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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3-04-12 1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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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한국은 인공태양에 최적 환경… 원료주입 블랑켓 주도권 노린다”
내용

 

입력2023.04.12. 오전 6:01   수정2023.04.12. 오전 7:58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원장 인터뷰
“韓 핵융합 발전 기술, 전 세계 선두에 있어”
“삼면이 바다… 핵융합 연료인 중수소 풍부”
“탄소중립·에너지독립, 핵융합 발전이 열쇠”

 

지난 4일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 사무실에서 만난 유석재 원장은 "한국은 인공태양인 핵융합 발전에 최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고 기술 수준도 세계 선두권"이라고 말했다. /최정석 기자


태양이 탄생한 건 지금으로부터 약 45억년 전이다. 과학자들은 앞으로도 80억년 정도는 태양이 계속해서 뜨거울 것이라고 예상한다. 태양에 누가 계속 연료를 집어넣지도 않는데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뜨겁게 타오르는 걸까. 답은 ‘핵융합 반응’에 있다.

태양 중심부 온도는 섭씨 1500만도, 압력은 100억 기압에 달한다. 이런 초고온, 초고압 환경에서 수소와 같은 가벼운 원자들이 융합하면서 무거운 헬륨 원자핵으로 바뀐다. 이 과정에서 감소되는 질량만큼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 핵융합 반응에서 나온 빛과 열 에너지는 지구까지 전달돼 땅을 따뜻하게 데우고 동식물을 살린다.

지구에서 태양을 구현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핵융합 발전이다. 태양처럼 수소와 같은 가벼운 원자들이 핵과 전자가 분리된 플라스마(plasma) 상태에서 융합하면서 에너지를 발생한다. 플라스마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태양처럼 중력이 강력하거나 아니면 온도가 높아야 한다. 지구는 중력이 약해 대신 태양의 핵보다 훨씬 높은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만들어야 한다.

핵융합 반응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데 성공한 나라는 아직 없다. 여러 나라가 치열하게 기술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핵융합 발전 기술 개발을 이끌고 있는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 원장은 “현 시점에서 한국 핵융합발전은 기술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연료를 만들고, 핵융합 발전이 정말로 가능한지 실험할 수 있는 시설을 모두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과 중국 뿐이라고 유 원장은 말했다. 한국은 ‘KSTAR(한국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중국은 ‘EAST’라고 부른다. 유 원장은 “핵융합을 일으키는 플라스마에 주변 장치가 녹지 않게 하려면 양쪽에서 강력한 자기장으로 밀어내야 한다”며 “중국 시설은 한국 시설에 비해 자기장 세기가 70% 수준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KSTAR는 이미 핵융합 신기록을 잇따라 경신하며 핵융합 발전 실현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2021년 핵융합 조건인 1억도 초고온 플라스마를 30초 동안 유지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핵융합 발전 상용화는 초고온 플라스마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능력에 달렸다. 바꿔 말하면 인공 태양의 불을 얼마나 오랫동안 꺼뜨리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지 경쟁하는 셈인데, 이 경쟁에서 한국이 가장 앞서 있다는 뜻이다.

핵융합 발전과 원자력 발전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원전이 전기를 만들어내는 원리는 핵융합과 정반대인 핵분열이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과 같은 방사성 물질은 중성자와 부딪히면 원자핵이 쪼개진다. 이때 줄어든 질량만큼 에너지가 발생한다. 핵융합 발전은 이런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꾸는 새로운 혁신이다. 핵분열과 달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도 나오지 않는다.
 

한국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 전경. 핵융합 연료를 내부에 가두고 핵융합이 일어나는지 실험할 수 있다./한국핵융합연구원
한국은 지리적으로도 핵융합 발전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핵융합은 일반 수소보다 무거운 중(重)수소와 삼중(三重)수소를 원료로 사용한다. 중수소는 바닷물에 들어 있으며, 삼중수소 역시 바닷물에서 뽑아낸 리튬 원자를 변화시켜 만들 수 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원료 공급에 문제가 없는 셈이다. 핵융합연은 이러한 기술적,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2050년부터 핵융합 발전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 4일 대전 핵융합연 사무실에서 유 원장을 만나 2050년 핵융합 발전을 향한 구상을 들었다.

-태양의 환경을 지구에서 구현하는 게 가능한 건가.

“우리 목표는 태양이 스스로 에너지를 무한히 생산하는 방법을 안전하게 따라하는 것이다. 때문에 핵융합 반응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수소를 플라스마 상태로 바꾼 뒤 강력한 자기장을 통해 핵융합로 안에 가둬야 한다. 이 상태에서 핵융합로를 1억도까지 달군 뒤 그 상태를 400초 이상 유지하면서 내부에 삼중수소를 투입해야 한다.”

-어려운 용어들이 많은데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플라스마 상태부터 설명하겠다. 핵융합 연료인 중수소를 보면 원자핵 주변을 전자들이 감싸고있다. 원자핵끼리 충돌해야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그걸 전자가 방해하는 형태다. 때문에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려면 전자들이 핵원자 주변에 뭉쳐있는 게 아니라 이곳저곳에 퍼져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자 고리를 잘라서 원자핵끼리 더 잘 충돌하게 해주는 작업을 거치는데 그게 플라스마 상태다.”

-자기장은 어떤 역할인가.

“중수소 핵원자를 자동차라고 생각해보라. 자동차들끼리 브레이크 없이 전속력으로 충돌했을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게 핵융합 발전이다. 그렇다면 10차선 도로보다는 5차선, 5차선 도로보다는 1차선 도로에서 자동차가 더 많이 충돌하지 않겠나. 자기장은 원자핵이 움직이는 범위를 좁혀주는 역할을 한다. 차선을 최대한 줄여서 원자핵이 더 많이 충돌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핵융합로를 1억도까지 달구면 원자핵이 더 빨리 움직인다. 원자핵이 더 자주, 더 강하게 충돌하게 유도하는 장치인 것이다.”

-삼중수소는 왜 필요한가.

“삼중수소가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마지막 열쇠다. 플라스마 상태로 만든 중수소를 높은 자기장과 온도가 적용된 핵융합로에 아무리 넣어도 삼중수소가 없으면 에너지가 나오질 않는다. 원자핵끼리 충돌은 하지만 강도가 약해서 에너지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삼중수소 없이 핵융합 발전을 하려면 핵융합로를 1억도보다 훨씬 뜨겁게 달궈야 한다. 그런데 10억도, 100억도까지 온도를 높이면 버틸 수가 없다. 1억도가 최대치다. 그 정도 환경에서 핵융합 발전을 하려면 삼중수소가 필요한 것이다.”

-삼중수소는 핵융합로 안에 어떻게 넣어주나.

“핵융합로 안에 ‘증식 블랑켓’이라는 장비를 달아야 한다. 증식 블랑켓은 쉽게 말해 삼중수소 보급장치다. 삼중수소는 자연상태에서 금방 헬륨으로 바뀌어버린다. 만들어지는 순간 핵융합로에 넣어줘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핵융합로 밖에서 삼중수소를 만든 뒤 안으로 넣으면 늦다.”
 

유석재 핵융합연 원장은 "핵융합 연료를 주입하는 증식 블랑켓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겠다"고 말했다. /최정석 기자
-핵융합로 내부는 온도도 높고 자기장도 센데 증식 블랑켓이 버틸 수 있나.

“오래는 못 버틴다. 주기적으로 바꿔줘야 한다. 이 점이 핵심이다. 증식 블랑켓 기술에서 주도권을 잡으면 미래에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됐을 때 꾸준히 큰 돈을 벌 수 있다. 국산 증식 블랑켓을 전 세계에 계속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증식 블랑켓을 핵융합 발전 ‘비즈니스의 꽃’이라고 표현한다.”

-현재 한국의 증식 블랑켓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아직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수준이다. 한국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가 그렇다. 증식 블랑켓은커녕 중수소를 플라스마 상태로 바꿔 쌓아두는 시설을 갖춘 나라도 전 세계에 한국과 중국밖에 없다. 각종 기술을 개발해 2050년부터 국내에서 핵융합 전력생산 시설을 운영하는 게 목표인데 그 시점에 맞춰 증식 블랑켓 기술도 완성하는 게 목표다.”

-원전에 대해서는 안전 우려가 크다. 핵융합 발전시설은 사고 가능성이 없나.

“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원자력 발전소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다르다. 핵융합로 내부는 진공상태다. 대기압의 1억분의 1 수준으로 진공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핵융합로다. 핵융합로 내부보다 바깥쪽 압력이 훨씬 크다. 어떤 뜻이냐면 과학적으로 폭발할 수가 없다는 거다. 핵융합로에 구멍이 나거나 하는 결함이 생기면 밖으로 터지는 게 아니라 안으로 찌그러진다. 이걸 ‘내파(implosion)’라고 한다. ‘폭파(explosion)’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삼중수소는 방사능 물질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이 자연에서는 삼중수소 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못한다. 금방 헬륨으로 바뀌어버린다. 또 삼중수소에서 발생하는 방사선인 베타선은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좁아 외부 피폭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일례로 사람 피부는 20~100㎛(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 두께의 표피와 1~3㎜(밀리미터, 1000분의 1m) 두께의 진피가 있는데 피부암, 피부손상을 일으키는 표적세포는 표피 맨 밑과 진피층에만 있다. 삼중수소가 여기까지 도달할 수가 없다.”

-정부는 현재 원자력 발전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데 핵융합 발전이 꼭 필요한 건가.

“지금 원자력 발전이 주력인 건 맞는다. 하지만 이 좁은 땅에 원전을 계속 지을 수는 없다. 원전에서는 방사능이 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나오는 문제도 있다. 반면 핵융합 발전은 굉장히 친환경적이다. 바닷물만 있으면 중수소, 리튬을 뽑아 쓸 수 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같은 부산물도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은 삼면이 바다다. 주변에 널린 바닷물을 이용해 깨끗한 에너지를 거의 무한정에 가깝게 만들 수 있다. 탄소 중립과 에너지 독립을 동시에 이루려면 핵융합 발전 말고는 답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최정석 기자 standard@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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