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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2023-07-31 1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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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경제난 레바논, 중앙은행 총재 30년 만에 물러나
내용

 

입력2023.07.31. 오전 11:54

 

1993년 임명돼 내전으로 망가진 경제 재건
무리한 정부 지원·환율 정책으로 명성 무너져
정부 공백 상태 장기화…후임자 지명 못 해

라이드 살라메 레바논 중앙은행 총재가 2019년 11월 수도 베이루트 중앙은행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30년간 레바논 경제의 흥망성쇠를 모두 겪은 라이드 살라메 레바논 중앙은행 총재가 30일(현지시간) 사임했다.

레바논은 2020년 220명이 목숨을 잃은 베이루트항 창고 폭발 사고 이후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지만, 정치권의 극심한 혼란으로 후임 총재조차 지명할 수 없는 상황이다. 레바논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살라메 총재가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보도했다. 1993년 중앙은행 수장으로 임명된 살라메 총재는 지난 30년간 레바논 경제를 이끌어왔다.

레바논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출신이 중심이 된 이슬람 세력과 당시 정권을 잡았던 기독교 민병대 간의 내전으로 쑥대밭이 됐다. FT는 “살라메 총재는 내전으로 무너진 경제를 일으킨 공로를 인정받은 인물”이라며 “그는 재임 기간 12명의 총리를 거쳤고, 한때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부상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살라메 총재의 명성은 2010년대 후반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레바논 정부가 막대한 지출과 비생산적인 경제 정책을 펼치고 있을 때도 통화량을 늘려 무리하게 자금을 지원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현실과 동떨어진 환율 정책으로 통화 가치를 떨어뜨렸다. AFP통신에 따르면 레바논 파운드는 2019년 이후 달러 대비 가치가 98% 이상 하락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지난 2월 예금 인출이 막히자 은행에 불을 지르고 돌을 던지는 등 폭동을 일으켰다.

살라메 총재는 또 개인 비리 의혹까지 불거지며 거센 저항을 받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살라메 총재는 권력을 남용해 유럽에서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다. 프랑스와 스위스 검찰이 각각 체포 영장을 발부할 정도로 혐의가 무거웠다. 그는 지난 26일 레바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희생양이다.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레바논 시민들이 지난 2월 북서부 트리폴리 은행 앞에서 정부의 예금 인출 금지 결정에 항의하며 건물에 불을 지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문제는 살라메 총재 후임자를 찾아야 할 정부가 사실상 공백 상태를 점이다. 지난해 10월 미셸 아운 전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된 이후 지금까지 레바논 대통령 자리는 공석으로 남아있다. 재벌 출신인 나지브 미카티가 2021년 7월 총리로 임명됐지만, 종교·계파 간 갈등으로 ‘임시’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FT는 “각종 논란에도 레바논에선 최근까지도 살라메 총재를 유임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수였다”며 “중앙은행 총재 후임자조차 선출하지 못하는 레바논의 만성적인 정치 혼란을 고스란히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레바논 당국은 일단 부총재 4명이 공동으로 중앙은행을 관리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들은 “다음 달 1일부터 통화 정책을 주도하게 될 우리 부총재들이 정부 개혁 없이 어떻게 레바논 파운드를 안정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지금은 정책 자체가 없다. 정부가 빨리 정상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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