준공적연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복잡해진 연금셈법…국회의 시간 한 달뿐 김상균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장이 지난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시민대표단(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국민연금 개혁안의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공론화위의 개혁안 도출을 두고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재정안정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공론화위 출범 이후 균형 있는 정보제공에 대한 우려를 제기해 왔다. 1안과 2안 간 누적적자에 대한 설명을 정보가 아닌 전문가 발언으로 처리했다는 비판이 대적이다. 대표단 구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 대표단은 만 18세 이상이 대상인데, 인구비례를 고려하다 보니 청년이 적게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청년이 적고 중·장년층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노후소득 보장을 지지하는 시민이 많을 수 있다는 취지다. 공론화위는 결과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연명 공론화위원(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공론조사의 핵심은 해당 이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충분히 이해시키는 것"이라면서 "소득대체율을 올렸을 때 부과방식의 데이터 등도 숙의 자료집에 연도별 수치까지 제대로 나와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은 소득보장안에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306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은 논평을 통해 "시민들이 각자도생이 아닌 사회 연대를, 공적연금 강화를 선택한 것"이라며 "국민연금 본연의 기능인 모든 세대의 노후빈곤을 예방하기 위한 개혁의 첫 단추가 채워졌다"고 강조했다. 공론화위의 결과에 연금개혁 셈법은 복잡해졌다. 시민들이 택한 1안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가 소득보장을 요구한 만큼 국회로서는 이를 고려할 수밖에 없어서다. 정부는 저출산·고령화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면 ‘더 받는 안’이 가져올 후폭풍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시민들의 결정인 만큼 조사 결과 발표 후 "연금특위 논의과정에서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한 연금개혁이 이뤄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21대 국회가 다음달 29일 종료되는 만큼 시간은 부족한 상태다. 연금특위 위원장인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당선됐지만 여당 간사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낙선, 야당 간사인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선 탈락했다. 빠르게 연금개혁안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22대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하는데 특위를 다시 꾸리고 여야 의원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주 위원장은 조만간 최종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여야 간 합의안 도출에 나설 방침이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기자 프로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