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8.30. 오전 4:08
유럽 최대 경제강국 독일이 경기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침체의 양상이 단순 불황 수준이 아니라 독일을 최고 선진국 반열에 올려놨던 ‘기술·공업 수출강국’ 발전전략을 수정해야 할 만큼 전면적·장기적이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독일 경제를 진단하면서 “제조업과 무역의 전성기였던 글로벌시대에 호황을 누렸던 독일이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공급망 붕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가격 급등, 물가 상승과 금리 급등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의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 분기 대비 0%였으며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0.4%)와 지난 1분기(-0.1%) 연속 마이너스였다. 이를 반영하듯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저조한 경제성장 실적을 기록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2018년 이전까지 유럽에서 가장 높았던 독일의 제조업 생산량과 GDP 실적은 지난 5년간 거의 늘지 않은 채 제자리걸음만 하는 셈이다. 독일 경제 침체의 가장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에너지가 끊기면서 이에 의존했던 제조업과 화학 등 주요 산업들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또 다른 요인은 지나친 중국 의존도다. 최대 시장인 중국이 팬데믹 시기 전면봉쇄 정책과 미·중 갈등 등으로 경제 위기를 겪게 되자 독일의 수출은 격감했다. 연방통계청이 집계한 대중 수출액은 2021년 1230억 달러에서 지난해 1130억 달러로 100억달러어치나 감소했다. 전 세계 국가들의 무역기조가 자유무역 대신 보호주의로 돌아선 것도 수출 감소에 결정타를 날렸다. WSJ는 “특히 폭스바겐 등 독일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전환에서 뒤처진 반면 중국 신생 전기차 제조업체들은 빠르게 생산을 늘리며 독일 자동차기업들의 경쟁자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독일 산업계가 전 세계적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신문은 “호황을 누리는 동안 노동력 고령화, 서비스 부문 경직화, 관료주의 증가 등 ‘독일 고질병’이 속출했다”며 “첨단 정보기술(IT) 분야를 도외시한 채 자동차·기계·화학 등 ‘굴뚝산업’에만 주력하면서 산업 경직화는 더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각종 제도적·비제도적 규제도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화이자와 손잡고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독일 바이오기업 바이오엔텍은 주요 연구조차 진행하지 못할 정도로 엄격한 독일 개인정보보호법을 피해 연구와 임상시험 활동을 상당부분 영국으로 옮겼다. 세계적 화학기업인 린데는 금융 규제 부담이 증가하자, 지난 3월 프랑크푸르트증시 상장을 폐지하고 뉴욕증시 상장만 유지키로 했다. 숙련인력 부족, 복잡한 이민규정, 통신인프라 부족 등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독일은 1990년 통일 직후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한 제조업 생산·고급제품 수출 전략으로 경제강국으로 부상했다. 영국 프랑스로 쏠렸던 유럽연합(EU)의 경제 지형을 독일 중심으로 재편하며 얼마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밥줄’ 역할을 도맡다시피했다. 요제프 요페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원은 WSJ와의 접촉에서 “독일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존 산업시스템을 지식경제로 전환하지 못한 것과 정치논리가 개입된 비합리적 에너지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김지애 기자(amor@kmib.co.kr) 기자 프로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