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2.16. 오전 8:00 수정2023.02.16. 오전 11:35
위니아도 냉장고·전자레인지 공장 매각
투자 유치·소비 활성화 뛰어든 톈진
한인회장 "변화 인정하며 기회 모색할 것"지난 10일 찾은 중국 톈진 난카이취 스타이아오청 거리. 한인 밀집 지역으로 손꼽히는 번화가였던 이곳에는 걷는 내내 한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중 교류와 기업 투자가 활발하던 2010년 초, 2500여곳에 달하던 톈진 내 한국기업 수는 이제 750여곳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주요 대기업들이 수년 전 일부 생산기지를 제3국으로 옮기거나 폐쇄한 결정은 특히 큰 영향을 미쳤다. 관계 기업들이 떠난 자리는 모두 중국 제약사들이 채우면서 현재는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됐다. 현지 교민들은 "제로코로나 해제 이후 톈진시가 내놓는 경제 활성화 정책을 살펴보면서, 여러 기업들이 사업 지속과 철수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중국 톈진의 대표적인 한인타운 난카이취 스타이아오청 일대. 평일 낮시간에는 오가는 사람이 더욱 적어 거리가 한산하다. (사진 촬영= 김현정 특파원)
중국 톈진의 대표적인 한인타운 난카이취 스타이아오청 일대. 평일 낮시간에는 오가는 사람이 더욱 적어 거리가 한산하다. (사진 촬영= 김현정 특파원)
위니아도 공장 매각…"脫중국? 대안 찾기도 쉽지 않아"
대기업의 이전 판단과 맞물려 중국 본토 기업들이 한국의 기술과 설비 수준을 서서히 따라잡으면서, 톈진에서 아예 발을 빼거나 공장을 매각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지난 2018년과 2020년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TV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고, LG전자도 2020년 생산법인을 폐쇄한 바 있다.
최근에는 중견 가전업체로 유명한 위니아가 톈진 내 냉장고 및 전자레인지 생산 공장을 모두 매각했다. 인수 주체는 사모펀드 형식을 빌린 중국 가전업체 오크마(Aucma) 측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확산 전 10억원대 안팎이던 위니아전자 톈진 법인의 연간 순이익은 코로나19 확산 첫해인 2020년 3억원으로 급감한 데 이어, 2021년에는 40억원 순손실로 돌아서며 고전했다. 톈진 개발구 내에서 설비업체를 운영하는 A사 대표는 "한 때 코로나19 여파로 한국으로 물건을 보내지도, 외부에서 부품을 가져오지도 못하는 이중봉쇄의 상황이 길어졌다"면서 "개발구 내에 확진자가 한 명도 없는데도 시도 때도 없이 셧다운된 탓에 위니아를 포함해 대부분의 공장이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외부에서는 '탈(脫) 중국'에 대해 쉽게 말하지만, 대안 사업지를 찾기도 쉽지 않다. A사 대표는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등으로 일찍이 공장을 옮긴 지인들이 있지만, 완제품 생산을 위한 부품사가 대부분 여전히 중국에 있어 코로나19 확산 이후 공급망 불안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근로자 수준이나 인건비 외에도 생태계 측면의 인프라는 아직 중국에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가전 부품 업체 B사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이 기술력으로 따라붙으며 가격경쟁을 하기 때문에, 과거 대비 이익이 크게 줄어든 것은 맞다"면서도 "새롭게 발생할 비용과 리스크 등을 고려해 현상 유지를 할지, 이전이나 공장폐쇄를 할지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현지에서 사업 정리를 검토한다는 소문이 날 경우 기존 거래관계에 갑자기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최근엔 교민들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면서 보도시 익명을 당부하기도 했다.
중국 톈진의 대표적 번화가인 빈쟝다오 거리. (사진= 김현정 특파원)
장기간 교민이 감소세를 보인 탓에 톈진 내에서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 역시 고민이 깊다. 교민 수는 현지 기업체 규모와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데, 2010년대 초 7만명대에서 서서히 줄다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급감해 이제는 8000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와중에 꾸준히 인건비는 오르고, 중국 내 사회보장제도 개편으로 고용 유연성도 떨어졌다. 13명의 직원을 둔 공유공간업체를 운영 중인 대표 C 씨는 "코로나19 이전 인테리어 공사 인부 인건비가 하루 300위안(약 5만6000원) 정도였는데, 최근엔 500위안까지 올려도 사람이 잘 구해지지 않았다"면서 "지난해 연간 1500위안이던 직원 1인당 사회보험료가 이제는 1700위안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고용 상황이 악화한 탓에 노동법 관련 관심이 고조되면서, 퇴사나 해고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이 현지 직원과 한국인 고용주 간 노동 중재위 제소로 이어지기도 한다. C 대표는 "2년간 함께 일한 직원이 지난해 그만두면서, 수습 기간으로 생각한 초기 3개월간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던 일을 끄집어내 뒤늦게 1만5000위안을 요구해왔다"면서 "당국의 중재까지 2달이 넘게 걸렸는데, 유사한 제소 건이 줄줄이 밀려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아오청에서 한식당을 운영 중인 D씨는 "과거에는 메이퇀(美團) 배달원들이 주변 소도시나 농촌 출신 외지인이었는데, 최근 1~2년 사이 대부분 톈진 사람들로 바뀌었다"면서 "지역민들이 기존 직업을 잃기도 했고, 배달원의 수입이 더 나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투자 유치·소비 활성화 뛰어든 톈진시…기회 모색
수치로 확인되는 톈진시의 경제활력도 과거와 비교해 힘을 잃었다. 중국 각 지방정부가 발표한 31개 성시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에 따르면, 톈진은 전국 최저치인 4.0%를 제시했다. 면세 특구로 급성장 중인 하이난(9.5%)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대부분의 지역은 5.0~6.5%를 내걸었다.
대외 경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교역총액으로 봐도 톈진은 다른 지역에 비해 부진한 흐름을 보인다. 톈진의 지난해 교역총액은 8449억위안으로 전국 성시 가운데 10위를 기록했다. 전년과 비교해 수출은 1.9%, 수입은 1.0% 줄면서 전체 교역액이 1.4% 감소했다. 1~10위 성시 가운데 교역총액이 감소한 것은 톈진이 유일하다.
하지만 톈진시도 최근 경제 발전과 성장을 위한 조치를 대대적으로 발표하며, 새로운 분야로의 도약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전략적 신흥산업으로 항공우주와 스마트제조 등을 육성하기로 하고, 적극적인 투자유치에 나섰다. 1분기 총 투자액 목표치를 2000억위안으로 정하고, 국제 모터쇼 개최와 관광 장려, 1억원 위안 규모의 소비쿠폰 발행, 해외투자자의 연구·개발(R&D) 센터 건립을 독려하기 위한 각종 세금감면책을 발표했다. 다른 도시 대비 고속도로 통행료를 낮추고, 소규모 사업자의 부가세를 면제해주며, 고용보험요율 인하 방안도 내놨다.
박홍희 톈진한국인회 회장은 "외부의 우려와 달리 톈진시 정부의 협조로 현지 민관 우호 관계는 매우 좋다"면서 "코로나19로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 당국이 물류 등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해준 덕에 오히려 외국기업으로서 많은 혜택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의 개선된 기술발전 수준을 인정하면서, 우리 기업에도 이로울 수 있도록 잘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김현정(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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