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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2023-12-15 12: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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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녀 살해한 ‘희대의 연쇄살인마’로 악명 떨쳤던 호주 여성, 20년 만에 누명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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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3.12.14. 오후 10:24  수정2023.12.14. 오후 10:45

 

2023년 12월 14일(현지시간) 호주 시드니의 뉴사우스웨일즈 형사항소법원에서 캐슬린 폴빅(오른쪽)이 친구 트레이시 채프먼과 포옹하고 있다. 이날 항소법원은 배심원단이 네 자녀를 죽인 혐의로 폴빅에게 유죄를 평결한 지 20년 만에 그에 대한 모든 유죄 판결을 뒤집었다.

호주에서 네 자녀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0년을 복역한 여성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14일(현지시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형사항소법원은 4명의 자녀를 죽였다는 혐의로 20년 간 수감된 캐슬린 폴빅(56)의 유죄 판결을 파기했다고 BBC 등이 보도했다. 폴빅은 1989년부터 10여년 동안 숨진 네 자녀들에 대해 3건의 살인과 1건의 과실 치사 혐의로 징역 40년을 선고받고 2003년 수감됐다가 20년 만에 누명을 벗게 됐다.

앤드류 벨 대법원장은 “새로운 과학적 증거가 당시 폴빅의 재판에서 나온 증거보다 더 중요하다는 항소법원 판결에 동의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증거로 쓰인 폴빅의 일기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신뢰할 수 있는 증거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폴빅의 네 아이는 1989년, 1991년, 1993년, 1999년에 잇따라 사망했다. 처음 세 아이는 뚜렷한 이유 없이 사망하는 경우를 지칭하는 ‘영아 돌연사 증후군(SIDS)’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넷째 로라가 사망할 당시 한 법의학자가 사망 원인을 ‘미확인’이라고 기재하자 의심을 품은 경찰이 네 아이의 죽음에 대한 전면 수사에 착수했고, 결국 살해 용의자로 친모인 폴빅이 지목됐다.

폴빅이 자녀들을 죽였다는 물리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2003년 열린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네 명 모두 자연사할 확률이 극히 적기 때문에 살인에 의한 죽음이라고 확신했다. 폴빅의 일기장에서 발견된 특정 구절도 범죄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결국 폴빅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폴빅은 당시 신문 헤드라인에서 ‘호주 최악의 연쇄 살인범’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2019년에도 재조사됐지만 폴빅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결론지어졌다.

폴빅의 무죄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2022년 과학자들이 폴빅의 사망한 두 딸에게서 이전에 알려진 적 없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발견하면서다. 이 돌연변이 유전자는 갑작스런 심장마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사망한 두 아들에게서도 급성 간질과 관련된 다른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며 폴빅의 유죄 판결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2023년 12월14일(현지시간) 호주 시드니의 뉴사우스웨일스 형사항소법원 밖에서 캐슬린 폴빅이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후 폴빅은 은퇴한 판사 톰 배서스트의 추천으로 지난 6월 사면을 받아 석방됐다. 이미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후였다. 그리고 이날 결국 무죄 판결을 받은 폴빅은 “언젠가는 누명을 벗고 이 자리에 설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했다”며 “내가 겪은 일을 다른 누구도 겪지 않기를 바란다” 말했다. 이어 “업데이트된 과학과 유전학이 내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가디언은 이번 사건이 호주에서 잘못된 유죄 판결로 인해 가장 큰 배상금이 지급되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폴빅의 변호사 라니 레고는 “자녀를 잃고 20년 가까이 감옥에 갇힌 고통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국가에 배상을 요구할 예정이고 배상금은 상당한 액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심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 또한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호주의 각 주정부에는 형사사건 검토위원회 등 독립적인 기관을 설립하라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호주 과학 아카데미의 마리아 라비아 최고경영자(CEO)는 “이정도 규모의 사건으로도 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변화 속도를 고려할 때 호주도 더 과학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법률 시스템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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