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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페루 대통령 “난 강탈당했다”…시위 중 사망 7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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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페루 대통령 “난 강탈당했다”…시위 중 사망 7명으로

입력2022.12.13. 오후 1:35   수정2022.12.13. 오후 9:25

 

12일(현지시각) 페루 수도 리마에서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 탄핵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리마/EPA 연합뉴스페루에서 첫 ‘빈농 출신 대통령’이 탄핵되며 시작된 정치·사회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부통령이 곧바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았지만, 페루 곳곳에선 탄핵 결정에 반발하는 시위가 확대되며 사망자도 늘고 있다.

12일(현지시각) <아에프페>(AFP) 통신에 따르면 페루에서 페드로 카스티요(53) 전 대통령 탄핵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져 지금까지 7명이 숨졌다. 시위가 심한 남부 일부 지역엔 비상사태가 선포됐지만, 카스티요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분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페루에선 2018년 이후 부패 등으로 5번이나 대통령이 교체됐다.

앞선 7일 페루 의회는 여러 부패 의혹을 받는 카스티요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도 가세해 전체 의원 130명 가운데 절대다수인 101명(77.7%)이 찬성표를 던졌다. 탄핵 확정 직후 카스티요의 부통령이었던 디나 볼루아르테(60)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탄핵과 함께 카스티요는 체포·수감됐다. 그는 탄핵안 처리를 피하기 위해 의회 해산을 시도했는데 여기에 반란과 음모 혐의가 적용됐다. 구금 기간은 13일까지다. 그러자 수도 리마 등 페루 전역에서 탄핵에 항의하고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시작됐다.

<에이피>(AP) 통신은 이날 “카스티요의 정치적 거점이었던 농촌 지역에서 특히 시위가 격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시골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카스티요는 2017년에 교사 파업을 주도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치러진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우파 후보를 간신히 따돌리고 당선됐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빈곤과 불평등이 더욱 심해진 가운데 ‘가난한 좌파 대통령’이 만들어갈 사회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다.

이번 시위 과정에서 사망한 17살 소년의 가족은 <에이피>에 “의회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돈 있는 이들의 목소리만 유효하다”며 “그들에게 리마(수도)의 표는 중요하지만 시골의 표는 쓸모가 없고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통신은 이런 페루 내 바닥 민심을 소개하며 이번 시위대를 이끄는 동력이 페루 사회에 만연한 ‘배제적 민주주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청렴함을 내세웠던 카스티요가 탄핵당한 이유 역시 ‘도덕적 결함’이었다. 카스티요는 취임 뒤 부패와 공무집행 방해 등 6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왔다. 아내 등 가족도 수사 대상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 불안도 이어져 올봄엔 높은 물가상승률에 항의하며 카스티요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현재 시위에 나선 페루 국민들의 요구는 전면적인 ‘정치 개혁’에 가까워 보인다. 페루의 독립연구기관인 페루연구소가 지난달 벌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카스티요에 대한 반대 여론은 61%인 반면, 의회 전체에 대한 반대 여론은 86%에 이르렀다. 또 페루 국민의 87%는 카스티요가 탄핵될 경우 새로 총선을 치르고 의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 엘리트 출신이라고 보기 어려운 좌파 부통령이 대통령으로 올라 “부패 해결”을 우선 과제로 꼽았음에도 반발이 계속되는 이유다.

혼란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카스티요는 12일 트위터를 통해 한때 ‘같은 팀’이었던 볼루아르테를 “강탈자”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는 친필 편지를 공개했다. “위대하고 참을성 있는 페루 국민들에게”로 시작하는 편지에서 카스티요는 자신을 “여러분이 16개월 전 대통령으로 뽑은 바로 그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나는) 굴욕적으로 학대받고 납치됐지만 여전히 신뢰와 분투를 받고 있다”고 썼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볼루아르테는 이날 민심을 달래기 위해 2026년으로 예정된 대선·총선을 모두 2년 앞당겨 2024년 4월에 치르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카스티요는 이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킨 우파의 침이자 콧물 같은 말”이라며 “국민들은 그들의 더러운 게임에 빠져선 안 된다”고 맞섰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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