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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2023-05-24 14: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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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 조선인 대학살 얘기하며 ‘동물원 사자 탈출’ 빗댄 日 장관
내용

 

입력2023.05.24. 오전 5:01   수정2023.05.24. 오전 7:53

 

野의원이 ‘당시 공권력 개입’ 묻자 日치안 책임자인 국가공안위원장
“최근 지진 때 사자 도망 소문처럼 대지진 혼란 땐 유언비어가 나와”


다니 고이치(谷公一) 일본 국가공안위원장(내각의 국무대신)이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벌어진 조선인 대학살과 관련, 동물원에서 도망친 사자 사건에 비유하는 발언을 했다. 일본의 치안 최고 책임자가 국회에서 당시 학살에 대한 사과는커녕, 경찰 등 공권력의 관여를 부정하는 와중에 이런 부적절한 표현이 나왔다.
 

1923년 9월 일본 관동 일대에 대지진이 발생, 10만명 이상이 숨지는 대참사가 벌어졌다./wikipedia
오는 9월 1일 100주년인 관동대지진은 10만5000여 명이 사망하고 주택 37만채가 파손된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재해 중 하나다. 진도 7.9의 강진이 일본 중심지 도쿄와 관동 일대를 강타해 큰 피해가 났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일본인에 의해 다수의 조선인이 살해·학살당했다. 일본 내무성의 치안 책임자가 ‘조선인 폭동’을 인정하면서 희생자가 더 늘었다.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나 진실 규명이 이뤄진 적은 없다.
 

관동 한국인 학살
1923년 9월 일본 관동 일대에 대지진이 발생, 10만명 이상이 숨지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민심이 극에 달하자 일본군부는 ‘한국인 폭동설’을 유포·조작해 다수의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사진은 몽둥이와 죽창으로 한국인을 학살하고 있는 모습/조선DB

이와 관해 23일 일본 참의원 내각위원회에서 스기오 히데야 참의원 의원(입헌민주당)은 일본의 치안 최고 책임자인 다니 고이치 국가공안위원장에게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중국인 학살 사건 때 경찰 등 공권력의 관여 여부 조사를 요구했다. 치안 책임자인 다니 대신(大臣)은 “정부가 조사한 바로는 사실관계를 파악할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스기오 참의원이 재차 “일본 중앙방재회의의 보고서가 있다”며 “국립국회도서관에도 일본의 유식자(有識者)들이 쓴 문서가 있다”고 추궁했지만, 다니 대신은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일본 국회에서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정부와 야당 간 설전이 벌어진 것은 100년 만이다. 앞서 1923년 제국국회 때 다부치 도요키치 의원(무소속)과 나가이 류타로 의원(헌정회, 입헌민정당)이 국회에서 일본 정부에 조선인 학살 문제를 제기했었다.

스기오 참의원은 똑같은 답변을 반복하는 다니 대신에게 “답변서를 읽지만 말고 당신 말로 하라”며 “올해는 관동대지진 100주년이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적에 발끈한 다니 대신은 “내가 책임지고 하는 말”이라며 “과거의 대재해 때 많은 일이 벌어졌다. 최근에도 구마모토 지진 때 동물원에서 사자가 도망쳤다는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나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대재해 혼란 때 생기는 유언비어를 어떻게 대처해나갈지, (과거 사례에서) 겸허하게 배워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의 책무”라고 말했다. 스기오 참의원은 “지금 동물원에서 사자가 도망갔다는 얘기가 아니라, 진짜 사람의 목숨을 얘기하는 것”이라며 “더는 정부가 (이 문제에서) 도망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sunghoch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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