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2.15. 오전 10:25
15% 미만 인수로 사전 심사 피해
공개매수 이후 기업결합 심사
시장점유율 산정 기준 관건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 하이브가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주주 겸 전 총괄 프로듀서가 보유한 지분 14.8%를 4228억 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원래 SM 1대 주주인 이수만의 지분율은 18.46%로, 하이브는 이번 거래로 단숨에 최대 주주에 등극한다. [연합]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국 엔터테인먼트 사상 유례없는 ‘빅딜’이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국내 연예기획사 빅4 중 두 거대 기획사의 만남에 공정거래위원회도 분주해질 것으로 보인다. SM을 품는 하이브에 대한 기업결합 심사가 이번 인수전의 ‘중대 변수’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하이브는 다음 달 1일까지 SM 소액주주들을 대상으로 공개매수에 나서, 주당 12만원에 보통주 지분 25%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SM의 소액주주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5만 2129명으로, 지분 70.53%를 보유하고 있다.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14.8%를 더하면 하이브는 총 39.8%의 지분을 가지게 된다. 지분 취득 예정일은 3월 6일이다. 이날은 하이브가 이수만 전 총괄의 지분을 취득하고, 공개매수 대금을 결제하는 날이자, 카카오가 SM 유상증자(전환사채 발행 포함 9.05%) 주금 납입일이다.
이번 ‘SM 인수전’은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고의 빅딜’로 불릴 만큼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두 거대 기획사의 결합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 또는 매출액이 3000억원 이상인 기업이 자산 또는 매출액이 300억원 이상인 상장사 주식을 15% 이상 취득하면,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해야 한다. 하이브는 현재 이 전 총괄의 지분을 14.8%만 우선 취득하기로 한 만큼 사전심사는 피하고 있다.
독과점 우려가 큰 만큼 기업결합 심사 통과도 관건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그간 엔터테인먼트사를 대상으로 한 기업결합 사례는 많지 않았다. 2020년 하이브의 전신이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할 때 작은 규모라 무조건 승인을 한 적은 있지만, 이러한 규모는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지분 취득 이후, 기업 결합 신고가 접수되면 공정위에선 ▷ 경쟁 제한성 여부▷ 시장 지배력 획득 후 남용 우려 ▷ 기업 결합으로 인한 효율성 지배 효과 등을 따져 심사 과정을 거친다.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제공]
첫 단계는 ‘시장 획정’…음반·공연·굿즈 등 ‘따로따로’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점유율 산정’ 자체가 까다롭고 모호한 지점이 많다. 크고 작은 기획사와 분야가 산재해있어 동일시장으로 규정하는 범위 책정이 쉽지 않다.
점유율 산정의 첫 관문은 ‘관련 시장 획정’이다. 시정 획정은 제품의 특성에 따라 수요나 공급 대체성으로 판단, 시장의 규모와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시장 획정에 따라 공정의 기업결합 심사는 달라진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번 하이브와 SM의 기업결합 심사에선 이들이 제공하는 각각의 상품과 서비스의 시장을 세분화해 따져본다.
공정위 관계자는 “음반, 음원 제작과 유통, 콘텐츠, 공연, 굿즈, 팬플랫폼 구독, 요식업 등 각각의 분야를 개별 상품과 서비스로 판단해 해당 상품군 내에서 점유율을 살필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전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두 기업의 매출액을 합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상품별로 매출을 살핀 뒤 해당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계산한다”는 설명이다. 공연은 공연끼리, 음반을 음반끼리, 굿즈는 굿즈끼리 살피는 것이다.
NCT127.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음반 시장만 놓고 보면 하이브와 SM의 만남은 명실상부 두 공룡의 동맹이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연간 음반 판매량 추정치에서 하이브와 SM의 합산 점유율은 50%에 육박했다. 지난해는 전체 음반 판매량 7658만 장 가운데 하이브가 2244만장(29.30%), SM이 1561만장(20.38%)으로 총 49.69%를 차지했다. JYP는 1192만장(15.56%), YG는 462만장(6.03%)였다. 빅4를 제외한 다른 기획사의 총 판매량은 2200만장(28.72%)인 것으로 나타났다. 2위사인 JYP와의 시장점유율 합계 차이는 30%를 넘는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직종 역시 세분화돼 보다 섬세함을 요구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수와 배우, 예능인도 동일한 시장으로 볼지, 다른 시장으로 볼지도 시장 범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고 했다. 대중음악 안에서의 분류도 고심 중이다. 아이돌, 중견 등으로 가수를 세분화하는 것은 물론 ‘초대형 K팝 그룹’을 별개의 프리미엄 시장으로 판단할 것인지도 고려하고 있다.
시장 획정에서 판별 요소가 되는 것 중 하나는 ‘수요 대체성’이다. 공정위는 수요 대체성이 있는 상품 시장을 동일시장으로 획정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선 “엔터테인먼트는 상품이 아니기에 ‘수요 대체성’ 판별이 모호하고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특정 그룹의 팬클럽으로 활동하다 해당 아이돌 그룹을 대신할 다른 그룹을 찾게 될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공정위에선 구체적 데이터로 ‘가능성의 정도’를 판단하겠다는 계획이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최근엔 활동 기간이 길어져 여러 세대의 아이돌이 존재해 동시에 다수의 팀을 선택하는 팬들도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라며 “다만 오랜 시간 활동한 슈퍼주니어나 동방신기 등의 사례를 보면 K팝 팬덤은 전통적으로 각자가 선택한 아티스트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대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
다음 단계는 매출 점유율 따지기…“최소 30~150일 걸릴 예정
각각의 상품별로 시장이 획정되면 전체 시장에서 해당 상품이 차지하는 매출을 살펴본다.
공정위에 따르면 해당 업계의 1위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시장점유율이 10% 미만인 사업자를 제외하고 1~3위 사업자의 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이면 시장지배적 사업지정요건에 해당한다고 본다. 또 합산 점유율이 거래 분야의 1위일 경우, 2위 기업과의 차이가 시장점유율 합계의 25% 이상이면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이라고 판단한다. 가장 강력한 시정조치는 ‘기업결합’을 허가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조건부 승인’도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예를 들면 총 다섯 개의 시장이 나왔는데, 공연과 같은 하나의 시장에서 다른 연예기획사와의 경쟁을 해할 문제가 생겼다면 행태적 조치 등으로 조건부 승인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테면 하이브와 SM이 결합했을 때 공연, 음반 등의 시장에서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공연 티켓 가격이나 음반 판매 가격이 인상될 우려가 있는지도 살핀다. 음원 판매량 역시 높은 회사이다 보니, 거래 회사가 되는 음원 스트리밍 사업자를 대상으로 가격 협상력이 높아질 가능성도 따져본다. 이러한 경우 ▷ 주식 일부 처분 ▷ 영업 조건·방식·범위 제한 ▷ 일정 기간 가격 인상률 제한 등을 조건으로 내건다.
심사 접수 전이지만, 공정위 역시 분주한 상황이다. 신고가 들어온 날부기업결합 심사는 신고 접수일부터 30일 이내에 결과를 통지해야 하나, 최장 120~150일까지 여유를 둔다. 실제 심사는 자료 요구 후, 자료가 도달할 때까지의 기간은 제외한다. 때문에 심사 기간이 150일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공정위 관계자는 “복잡한 쟁점이 많은 만큼 별도로 지표, 지수화한 심사를 할 것”이라며 “이번 심사를 통해 시장에서 경쟁을 보는 기준이 만들어지게 되리라 본다. 향후 다른 연예기획사들이 인수 합병을 시도할 때에도 경쟁에 문제가 되는 부분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승희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