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청년 우정 그린 '상하이 1932-34'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독립운동가 김필순의 아들이자 중국 최고의 영화배우가 된 김염, 중국 국가 의용군행진곡을 만든 천재 작곡가 니에얼. 그다지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은 일제강점기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이들을 단단한 우정으로 맺어준 건 예술과 항일정신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시절에 만나 서로의 꿈을 이루도록 북돋아 줬고, 꿈을 이룬 뒤에는 예술로 하나 돼 일제에 맞섰다. 오는 16일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음악극 '상하이 1932-34'는 실존 인물인 두 사람의 파란만장한 삶과 우정을 그렸다.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14일 프레스콜에서 "양국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라며 "중국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현지에서 초청공연을 하는 게 첫째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대본을 쓴 국민성 예술감독은 "단지 중국에 초청받기 위해 만든 작품은 아니고 지금 공연해도 무방한 시의성 있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한·중 청년 우정 그린 음악극 '상하이 1932-34'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열린 음악극 '상하이 1932-34' 프레스콜 행사에서 배우들이 공연하고 있다.
작품은 1930년대 '동양의 할리우드'라 불린 중국 상하이가 배경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가출한 김염은 극장 문지기, 청소부, 엑스트라를 하면서도 배우가 되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학생운동을 하다 수배자 명단에 오른 니에얼은 바이올린 하나를 메고 상하이로 도망 온 상태다. 우연히 만난 또래의 두 사람은 예술을 매개로 친구가 된다. 시간이 흘러 김염은 당대 최고의 배우가 돼 '영화 황제'로 불린다. 니에얼 역시 작곡가로 성공 가도를 달린다. 그러다 1932년 4월, 이들의 인생을 바꾼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다. 스물네 살에 불과한 청년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한 것이다. 충격을 받은 김염과 니에얼은 영화인을 결집해 항일운동을 시작한다. 1934년에는 김염이 배우로, 니에얼이 작곡가로 참여한 명작 항일영화 '대로'를 개봉한다. 한국과 중국의 관객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법한 이야기다. 청년들의 우정뿐만 아니라 목숨을 건 '항일'이라는 주제가 울림을 준다. 국 감독은 "김염과 니에얼을 통해 신념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며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어떤 방향성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김염 역을 맡은 백승렬은 "어떻게 내가 사랑한 친구, 아버지, 조국을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연기했다"면서 "장면마다 내가 어떤 사랑을 하는지 염두에 두고 임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중 관계가 다소 경색된 분위기에 대해 "안타깝고 속상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영화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만큼 영화적인 연출을 한 점도 눈에 띈다. 김염이 훙커우 공원으로 향하는 모습은 일인칭 시점의 영상으로 풀어내 스크린으로 보여준다. 극 중 영화 '풍류검객'을 촬영하는 장면은 라이브캠을 활용해 스크린에서도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한쪽에서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실제 모습을, 한쪽에서는 이를 담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이성구 연출은 "연극과 영화를 적절히 합쳐서 시공간을 확장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배우 10명이 80여 개 인물을 소화하는 점은 연극적 요소"라고 설명했다.
김은지 음악감독이 작곡한 넘버들은 극의 기승전결과 조화를 이룬다. 희망적인 가사와 밝은 멜로디의 '여기는 상하이', '이곳이야' 등을 통해 설렘과 꿈을 노래하고 '영화인들이여',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서는 결연한 저항 의지가 엿보인다. 특히 김염의 아내이자 니에얼의 친구 왕런메이가 부르는 '우리는 노예가 아니야'가 극적인 분위기를 이끈다. 이 연출은 "의용군행진곡은 중국 국가라 공연에 사용할 수 없어서 쇼케이스 때는 대사 중심으로 풀 수밖에 없었다"며 "본 공연에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우리는 노예가 아니야'를 삽입했다"고 설명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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