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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식2023-05-30 13: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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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다음 시장은 우주와 항공”...‘세계 1%’ 배터리 연구자가 전망한 미래
내용

 

입력2023.05.30. 오전 6:02   수정2023.05.30. 오전 8:37

 

이현욱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 인터뷰
투과전자현미경 분석법 선구자… 차세대 전지 소재 개발
4년 연속 이차전지 ‘세계 상위 1%’ 연구자 선정


 

이현욱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는 지난 11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전지를 개발해야 하는 이유로 우주와 항공 분야를 꼽았다. 그는 "차세대 배터리는 모든 요소가 잘 발전돼야 여러 응용 분야에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UNIST


2019년 노벨 화학상은 존 굿이너프 미국 텍사스대 교수와 스탠리 위팅엄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 요시노 아키라 일본 메이조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세 사람은 모두 이차전지인 리튬이온전지를 발명하고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리튬이온전지는 스마트폰과 휴대용 전자기기에 사용되는 핵심 기술이다. 이제는 인류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술이 됐다. 위팅엄 교수가 1976년에 리튬이온전지를 처음 제안했으니, 기술의 역사도 50년이나 된다. 최근에는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도심항공교통(UAM)처럼 기후 변화 대응에 필요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지금도 리튬이온전지를 잘 사용하고 있지만, 갈수록 고도화되는 장비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용량과 효율을 개선하는 게 절실하다. 리튬금속전지와 전고체전지, 리튬황전지와 같은 차세대 배터리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이유다. 더 효율적인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질을 구현하기 위한 과학기술계의 노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현욱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는 현미경으로 배터리 내부를 꿰뚫어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실시간 투과전자현미경 분석법이란 선진적인 방법을 이용해 새로운 배터리 소재가 효과적인지, 안정성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한다. 배터리 연구의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이 교수를 이달 11일 만나 빠르게 발전하는 이차전지 산업의 미래는 어떤지 물었다.

–'에너지 저장 및 전자현미경 연구실’을 운영 중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극저온 투과전자현미경 분석법을 이용해 배터리 내부를 충·방전하면서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시작된 지 20년 정도밖에 안 된 짧은 역사를 가진 연구다. 지금은 그래도 관련 연구가 늘어난 편인데,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에선 거의 최초로 연구했다.”

–연구자가 많지 않은데, 투과전자현미경 분석법을 어떻게 연구하게 됐나.

“박사 과정 중 지도 교수님이 이런 기술이 있으니 해보라고 제안해주셨다. 처음에는 너무 막연했다. 연구를 위한 장비나 환경도 충분치 않았지만 작게나마 실험을 해갔다. 그렇게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스탠퍼드대로 박사후연구원을 갔는데, 거기서도 투과전자현미경 분석법 연구할 사람을 찾길래 용기 있게 지원했다. 그렇게 시작한 연구를 지금 10년 넘게 하고 있다.”

–투과전자현미경 분석법 연구가 이차전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시간 투과전자현미경 분석법으로 새로운 소재를 개발할 수도 있고 배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되는지 분석할 수도 있다. 이런 걸 ‘고도 분석’이라고 하는데 고도 분석의 경우는 배터리의 수명을 늘리거나 더 안전하게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도와준다. 신소재 개발은 에너지 밀도와 용량의 향상에 영향을 미친다. 이차전지가 필요한 산업군이라면 우리의 연구가 모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이차전지 시장 규모는 2021년 550억달러(72조8000억원)에서 2030년 3517억달러(645조70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탄소 중립 요구로 전기차와 ESS의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이차전지 산업이 거대해질 것으로 평가되면서, 이차전지를 공급하는 국가인 한국과 중국, 일본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 교수는 이차전지 소재를 발굴하고 차세대 배터리를 개발하는 선봉 역할을 맡고 있다. 전고체전지를 섭씨 영하 170도의 극저온으로 냉각해 황화합물 구조를 밝히고, 전해질 첨가제 없이 반응을 제어할 수 있는 리튬금속 음극재를 개발했다. 이 교수는 정보분석 서비스 기업인 클래리베이트가 선정한 세계 상위 1% 연구자에 4년 연속 뽑혔다.
 

이현욱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리튬 금속 음극재 표면을 극저온 투과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이미지. 리튬 금속 음극재 표면에 형성되는 고체전해질 계면층의 나노 구조와 성능 향상 원리를 규명했다./UNIST
–이차전지 연구자로서 주목하는 차세대 배터리는 무엇인가.

“최근엔 이차전지 소재에 따라 리튬금속전지와 전도체전지, 리튬황전지 정도를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셋 중에 뭐가 더 좋다, 나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새로운 전지를 개발해야 하는 이유는 전기차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항공기, 우주까지 적용하기 위해서다. 차세대 배터리는 모든 요소가 잘 발전돼야 여러 응용 분야에 쓸 수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이차전지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선 어떤 점이 필요한가.

“한국 과학기술은 척박한 환경에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 왔다. 특히 시니어 연구자들이 열정을 바쳐서 만든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금 연구자들도 어떻게 하면 이 유산을 잘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면 중소기업에서도 이차전지 교육을 많이 희망하는데, 전문 인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중소·중견기업에 재직자 교육도 많이 나가는 편이다. 또 일반 시민 대상으로 리튬이온전지가 뭔지, 앞으로 이차전지는 왜 중요한지 알려주는 활동이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중국의 경우 국가 산업을 살리기 위해 규제가 거의 없다. 원자재 같은 경우도 정부에서 모두 사들여서 공급한다. 산업이 경쟁으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정부의 지원으로 살아남는 거다. 물론 한국에서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한다면, 중국·일본 같은 경쟁국과 다르게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한다. 한국 같은 경우는 인력밖에 없으면 어떻게 그들을 지원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4년 연속 이차전지 분야에서 세계 상위 1% 연구자로 선정됐다.

“논문 피인용 수를 기준으로 선정한다. 사실 논문 피인용은 음악 순위랑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방탄소년단이 앨범을 냈는데, 그게 애국가여도 사람들이 많이 들을 거다. 이 연구자의 역사를 보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는 거다. 피인용이 많아진 계기는 운이 좋게 처음 실리콘 음극재 관련 연구가 잘 됐고, 그러다 보니 차세대 배터리 소재 관련 논문들의 인용이 늘어났다.”

–차세대 배터리 소재를 발견하는 과정은 처음부터 계획대로 진행되나.

“처음부터 계획하고 시작하는 연구는 잘 없다. 우연히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나고 보면 그 소재의 이론적인 특성은 우수한데, 구현하는 게 힘들었다. 새로운 전략을 가지고 이론에 가까운 성능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다른 연구자들이 많이 참고해줬다. 새로운 배터리 소재를 구현하는 게 힘들어 보일 수 있지만, 바쁘게 지내면서 잡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이현욱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는 지난 11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구를 하는 목적으로 사회에 대한 기여를 꼽았다. 그는 "내가 배웠던 지식과 생각, 가치관을 좀 더 알리고 많은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UNIST
이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하는 과학자들이 멋지다 생각하며 과학의 꿈을 키웠다. 전공으로 재료공학을 선택한 이후론 첨단기술을 반도체를 연구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라믹을 전문으로 연구하던 지도 교수님이 갑자기 이차전지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 교수도 이차전지의 길을 걷게 됐다.

–처음 과학과 이차전지를 접한 계기가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장래희망으로 과학자를 적었다. 어릴 적 만화를 보면서 하얀 가운을 입은 과학자들이 비커 들고 실험하는 게 엄청 멋있어 보였다. 사실 적성을 고려해서 장래희망을 적진 않고 단순히 ‘폼’이 나 보였던 거 같다. (웃음)

이차전지는 내가 석사 때 전통 세라믹을 연구하시는 교수님 밑으로 갔다. 근데 세라믹이 배터리에도 쓰일 수 있겠다면서 갑자기 새로운 분야를 해보자고 하셨다. 지도 교수님은 그 연구로 우수성과 10선에도 선정되시고, 한림원에도 들어가셨다. 하여튼 그 기회로 이차전지를 연구하게 됐고, 석사 때 있었던 연구소도 그 이후 성격이 완전히 변했다.”

–과학자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받고 우선 연구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연구는 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대중 강연도 많이 나가고, 인터뷰도 하고, 유튜브 촬영도 한다. 내가 배웠던 지식과 생각, 가치관을 좀 더 알리고 많은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이현욱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교수는

2007년 세종대 신소재공학과 학사

200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 석사

2012년 KAIST 신소재공학과 박사

2012~2015년 미국 스탠퍼드대 재료과학 및 공학부 박사후연구원

2016년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조교수

2020년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부교수

주요 연구 성과

ACS Energy Letters, DOI: https://doi.org/10.1021/acsenergylett.3c00505

Nano Letters, DOI: https://doi.org/10.1021/acs.nanolett.3c00764
 

송복규 기자 bgson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