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이 제작 중인 초대형 무인잠수정 ‘오르카’. photo naval news
우크라이나군이 무인 해상 자폭 드론으로 러시아 해군 군함을 연이어 침몰시키면서 드론이 전쟁의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 해상 전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우크라이나군에 해상 드론은 가장 성공적인 무기의 하나로 손꼽힌다. 해상 드론에 이어 최근엔 물속에서 은밀히 표적에 접근해 공격하는 '마리치카(Marichka)'라는 수중 드론(무인잠수정)도 개발해 시험 중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무인잠수정 개발 상황은 어떨까.
중국 도전 견제할 미 해군의 카드 '오르카'
영해를 수비하는 것은 영토를 지키는 것과는 천차만별이다. 깜깜이 세상인 심해로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적함을 공격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수중에선 위성을 이용한 위치확인시스템(GPS) 전파를 수신할 수 없고, 인간이 무선으로 원격조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세계 군사 강국들은 스스로 판단해 작전을 수행하는, 지적 자율능력을 갖춘 인공지능(AI)의 초대형 무인잠수정 개발에 관심이 높다.
초대형 무인잠수정은 기뢰나 폭뢰를 탑재하고 적진에 은밀히 침투한 뒤 장기간 정보 수집과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승조원이 없어도 돼 유능한 잠수함 요원 확보라는 현실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그만큼 크기도 작게 만들 수 있어 비용이 절감된다. 필요할 경우 자폭 공격이 가능한 것 또한 장점이다.
미(美) 해군은 이미 2012년부터 순항미사일과 어뢰는 물론 소형 무인잠수정까지 장착할 수 있는 초대형 무인잠수정(XLUUV·Extra Large Uncrewed Undersea Vehicle)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보잉(Boeing)사와의 협력을 통해 지난해 12월 초대형 공격용 무인잠수정 '오르카(Orca·범고래)'를 처음 확보했다. 10년 넘는 노력 끝에 첫 오르카를 개발한 보잉은 앞으로 해군에 5척의 오르카를 더 인도할 계획이다.
오르카는 이제까지 취역한 무인잠수정 가운데 가장 크다. 선체 길이 26m, 무게가 80t에 달한다. 사람을 태우지 않는 대신 항법과 주변 상황 인식, 추진, 기동 등 물속에서 움직이는 데 필요한 모든 기능을 컴퓨터가 스스로 수행한다. 동력은 내구성이 강화된 하이브리드 디젤·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얻는다. 최대 속도는 8노트(15㎞/h), 순항 속도는 약 3노트(5.6㎞/h) 내외이며, 3개월 이상 단독 작전을 지속할 수 있어 핵추진 잠수함의 대안으로 꼽힌다. 최대 1만500㎞를 항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미 해군은 2045년까지 총 50척 이상의 초대형 무인잠수정을 확보해 미래 해전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이번 오르카 확보는 미 해군의 해저 역량을 강화하는 데 중대한 이정표라는 평가다. 아직 오르카의 구체적 임무나 무장 탑재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르카가 실전 배치될 경우 지금보다 표적에 더 가까이 접근해 신속한 정보 획득은 물론 기뢰 설치와 전자전 같은 공세적 임무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오커스(AUKUS) 동맹국인 영국·호주도 초대형 무인 잠수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오커스는 미국·영국·호주 세 나라가 결성한 안보 동맹이다. 인도·태평양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2021년 9월 출범했다.
영국 해군은 세투스(Cetus)라 불리는 초대형 무인잠수정을 개발 중이다. 길이 12m, 무게 17t으로 오르카보다 작다. 작전 심도는 400m 이상, 항속거리는 1609㎞다. 장시간 자율 작전이 가능하고, 다양한 임무에 맞게 탑재물을 바꿀 수 있는 모듈형이다. 건조업체로 선정된 엠서브는 2022년 11월 말부터 세투스 개발에 들어갔다.
중국 해군의 확장에 대응하고 있는 호주도 앤듀릴 호주지사와 협력해 초대형 무인잠수정 개발을 진행 중이다. '고스트 샤크(Ghost Shark)'라고 불리는 초장거리 자율 항해 잠수정이다. 원래 내년이 개발 목표였으나 일이 빨리 진행돼 최근 그 모습을 드러냈고, 현재 본격 배치할 준비를 하고 있다. 크기나 무게 등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오커스 동맹국임을 감안할 때 오르카 수준의 크기와 성능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표적 공격은 물론 다양한 센서를 통해 실시간 정보를 수집하고 전송한다. 내년에 3척이 더 추가될 예정이다.
러시아가 운영 중인 수중 드론 ‘포세이돈’. photo naval news
러시아, 핵탄두·어뢰 탑재 수중 드론 개발
러시아는 이미 핵탄두와 재래식 탄두를 모두 탑재할 수 있는 수중 드론 '포세이돈'을 보유하고 있다. 핵무기의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 중어뢰인 동시에 수중 드론인 셈이다. 포세이돈은 잠수함에 탑재되어 수중으로 발사된다. 그렇기에 조기경보레이더를 회피해 적의 해군기지, 항구 등에 기습적으로 핵공격할 수 있다. 당연히 자율 항해가 가능하다. 최대 사정거리가 1만㎞에 달해 미국을 공격 표적으로 했을 때, 동쪽 러시아 영토인 사할린이나 쿠릴열도 등에서 발사하면 미국 서부 해안가의 타격이 가능하다.
중국은 2019년 건국 70주년 열병식 때 초대형 무인잠수정 'HSU-001'을 공개했다. 중국의 폐쇄성으로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여러 분석에 따르면 오르카보다 작고 무기 탑재량도 적다. 오르카처럼 장거리를 자율 항해해 정보 수집과 적함을 정찰할 수 있다.
중국은 또 다른 초대형 무인잠수정 개발도 진행 중이다. 2022년 9월에는 새로운 종류의 두 초대형 무인잠수정이 위성사진에 잡혔다. 하지만 위성사진만으로는 정확한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현재 전면부에 어뢰 발사대 4개를 장착한 무인잠수정을 개발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심지어 음파 탐지기도 달려 있을 거라는 예상이다.
우리나라는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한화시스템이 계약을 체결하고 초대형급 무인잠수정 시제품을 제작 중이다. 미 해군의 오르카에 해당하는 크기다. 한화시스템은 2027년 8월까지 원거리 자율 수행이 가능한 시제품을 만든 뒤 기반 기술을 검증할 예정이다. 이후 곧바로 다목적 모듈형 무인잠수정(MRXUUV)을 만들어 2030년대까지 전력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모듈형에서 알 수 있듯 전투용으로 쓸 때는 어뢰나 미사일 같은 무장을 탑재하고, 지원용으로 사용할 때는 특수부대 탑승 캡슐이나 정찰용 소형 드론을 실어 스스로 수중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바다 안에서 움직이는 드론은 부식을 견디면서 어두운 환경에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비행기형 드론보다 해결할 과제가 많다. 하지만 수중 드론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 향후 기술 개발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하루속히 한국의 모듈형 무인잠수정이 개발돼 우리 주변 해역 방어에 활용할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