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5.24. 오후 1:41 수정2023.05.24. 오후 2:05
제평위 법정기구화의 문제방송통신위원회가 주로 비판 받는 건 해야 할 일은 미룬 채 늘 정치 싸움만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싸움의 핵심은 여(與)와 야(野) 가운데 누가 방송을 장악하느냐의 문제다. 명색이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구’여서 ‘협의를 통한 합의의 예술’로 모범을 보여줘야 마땅하지만 실제로는 여와 야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가 돼버렸다. 방송 장악이 다음 정권 창출의 핵심 문제라고 보기 때문일 터이다.
방송과 통신이 굳이 한 기관으로 묶인 까닭은 기술의 발전으로 두 영역이 급속히 허물어지며 융합되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진짜로 해야 할 일은 이런 기술 발전 추세에 맞춰 방송통신업계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상황은 어떤가. 미국의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시장을 호령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 싸움에 도끼 자루 썩어가는 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것으로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제 신문시장마저 정치 입김 아래 가둘 태세다. 언론사와 네이버 및 카카오 사이에서 뉴스 제휴와 심사를 맡아왔던 뉴스제휴평가위원회(이하 제평위)를 대신할 법정기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민간 자율기구였던 제평위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신뢰할 수 없음으로 새롭게 법정기구를 만들어 규제를 받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겠다는 거다.
방송통신위원회 로고.
이 법정기구는 그런데 제평위의 역할만 흡수하는 게 아닌 듯하다. 제평위는 양대 포털과 제휴할 언론사를 심사하고 제휴한 언론사가 송출한 뉴스를 평가하는 게 핵심 업무였다. 그 일이 완벽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포털과 제휴하지 못한 언론사를 중심으로 불만이 계속돼왔다. 심사 기준과 평가의 공정성 및 투명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던 것이다. 불만이 있는 만큼 보완되면 좋을 지적들이다.
이 법정기구가 이보다 더 주목하는 것은 뉴스 배치와 추천인 듯하다. 포털 뉴스가 편향됐다고 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가칭 '알고리즘투명성위원회'란 법정기구를 만들 심산인 모양이다. 민간 자율로 ‘뉴스 알고리즘 검토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 또한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제휴 평가와 뉴스 알고리즘을 한 기구로 할지 두 기구로 할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제평위 역할 이상인 듯하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이런 태도는 최근 제평위가 활동을 잠정 중단했기 때문에 나온 게 아니다. 이미 지난해 5월 ‘포털뉴스 신뢰성·투명성 제고를 위한 협의체’를 만들어 준비해왔다. 이 협의체에는 정부 관계자와 변호사, 교수, 연구원 등 11명이 참여했다는데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제평위 법정기구화 협의체’ 2기를 구성해 2~3달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특히 연내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작년에는 법정기구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잖아 추진 속도가 더뎠는데 제평위가 활동을 잠정 중단키로 하자 더 강하게 밀어붙이기로 한 듯하다. 힘이 센 정부니까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겠다. 하지만 어떤 제도도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우려되는 일이 있다면 살펴봐야 한다. 법정기구화에 모두가 한 목소리이지는 않을 거다.
제평위와 투명성위를 법정기구화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우선 기관의 존립 근거와 목적 그리고 권한과 의무 등을 법률로 정한다는 점이다. 기관의 존재 이유가 크되 법률이 없어 역할을 제대로 못할 때라면 꽤 의미 있는 일이 되겠다. 하지만 제평위와 투명성위에는 다른 이유가 필요한 것 같다. 민간이 이미 하는 일이기도 하고, 법정기구를 열망하는 곳이 어딘지도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이미 존재하는 똑 같은 일을 법정기구로 바꿔서 한다는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같은 일을 할 구성원을 바꾸겠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누가 그 일을 하는 구성원이 되고 그 구성원을 누가 선정할 것인지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누구겠는가. 결국 정치인 입김이 가장 세지지 않겠는가. 민간기업인 KT의 대표까지 관여하는 게 정치인인데 정권에 영향을 미칠 법정기구 구성원에 관여하지 않을 리 있겠나.
정치인의 관여가 공영방송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많은 국민은 알고 있을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어떤 곳인가. 진위야 어찌됐든 한 종합편성방송 재심사 평가 탓에 초토화된 집단 아닌가. 공영방송이든 방송통신위원회든 왜 그렇게 됐는가. 정치에 휩쓸린 탓 아닌가. 그래놓고 언론 평가에 민간보다 낫다 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포털 알고리즘 투명위 다음에는 유튜브 알고리즘 투명위를 만들 건가.
.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