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컴퓨텍스 돌아보니… “AI 다음 물결은 인간 닮은 로봇”
그래픽=김현국
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IT 박람회 ‘컴퓨텍스 2024′의 난강전시관 4층 전시장. 이날 가장 목이 좋은 중앙에 부스를 차린 대만 컴퓨터 부품 업체 MSI 전시관에선 바퀴 달린 로봇 팔이 스스로 움직이며 모형 테슬라 차량의 번호판을 촬영하고 있었다. MSI 관계자는 “로봇이 인공지능(AI) 학습을 위해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AI 추론 정확도를 높이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라며 “AI 학습을 위해 사람이 데이터를 주입하는 것을 넘어, 로봇 형태의 AI가 카메라와 각종 센서를 통해 스스로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고 학습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엔비디아 파트너’라는 간판을 단 산업용 로봇 업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대만 컴퓨터 비전 업체 솔로몬은 엔비디아 로봇 플랫폼 ‘아이작’을 탑재한 로봇 팔을 시연했다. 카메라 센서가 눈을 대신하고, 로봇은 금속 부품의 구멍을 정확히 짚어 이를 옮겼다.
그래픽=김현국
최고의 지능은 신체적 지능
이번 컴퓨텍스에 참석한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일 “AI 가속기(반도체) 신제품 출시 주기를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했다”며 2026년 출시할 ‘괴물급’ AI 가속기 루빈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AMD와 인텔도 이에 질세라 컴퓨텍스에서 엔비디아보다 뛰어난 성능을 강조한 신제품을 내놨다. 이들이 빠른 속도로 AI 반도체의 성능과 효율을 끌어올리는 이유는 AI 개발사들이 로봇용 AI 개발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AI 로봇이 인간과 비슷하게 움직이고 판단하기 위해선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소리 등 용량이 큰 정보도 실시간 학습하고 처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금보다 더 강력한 AI 가속기가 필요하다. 황 CEO는 “로봇의 시대가 열렸고, 우리는 이를 가속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컴퓨텍스에서 AI 빅테크들은 AI 로봇에 대한 비전과 실행 계획들을 잇따라 내놨다. 황 CEO는 “AI의 다음 물결은 물리적 세계에 대해 학습하는 AI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AI가 단순히 언어뿐만 아니라 시각, 청각, 촉각 등과 물리학 법칙을 학습해 인지력을 갖고 인간과 비슷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다. 황 CEO의 기조연설 무대에 오른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인 그루트(groot)는 비전(시각) AI 모델과 시연(움직임) AI 모델을 탑재하고 있어 사람의 행동을 관찰해 모방할 수 있다.
실제로 올 들어 AI 개발사들은 로봇용 AI 개발에 힘을 싣고 있다.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두 달 전부터 오픈AI는 4년 전 중단했던 로봇용 AI 모델 학습 팀을 구축하고 연구를 재개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촉망받는 로봇 기업 ‘피겨AI’와도 로봇 개발 파트너십을 맺었다. 구글은 올해 초 로봇을 위한 AI 모델인 ‘오토RT’를 공개했다.
AI 가속기 경쟁적 출시
AI 로봇을 비롯해 고성능 AI 모델을 위해 반도체 업체들은 고성능 반도체를 내놓고 있다. 컴퓨텍스도 기존 컴퓨터·IT 부품 전시에서 AI 반도체 경연장으로 완전히 탈바꿈해 있었다. 메인 전시장에 자리 잡은 대만 에이서·에이수스·MSI 전시관에서 가장 사람이 몰린 곳은 엔비디아 AI 가속기 신제품 ‘블랙웰’이 탑재된 AI 서버였다.
엔비디아 경쟁사들도 이번 컴퓨텍스에서 새로운 AI 가속기를 선보였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이날 자사 AI 가속기 가우디 시리즈 가격을 처음으로 공개하면서 “가우디2는 경쟁사 대비 3분의 1 수준, 가우디3은 3분의 2 수준”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경쟁사 제품은 엔비디아의 현재 주력 AI 가속기 H100이다. 그는 가우디3이 H100보다 학습 시간이 최대 40% 빠르다고도 했다.
리사 수 AMD CEO는 전날 AI 가속기 신제품 ‘MI325X’를 공개했다. 그는 “엔비디아 B200(신형 AI 가속기)보다 1.5배 많은 메모리 용량과 1.2배 빠른 성능을 갖췄다”고 했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AI 가속기 시장은 엔비디아가 주도하고, 나머지는 이를 쫓아가기 바쁘다”며 “결국 젠슨 황이 제시한 AI 로봇 시장으로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