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23.04.04. 오전 3:06
방중단에 기업인들 포함시켜 “평화 위장해 자국이익 챙기기”
프랑스·스페인 등 유럽 정상들이 최근 잇따라 중·러 밀착 견제를 명분으로 방중(訪中)하고 있지만, 이들의 실제 목적은 중국과의 경제 협력 강화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평화를 위하는 척하며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피스워싱(peace washing·위장 평화주의)’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지난달 31일 베이징에서 중국 시진핑 주석을 만나고 있다./AP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오는 5일 사흘간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다. 6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3자 회동을 할 예정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방중은 2019년 취임 후 처음이고, 마크롱 대통령은 3년 5개월 만이다. 마크롱 방중단에는 에어버스·알스톰 등 프랑스 대표 기업 경영진이 포함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방중 기간에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광둥성 광저우시를 방문한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일 “마크롱 대통령이 시 주석과 회담하며 중국과 프랑스 관계의 미래 발전을 공동으로 계획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지난달 31일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났다. 산체스 총리는 방중 기간 연설에서 “스페인은 유럽에서 투자·사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 중 한 곳”이라고 강조했다. EU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의 안나레나 배어복 외무장관도 이달 중순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상반기 방중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11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자국 기업인들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EU 내부에서는 “중국이 EU의 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중국이 코로나 방역을 전면 완화하고, 지난달 시진핑 집권 3기 공식 출범 이후 경제 개방에 주력하자 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중국을 찾으며 또다시 미·중 간 줄타기 외교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EU 수출액에서 중국의 비율은 10%로 미국(22%) 다음으로 크고, 수입액에서는 중국(23%)이 미국(13%)을 크게 앞선다. 뉴욕타임스는 “유럽 국가들의 방중이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실제 목적(중국과의 교역 확대)을 숨긴 피스워싱”이라고 했다.
외교 전문 싱크탱크 유럽외교협회(ECFR)는 지난달 31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유럽은 미국과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중국에 강경하고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고, 중국과의 경제 협상을 합리화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다만 미국이 유럽에 대중 제재 동참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중·러 관계 강화가 유럽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어 유럽이 친중(親中)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적다. ECFR은 “마크롱이 대중 강경파인 폰데어라이엔과 베이징을 방문해 함께 움직이는 것은 시진핑에게 ‘유럽 각국을 대상으로 개별적 협상은 어렵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b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