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5.25. 오전 12:03
日 ‘안전하다’며 해양투기 추진
시료 채취엔 비협조 ‘숫자놀음’
시찰단 실효 조치 아무 것도 없어
걱정 없애는게 정부 역할 아닌가
나는 탈핵주의자가 아니다.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핵폐기물 문제가 있지만 아직 수명이 다하지 않은 멀쩡한 원자력발전소 문을 닫자는 데는 눈곱만큼도 동의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소는 탈탄소 정책에도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새로운 원자력발전소를 짓자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한가하게 원자력발전소나 짓고 있을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핵폐기물 처리는 둘째치고라도 이미 태양광이나 풍력발전보다도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실효성도 이젠 없다. 더 큰 문제는 지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을 찬성하는 사람도 자기 동네에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것은 대부분 반대한다. 아무리 좋아도 국민이 싫어하면 못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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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도 아니고 12년 전에 일본 도후쿠 대지진의 여파로 일어난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생긴 문제로 제법 시끄럽다. 실제로 방사성 오염수를 방출하면 우리 건강에 해롭고 수산물을 먹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길까? 이럴 때는 먼저 숫자로 따져보게 된다. 일본이 기준치보다 1만배나 높은 방사성 오염수를 무려 100만t이나 방출하지만 100만t보다 1000만배쯤 큰 태평양 바다의 엄청난 부피를 생각하면 결국 기준치의 1000분의 1로 줄어든다. 산수로 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우리의 감정은 산수로 해결되지 않는다. 바퀴벌레도 아니고 귀여운 흰배추나비 애벌레를 보고도 기겁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야, 이 바보야! 저 애벌레가 널 잡아먹겠냐?” 하고 소리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내 딸은 용감하고 동물들을 좋아하지만 민달팽이가 있는 길은 지나가지 못한다. 무섭단다.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단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
산수 좀 한다는 사람이 이럴 때 실수한다. 영국에서 왔다는 모 석학(?)은 “내 앞에 희석되지 않은 후쿠시마 물 1ℓ가 있다면 바로 마실 수 있다”더니 집권당 간담회에서는 “10ℓ도 마실 수 있다”며 기염을 토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너희는 산수도 못 하냐?”쯤 될 것이다. 걱정이 넘치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조롱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제일 간단한 방법은 일본이 계속 자기 땅에 보관하는 것이다. 당연히 일본도 사정은 있기 마련이라 안전성을 강조하면서 배출하기로 했다. 그 안전성은 산수의 결과다. 그런데 산수는 애벌레나 민달팽이보다 힘이 없다. 그 힘을 키우는 방법이 있다. 각 나라 과학자들을 초대하고 그들이 투명하게 다 돌아다니면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샘플을 채취하고 분석하게 하면 된다. 다들 문제를 그렇게 푼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먼저 그렇게 하는 게 상식이다.
무서움과 함께 주권이라는 요소도 생각해야 한다.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성주참외를 피한 적이 있다. 광우병 파동 때는 미국산 소고기를 안 먹었다.(지금은 둘 다 즐겨 먹는다.) 왜 그랬을까? 미국의 대중국 방어망을 짓기 위해 주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땅을 내주어야 했고, 미국 소고기 시장을 위해 우리나라 검역 주권이 침해되었다는 감정 때문이었다.
검증단, 시찰단 또는 유람단,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일본에 갔다. 보도에 따르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실효적인 조치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들이 다녀와서 낼 보고서는 뻔하다. 나는 또 주권이 침해되었다고 느낀다.
산수 좀 한다는 사람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당신들은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측정 데이터 없이 책상에서 이론과 추론으로 하는 이야기를 합리성이라고 포장하면 안 된다. 전혀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다. 시료 채취에 비협조적인 일본의 태도에서 그들의 주장을 의심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일본이 배출하는 방사성 오염수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하면 가짜 뉴스라고 공격하는 공무원, 정치인, 과학자가 있다. 그러면 안 된다. 걱정을 없애주어야 한다. 그러라고 월급 주는 거다. 민달팽이를 무서워하는 딸을 야단치는 대신 앞서가면서 민달팽이를 치워주는 게 함께 산책에 나선 아빠가 할 일이 아닌가!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