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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4-07-28 12: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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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동훈…윤-한 ‘재집권’ 동상이몽 꾸나?
내용

 

입력2024.07.28. 오전 7:32 

 

검사 출신 대통령에게 실망하고도
국힘 지지자, ‘한동훈 대표’ 선택
‘여당 내 야당’ 박근혜 대선 모델
윤 대통령 용인해야 가능한데…


윤석열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왼쪽),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 등과 만찬을 하기 전에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전당대회 출마 선언 다음날인 지난 6월24일 국회 기자실을 돌며 기자들에게 인사를 한 일이 있습니다. 한겨레 부스에는 마침 여당을 담당하는 기자들이 없었고, 야당을 담당하는 기자들만 있었습니다.

기자가 한동훈 후보에게 “저는 야당 담당 기자인데요”라고 했습니다. 한 후보는 잠시 주춤하더니 “저도 요새 뭐 거의 야당이라서요”라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한 후보는 이날 다른 언론사 부스에서도 야당 담당 기자에게 똑같은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 공허한 당부

 

한 대표가 7·23 전당대회에서 62.84%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윤석열 대통령과 각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여당 내 야당’을 자처함으로서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들의 ‘변화’ 요구에 부응한 것입니다. 친윤석열계 의원들은 ‘배신자 프레임’으로 한 대표를 공격했지만 실책이었습니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게 실망한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들은 오히려 배신자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한 대표 압승의 두번째 이유는 그가 차기 대선주자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경쟁자들은 이번에 선출되는 대표가 차기 대선에 출마하려면 당헌·당규에 따라 대선 1년6개월 전인 2025년 9월에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심지어 나경원 의원은 차기 대선 불출마 선언까지 했습니다. 경쟁자들의 이런 주장은 당헌·당규에 집착한 근시안적 판단 착오였습니다. 물론 살아 있는 권력인 윤 대통령을 자극하지 않고 지원을 기대하려는 속셈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당원과 지지자들은 당헌·당규보다 정치적 합의와 공감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 쏟아지는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들은 확실히 한 대표를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 대표 압승의 세번째 이유는 ‘이재명 반사 효과’인 것 같습니다.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들은 다음 대선에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선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이재명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가장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검사 출신 윤 대통령에게 크게 실망하고도 또다시 검사 출신 대표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어쩌면 한 대표가 지금 윤 대통령을 급속히 대체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라는 ‘현재 권력’과 한 대표라는 ‘미래 권력’의 한판 대결이었고, 이 싸움에서 미래 권력이 완승을 했습니다.

전당대회 이후 언론의 논조도 대체로 윤 대통령의 변화를 주문하는 쪽이 많았습니다. 지난 25일치 신문 칼럼과 사설을 살펴보았습니다.

 

‘한동훈 압승, 윤 대통령이 받은 세 번째 경고다’(동아일보 김순덕 칼럼)
‘이젠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동아일보 사설)
‘“한동훈 때문에 총선 졌다” 변명이 심판받았다’(조선일보 김창균 칼럼)
‘‘국민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느냐에 윤 정부 성패 달려’(조선일보 사설)
‘한동훈의 ‘국민 눈높이’, 윤 대통령에게 달렸다’(한국일보 사설)

 

윤 대통령이 변화할까요? 전당대회 다음날 저녁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청사 야외 정원에서 한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새 지도부와 만찬을 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 대표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혼자 해결하도록 놔두지 말고 주위에서 잘 도와줘라.”

“우리가 앞으로 하나가 돼 우리 한 대표를 잘 도와줘야 된다.”

“당내 선거는 끝나면 다 잊어버려야 한다.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할까’ 그것만 생각하자.”

공허하지요?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들’에게 하는 의례적인 당부에 불과합니다. 전당대회 결과로 충격을 받았을 법도 한데 그런 기색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통령과 여권 차기 주자 ‘미묘한 관계’

 

윤 대통령은 고집스러운 사람입니다.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평생 자기 마음대로 해서 명예를 얻었고 권력을 획득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성공 방정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한동훈 대표 저지’ 실패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이 변화하기 어려울 것으로 제가 보는 이유입니다. 친윤석열 성향의 국민의힘 의원들도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인간적인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에 관계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과 여권 차기 대선주자의 관계는 본래 미묘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 권력은 너무 강력해서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공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옛날식 표현으로 하면 두개의 태양이 동시에 하늘에 떠 있을 수 없는 이치입니다.

역대 정권의 역사는 어땠을까요? 전두환 대통령은 육사 동기로 쿠데타를 함께 한 노태우를 후계자로 세워 재집권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도 회고록에 이런 대목을 남겼습니다.

“내가 누구를 후임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 민감한 사안인 만큼 노태우 본인에게도 눈치조차 주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일정 시점까지는 모호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자유당 총재의 관계는 어땠을까요?

“나는 김 총재의 이와 같은 행동에 실망한 나머지 ‘이 사람이 국가의 지도자로서 진정으로 나라의 장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초점을 대통령 선거에 맞추고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거나 충격을 던져 국민들의 기대와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만 총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다.”(노태우 회고록)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의 관계는 최악이었습니다.


“11월5일과 6일 대구와 경북 지역의 ‘필승대회’를 주최한 이회창씨는 내가 이인제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고 모함하며 나에 대한 비난을 늘어놓았다. 특히 6일 포항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경북지역 필승 결의대회의 식전 행사에서는 이회창씨 지지자들이 나를 상징하는 ‘03 마스코트’를 몽둥이로 마구 내리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벌였다.”

“내가 만든 당에서 이런 패륜아적인 작태가 벌어지다니, 나는 너무나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김영삼 회고록)

현직 대통령과 여당 대선 후보의 사이가 가장 좋았던 경우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후보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차별화 전술을 단호히 거부하고도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반면에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후보의 사이는 무척 나빴습니다.

“정치에도 인간적 신뢰가 있어야 한다. 노무현과 차별화를 하려면 차별화할 가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인기가 없으니까, 당신 지지율이 떨어졌으니 차별화해야 되겠다고 해서는 차별화하는 사람도 얻을 것이 없다. 이것은 또한 인간적인 배신이다.”

“그 선거에는 사실상 여당 후보가 존재하지 않았다. 참여정부의 공과를 다 책임지겠다는 후보가 아무도 없었다. 근거도 없는 ‘경제 파탄론’ 앞에서 먼저 반성한다고 말해버렸으니 무엇을 가지고 선거를 할 것인가.”(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는 무척 특이했습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격돌했던 두 사람은 2008년 4월 18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맞섰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천에서 친박근혜계 인사들을 배제하자 박근혜 전 대표는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이명박 대통령을 직격했습니다.

그 뒤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을 제출하자 박근혜 전 대표가 국회 본회의에서 직접 반대 토론에 나서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켰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런 당내 투쟁을 통해 ‘원칙과 신뢰’라는 정치적 자산과 ‘여당 내 야당’이라는 위치를 확보했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당대표 당선자가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이 엠비처럼?

 

한 대표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윤 대통령 및 김 여사와 각을 세우며 ‘여당 내 야당’ 역할을 자임한 것은 과거 박근혜 전 대표의 전략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공할까요? 여기에 대한 해답은 한 대표가 아니라 윤 대통령이 갖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2012년 총선, 대선 승리의 주인공은 박근혜 대통령이었지만, 그 바탕에는 “나를 밟고 넘어가라”며 용인해준 이명박 대통령의 인내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윤석열-한동훈 커플이 김영삼-이회창의 길을 따라가면 함께 몰락할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윤 대통령이 탈당하고 국민의힘이 분열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이명박-박근혜의 길을 따라가면 재집권에 성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윤 대통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이끌어가려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기획력,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타협하고 조정하는 정치적 역량이 필요합니다. 평생 검사만 한 사람에게는 없는 능력입니다. 검사는 과거를 재단해서 처벌하는 사람입니다. 검사 출신이 정치를 잘하려면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정책적 역량 부족은 그가 ‘검사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들은 차기 지도자로 평생 검사만 한 사람을 또다시 선택했습니다.

‘검사 대통령’ 한번으로는 부족한 것일까요? 한 대표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무척 걱정되는 지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겨레

성한용 기자 shy99@hani.co.kr, 성한용 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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