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3.23. 오전 11:53 수정2023.03.23. 오후 12:06
베토벤 머리카락 8종 DNA(유전자정보) 분석결과
사망 직전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증거 찾아
"간질환 유전요인, B형 간염, 음주 등이 복합작용"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음악 악보를 들고 있는 모습. / 사진=Beethoven-Haus Bonn
'악성'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간 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베토벤이 1827년 사망 전까지 기록된 병세와 일치하는 결과다. DNA(유전자정보) 분석기술 발달로 사망 200년 이후에도 정확한 사인이 밝혀진 것이다.
요하네스 크라우스(Johannes Krause)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박사 등 6개국 국제 공동연구팀은 22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베토벤 머리카락의 게놈(유전체) 분석'이란 논문을 게재했다.
베토벤은 과거 독일 빈 의과대학 부검을 통해 간경화를 겪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하지만 게놈 분석을 통해 구체적 사인이 밝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베토벤은 1802년 자신이 죽은 이후에라도 질환을 분석해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를 200년 만에 정밀 분석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베토벤은 사망 전 황달이 생기고 팔다리가 부풀어올랐다. 모두 간이 손상됐을 때 나타나는 증세다. 특히 임종을 맞은 베토벤은 하늘을 향해 주먹을 흔들었다. 간이 나빠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는 갑작스런 자극을 주면 팔을 흔드는 등 경련성 반응이 나타난다.
DNA(유전자정보) 분석에 사용된 베토벤 머리카락 '스텀프 타래'(Stumpff Lock). / 사진=커런트 바이올로지
연구팀은 기증받은 베토벤 머리카락 시료 8종에 대한 게놈을 분석했다. 분석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베토벤 후손 DNA를 채취해 이를 비교했다. 시료 8종 중 5종은 베토벤 머리카락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유전자에서 질병 관련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사망하기 몇 년 전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증거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기록집과 연구를 통해 베토벤이 과도한 음주와 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간경변에 걸렸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머리카락 게놈 분석에선 베토벤의 청력 상실에 대한 유전적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베토벤의 병력을 고려하면 사인은 간 질환 위험 유전적 요인과 B형 간염, 음주 등 3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개별 요인이 사망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는 추후 명확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과거 대화록을 보면 베토벤은 주기적으로 음주를 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과거 베토벤의 납중독 사망설이 퍼졌으나 근거가 됐던 머리카락이 베토벤의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연구는 DNA 분석기술 진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DNA는 한 사람의 유전 정보를 담은 기본단위로, 30억개 염기로 구성된다. 사람마다 DNA 특정 위치에 염기서열 일부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과학자들은 사람마다 특정 위치에 '짧게 반복되는 염기서열 부위'(STR)를 증폭시켜 유전자를 식별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40억분의 1g'에 해당하는 0.25ng(나노그램, 1ng=10억분의 1)만 있어도 DNA를 증폭시켜 분석할 수 있다.
[본=AP/뉴시스] 지난 21일(현지시간) 독일 본의 한 건물 벽에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이 이끄는 연구팀은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서 유전체(게놈)를 분석해 그의 사인이 그간 알려졌던 납중독이 아닌 간경변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023.03.23.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