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2.15. 오전 11:16 수정2023.02.15. 오전 11:17
중 매체 "미 사회 분열·당파대립으로 강경대응"
경제난 극복 위해 미중 긴장 고조 원치 않으나
국내 여론 의식해 양보하는 태도 보이기 힘들어
[베이징=AP/뉴시스]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13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정찰 풍선이 지난해 5월 이후 10 차례 이상 중국 상공을 비행했다고 주장했다. 2023.2.13.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중국 정부가 미국이 중국의 정찰 풍선을 격추한 것은 미국이 쇠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묘사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 별 것 아닌 풍선에 겁을 먹고 강경대응한 것은 미국사회의 심각한 분열과 당파 투쟁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최근 사설에서 풍선 사건이 “미국의 대처 능력이 얼마나 미숙하고 무책임한 지를 세계에 드러냈다”고 썼다.
중국 선전기구들은 바이든 정부가 강경 보수 세력보다 선수를 쳐 중국보다 우위에 있음을 과시하려고 과잉대응하고 있다고 조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단 한 번도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을 의식하는 대응이 나온 적이 없다.
한편 14일 현재 중국에선 1풍선 사건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당국은 미국 이외 다른 지역에 걸린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루 샤야 주 프랑스 중국 대사는 유럽연합(EU)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중국과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나 미국의 패권에서 벗어난 다극체제하의 세계에 대한 비전을 공유했다.
시주석은 지난주 공산당 중앙당교 연설에서 “중국식 현대화”를 인류발전의 새 모델로 제시하면서 “서구화가 현대화”라는 개념을 배격했다.
정찰 풍선이 격추된 지난 4일 이후 중국 관영 매체 오피니언난에 실린 모든 기사에서 미국이 과잉대응해 민간 풍선을 격추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미국이 최근 3일 연속 다른 풍선을 격추하고 중국이 보하이만 상공의 풍선을 격추할 것으로 발표하면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양국 지도자들은 자국의 민족주의 정서를 조절하지 못해 충돌 위험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
동양이 부상하고 서구가 쇠퇴한다면서 중국의 부흥을 강조해온 시주석으로선 미국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기에 풍선 문제에 강경대응하고 있다.
풍선사건과 관련한 중국의 입장은 며칠 새 크게 변해왔다. 당초 몬타나주 상공을 비행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미국이 “여론전을 펴고 있다”고 비난했으나 이번 주 중국 정부는 미국의 고고도 풍선이 지난해 5월 이후 중국 영공을 10번 이상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미 국방부가 수십억 달러를 들여 고고도 정찰 풍선을 개발해 군사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풍선 격추에 과도한 무력을 행사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미국은 지나친 힘자랑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매체들은 미국 정계 분열을 강조하고 있다. 공화당으로부터 조기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받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풍선을 격추했다는 주장이다.
홍콩중문대 정융넨 교수는 미국의 민족주의가 커지면 중국의 민족주의도 커질 것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최고의 국제적 위험은 미국 국내 정치”라고 강조했다.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게 되면 미중 간 협력은 크게 어려워지게 된다. 또 다음달 시주석의 러시아 방문도 미중 갈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편 오는 17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이 함께 참석하는 자리가 최근의 미중 갈등을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두 사람이 만나는 일정은 정해져 있지 않으나 미 국무부는 양국간 소통채널을 열어두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먼저 유화적 신호를 내기는 쉽지 않지만 경기 회복이 시급한 중국 정부도 양국 간 긴장을 늦춰야할 이유가 충분하다. 지난주 미중경제회의 자리에서 주미 중국대사관 대변인이 풍선 사건이 미국의 대중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기를 희망했다.
당장 두 나라 중 누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가 관건이다. 두 나라 모두 먼저 화해를 시도하면 굴복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과 긴장을 높이지 않으면서 강한 모습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브루킹스 연구소 라이언 하스 선임 연구원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중국은 국내 여론을 더 의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중국이 상황 개선을 바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중국 정부는 양보하는 것처럼 비쳐지지 않으면서 정찰 풍선 문제를 넘기고 싶어 한다”고 강조했다.
강영진 기자(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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