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인천 서구에서 SK E&S의 자회사 IGE가 액화수소 플랜트 준공식을 개최했다. 이 시설은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연간 3만t의 액화수소를 만들 수 있다. SK인천석유화학 공장에서 생산한 기체 형태의 부생수소를 이용해 수소를 액화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효성그룹 산하 효성하이드로젠이 울산에 액화수소플랜트(연간 5200t)를 가동할 계획이다. 앞서 올해 1월에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창원에 1700t 규모의 액화수소플랜트를 준공했다. 3사를 합하면 국내에서 연간 3만6900t의 액화수소를 생산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생산된 액화수소는 주로 수소차, 수소버스 등 운송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부는 올해 6월 세계 최초로 청정수소 발전 입찰시장(CHPS)을 시작한다. 청정수소로 인정받은 수소나 암모니아를 석탄이나 액화천연가스(LNG)와 섞어 쓰는 혼소 발전에 참여할 기업들을 모집하는 것이다. 청정수소발전 입찰을 준비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생산한 청정수소를 암모니아 형태로 변환해 수입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청정수소를 암모니아로 전환한 것을 ‘청정 암모니아’로 인정해준다. 암모니아가 수소 사회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수소 운반, 스티로폼을 옮기는 것과 같다"
‘수소를 어떻게 저장하고 운반할 것인가’는 ‘수소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와 함께 수소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다. 저장과 운송 기술은 수소 생태계의 핵심 연결 고리다. 수소를 경제적으로, 또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이슈다.
현재까지 현실적인 방안으로 떠오른 것이 수소를 액화하거나 암모니아로의 전환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액상유기수소운반체(LOHC)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수소 저장과 운반이 문제가 되는 것은 수소가 가진 특성 때문이다. 수소는 미래 청정에너지로 주목받고 있지만 생산이 어려울뿐더러 저장·운송도 쉽지 않다. 수소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물질이다. 단위 부피당 에너지밀도는 0.5~2.5㎾h/ℓ로 메탄올(약 4.5㎾h/ℓ), 가솔린·디젤(9~10㎾h/ℓ) 등 다른 연료에 비해 매우 낮다. 수소를 기체 형태로 그대로 운반하는 것은 ‘스티로폼을 트럭에 싣고 옮기는 것과 같다’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수소를 이동하는 수단을 수소 운반체라고 부른다. 수소 운반체로는 변환 방식에 따라 물리적 운반체(압축수소·액화수소)와 화학적 운반체(암모니아·LOHC)로 분류한다. 지금까지는 수소를 200~700 기압(bar)으로 압축하는 압축 방식이 많이 쓰였다.
액화수소, 좋은 건 아는 데 기반이 아쉽다
차세대 수소 저장 방식으로 각광받는 것이 액화수소다. 수소를 끓는점인 영하 253도까지 냉각시키면 액체 상태로 변하는데 이를 액화수소라고 부른다. 액화수소는 기체 수소 대비 부피가 800분의 1로 줄어든다. 즉 동일한 저장 공간에 수소를 800배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운송량이 많아져 운송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실제 수송에서는 고압 수소 트레일러 1회당 수송량이 약 3000㎥인 반면 액화수소에서는 최대 12배인 3만6000㎥를 한꺼번에 운반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운반체와 비교할 때 액화수소는 운송 후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액화수소 충전소는 기체 수소 충전소에 비해 작은 면적을 차지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안전성이다. 고압으로 압축해야 하는 기체 수소와 달리 액체수소는 극초저온으로 냉각한 뒤 대기압과 유사한 수준에서 저장, 운송이 이뤄지기 때문에 폭발 위험이 줄어든다.
다만 극초저온으로 수소를 액화하는 기술 장벽이 높아 국내 기업들도 여전히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액화수소플랜트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프랑스의 에어리퀴드, 독일의 린데, 미국의 에어프로덕츠 3사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에도 SK E&S와 두산은 에어리퀴드와, 효성은 린데와 함께 액화소소플랜트를 건설했거나 건설 중이다.
해외에서 생산한 수소를 액화해 국내로 들어오기는 아직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액화수소를 수입하기 위해서는 액화수소운반선, 액화수소 인수기지, 대용량 저장 탱크 등의 개발이 필요하다.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조선 3사는 액화수소운반선 개발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2030년까지 상용 가능한 대형액화수소운반선을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암모니아는 인류를 두 번 구할 수 있나
아직 액화수소 생산 및 운송 생태계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에서 생산한 수소를 국내로 수입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암모니아(NH3)다. 암모니아는 ‘하버-보슈 공정’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질소(N) 원자 1개와 수소(H) 원자 3개를 결합해 만들 수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가 1789년 그의 저서 '인구론'에서 인구의 증가 속도를 식량의 증가 속도가 따라잡지 못해 결국 인류가 기근에 빠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공기중의 질소를 이용해 인공적으로 암모니아를 합성, 질소 비료를 만드는 방법(공중질소합성법)을 찾아내면서 식량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때부터 암모니아가 인류를 구한 대표적인 물질로 통했다.
암모니아는 상온과 유사한 영하 33도에서 액화할 수 있고 이동이 쉬워 국제적으로 현재도 상당히 많은 물량이 교역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암모니아 수출입 항구와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2020년 현재 전 세계 38개의 수출 터미널, 88개의 수입 터미널이 있으며 이 중 6곳은 수입과 수출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인천(1만5000t), 여수(5만t), 울산(9만3000t)의 저장 시설을 가진 수입 터미널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조선 3사도 초대형암모니아운반선을 제조하고 있다.
암모니아가 수소 운반체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이 같은 기존 인프라를 잘 활용한다면 수소를 경제적으로 저장, 운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모니아의 부피 대비 수소 저장용량은 약 120㎏H2/㎥로, 액화수소(70㎏H2/㎥)와 비교해 약 2배 높다는 점도 장점이다.
하지만 암모니아를 다시 수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크래킹(cracking·분해)’ 공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암모니아를 크래킹하기 위해서는 약 400도 이상의 온도에서 촉매를 활용해야 하는데 이때 에너지와 비용이 많이 소모된다. 크래킹을 통해 고순도의 수소를 추출하기도 쉽지 않다. 국내에는 아직 상용화 수준의 크래킹 설비도 없다. 현재 롯데정밀화학과 원익머티리얼즈가 실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암모니아를 수소로 전환해서 쓰는 대신 우선 석탄이나 액화천연가스(LNG)와 섞어 발전하는 ‘혼소 발전’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혼소발전도 결국은 암모니아나 수소로만 연료로 사용하는 전소 발전으로 전환해야 한다. 암모니아가 수소 사회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물처럼 보이는데 수소라고?…LOHC
최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 LOHC 기술이다. 이는 수소를 액체 상태의 유기화합물과 결합해 수소를 저장, 운반하는 방식이다. 수소를 품고 있는 LOHC는 겉으로 보면 투명한 물처럼 보인다. 부피당 수소 저장 용량은 약 45㎏H2/㎥이다. LOHC를 이용하면 상온·상압에서 적은 용량의 액체에 대량의 수소를 운반할 수 있다.
LOHC는 수요처에서는 이를 다시 수소와 유기화합물을 분리해 사용한다. 유기화합물은 이 같은 방식으로 200~300회 반복해서 재사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물질이 톨루엔이다. LOHC에서 수소를 분리할 때는 약 300도의 열에너지가 필요하다. LOHC 기술은 현재 일본, 미국, 유럽 등에서 실증단계이며 국내에서도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나 대학에서도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