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銀 찾은 1317명 갑자기 적색
공무원이 임의로 바꿔 불신 증폭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에 설치된 코로나19 검사소 앞에 지난 13일 주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방역 당국이 개인의 스마트폰 건강코드를 멋대로 조작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중국에서 건강코드는 신상정보와 이동경로, 코로나19 검사 결과 등이 담긴 방역 신분증으로 사실상 당국이 이를 통제수단으로 악용한 셈이다.
중국 허난성 정저우 기율·감찰위원회는 22일 “방역 관련 공무원 5명이 주민들의 건강코드를 빨간색으로 바꾼 것이 확인됐다”며 “시 전염병 예방통제본부의 펑모 부장을 해임하고 장모 부부장에게 경고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나머지 3명은 인사고과 벌점 수준의 가벼운 행정처벌을 받았다. 이들은 정저우 주민 446명과 다른 지역에서 온 871명 등 모두 1317명의 건강코드를 바꾼 것으로 조사됐다.
건강코드가 조작된 1317명은 부실은행으로 지정된 춘전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온라인 출금이 막히자 돈을 빼기 위해 정저우에 있는 은행 사무실을 찾았는데 갑자기 건강코드가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춘전은행 예금자들이 만든 단체 대화방에 있던 사람들의 건강코드도 빨간색이 됐다. 빨간색은 코로나19 확진자나 밀접접촉자임을 나타내는 표시로 격리 대상이다. 중국에선 특정 장소를 방문할 때마다 장소 코드를 스캔해 녹색이 떠야 출입할 수 있다.
정저우 당국은 건강코드 조작 논란이 불거지자 처음엔 기술상 문제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은행과 방역 당국 간 유착 의혹이 불거지는 등 사안이 커지자 지난 17일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중국 SNS에는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비난이 잇따랐다. 이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관련자들을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건강코드 조작 사건을 계기로 중국의 방역 정책에 대한 불신은 더 커졌다. 정저우의 한 주민은 최근 당국이 건강코드 색깔을 임의로 바꿔 법원 청문에 출석하지 못했다며 허난성 위생건강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그는 지난 9일 정저우에 도착해 두 차례 PCR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나흘 뒤 법원을 찾았지만 건강코드 색이 바뀌어 들어가지 못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