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17조엔 경기 부양책 발표
감세·저소득층 지원에 5조엔
경제 효과·형평성 문제 논란
미래 세대에 책임 부담 지적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7조엔(125조원)에 달하는 재정을 투입해 지지율 회복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막대한 재정적자 부담 가중과 형평성이 부족한 감세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누리꾼들은 경기 부양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는 의미로, 기시다 총리를 ‘감세 거짓말 안경잡이’라며 비난하고 있는 형국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3일 아사히 신문은 "감세는 바라마키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며 기시다 총리의 경기부양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바라마키란 일본어로 ‘마구 뿌린다’는 뜻으로, 우리말로는 ‘퍼주기’식의 포퓰리즘 정책을 의미한다. 기시다 총리는 감세를 이번 경기 부양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전체 예산 중 감세와 저소득층 지원에만 5조엔을 투입한다.
일본의 경제 상황을 현실성 있게 반영하지 못한 부양책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시마자와 요시 간토가쿠인대학교 교수는 아사히 신문에 "과거 1960년대에도 소득 감세정책을 실시한 바 있지만, 당시는 일본의 실업률이 낮고 재정이 흑자 상태라 사회에 환원하려 했던 것"이라며 "오히려 흑자가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실시한 정책이라 현재 같은 재정적자 상태에서는 감세를 실시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시마자와 교수는 "새로운 재원을 어디서 조달하지 않는 한 결국 정부가 부채를 늘려야 한다"며 "지금 세대가 재원을 모조리 써버리고 미래 세대는 빚을 갚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감세 추진은 미래 세대에 책임을 부과해도 되냐는 문제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사설을 통해 "눈 앞의 선거가 아니라 사회보장과 재정구조개혁 등과 같은 미래 세대와 마주하는 정책을 요구한다"며 이번 정책을 과연 미래를 위한 대책이라 볼 수 있냐고 기시다 총리에게 반문했다.
감세 정책의 경기 부양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최저 임금 인상과 기업들의 설비투자 촉진이 선행돼야 하는 데, 곁다리 정책인 감세에 지나친 예산을 투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는 "경기가 개선되려면 물가가 오른 만큼 임금이 오르고 소비가 증가하는 선순환이 이어져야 하며 기업은 투자를 확대한다"며 감세정책은 비상시를 위해 마련한 보조 바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감세 정책의 형평성에 대한 반발도 포착된다. 기시다 내각이 전날 발표한 경제정책안에는 소득세 3만엔과 주민세 1만엔을 포함해 총 4만엔의 세금을 감면하는 내용이 담겼다. 감세액은 총 3조엔 중반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주민세를 내지 않는 저소득 가구에게는 가구당 7만엔(총 1조엔 이상)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명기하면서, 일각에서는 고소득·중위소득 구간의 시민들에게 돈을 걷어 저소득층에게 배분하는 것이 맞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의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기시다 총리를 ‘감세 거짓말 안경잡이’라는 멸칭으로 부르는 풍조가 확산하고 있다. 당초 기시다 총리는 국방비 재원을 확충하기 위해 소비세, 담뱃세 등을 올렸다는 이유로 ‘증세 안경잡이’라는 멸칭으로 불렸다. 그러나 감세를 두고 형평성 논란이 일면서 ‘감세 거짓말 안경잡이’라는 멸칭이 새롭게 생겨났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새 경제정책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전날 기자회견에서 ‘증세 안경잡이’ 등의 멸칭으로 야유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아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기시다 총리는 "여러가지 별명으로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어떤 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상관없다. 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