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5.31. 오전 3:04 수정2023.05.31. 오전 4:52
바이든 “스웨덴 나토 가입과 거래하자”
에르도안, 시리아-리비아 등 분쟁 개입
러-中-이란 등 반미국가 유대 강화
‘현금 살포 동영상’ 공정성 논란도
재집권에 성공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대선 결선투표일인 28일 투표소 앞에서 “우리 대통령!” “잘생겼다!” 등을 외치는 지지자들을 가리키며 200리라(약 1만3000원)짜리 지폐를 건네고 있다. 이 장면을 찍은 영상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돌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28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21세기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이 국내외에서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작업에 본격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튀르키예를 국제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야망하에 시리아, 리비아 등 중동 내 분쟁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 확실시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및 중국, 이란 등 반미 국가와의 밀착을 강화하는 등 반미 전선 확대에도 앞장설 가능성이 높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미국산 최신 전투기 ‘F-16’ 구입과 튀르키예가 반대하는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문제를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런 그의 행보를 둘러싼 서방과의 마찰 또한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결선투표 당일인 28일 지지자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동영상이 공개되는 등 선거의 공정성 논란 또한 가라앉지 않고 있다.
● ‘중동 패권국’ 야망 노골화
그는 2003년 집권 후 줄곧 ‘오스만튀크르 제국의 부활’ ‘강한 튀르키예’ 등을 외치며 중동 내 크고 작은 분쟁에 개입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관여한 곳은 국경을 맞댄 시리아다.
수니파 이슬람국가인 튀르키예는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반군을 지원하며 시아파인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과 대립했다. 시리아 주둔 미군이 철수한 2019년에는 시리아 북부가 근거지인 소수민족 쿠르드계 무장단체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지상군을 대거 파병해 시리아 북부를 장악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반(反)쿠르드 정서를 한껏 활용했다. 에르도안 정권은 결선투표 5일 전인 23일 이라크 내 쿠르디스탄노동자당(PKK) 연계 조직에 대한 무인기 공격을 가했다. 재집권을 확정 지은 후에는 상대 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 대표가 “쿠르드 테러범과 연계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폈다. 2016년부터 수감 중인 쿠르드계 야권 지도자 셀라하틴 데미르타쉬를 임기 중 석방하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신정일치 국가로의 회귀를 꿈꾸는 그는 역시 내전 중인 리비아에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원리주의를 강조하는 통합정부(GNA) 측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세속주의 군벌 리비아국민군(LNA)을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일종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튀르키예는 2020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같은 튀르크계이며 언어 또한 유사한 아제르바이잔을 적극 지원했다. 튀르키예산 무인기를 지원받은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전차와 장갑차를 파괴하며 사실상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평을 얻었다.
● 反美 전선에도 앞장… 바이든과 통화 때도 신경전
미국과는 계속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29일 취재진에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통화 사실을 공개하며 “그는 F-16에 대해 무언가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에게 ‘스웨덴에 대한 거래를 원한다. 그 문제를 끝내자’고 했다”고 말했다.
튀르키예는 약 200억 달러(약 26조 원) 규모의 F-16 전투기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미국은 스웨덴의 나토 가입 허용이 우선이라고 맞서고 있다. 튀르키예는 스웨덴이 쿠르드족을 옹호한다는 점을 나토 가입 거부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20년간 군경, 언론 등 사회 각 분야를 장악한 채 이번 선거를 치렀음에도 결선투표에서 불과 4.2%포인트 차이로 이긴 데다 노골적인 현금 살포 동영상까지 등장했다는 점도 집권 정당성에 대한 의혹을 고조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는 28일 이스탄불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후 일부 지지자가 환호하자 주머니에서 200리라(약 1만3000원) 지폐를 꺼내 나눠줬다. ‘가스 요금 무료 추진’ 등 포퓰리즘성 공약으로 일관한 그가 노골적으로 돈을 살포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선거관리위원회 등이 이를 문제 삼지 않는 것 또한 선거의 공정성에 의문을 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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