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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2022-12-20 10: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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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 고통 우리의 책임”…네덜란드, 150년 만에 공식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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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 고통 우리의 책임”…네덜란드, 150년 만에 공식 사과

입력2022.12.20. 오전 9:19   수정2022.12.20. 오전 10:29

 

노예 후손들 앞에서 “과거 지울 수 없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19일 헤이그 국립 박물관에서 과거 네덜란드가 자행한 노예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저는 오늘 네덜란드 정부를 대표해 과거 우리 정부의 행동을 사과합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17~19세기 네덜란드가 부를 쌓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노예무역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뤼터 총리는 19일 수도 헤이그에 있는 국가기록관에서 “네덜란드 정부는 노예가 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겪은 엄청난 고통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고 네덜란드 총리실이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네덜란드가 지난 수세기 동안 노예제를 가능케 하고, 장려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해왔다. 사람들이 네덜란드란 국가 이름으로 상품화되고 거래됐고 착취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는 지울 수 없고 오직 마주할 뿐”이라며 “노예제가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가장 명확한 개념으로 인정돼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이날 총리의 연설은 방송을 통해 생중계됐으며 연설 현장에는 노예제 피해자 후손들이 자리했다. 뤼터 총리는 고통스러운 역사를 반성하기 위해 내년 7월부터 노예제 기념일을 지정해 기리자고 제안했다. 네덜란드의 모든 해외 식민지에서 노예제가 공식 폐지된 것은 1863년 7월1일이다.

이날 사과는 네덜란드가 과거 제국주의 시대 때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 약 60만명을 노예로 착취한 데 대한 사과다. 이미 네덜란드 주요 도시의 시장들이 개별적으로 사과했지만,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그동안 네덜란드 ‘황금 시대’ 부의 원천이었던 노예무역에 대해 “깊은 유감” 정도만 표현해왔다.

역사학자들은 네덜란드인들이 처음 노예제를 운용한 시기를 1634년으로 보고 있다.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친 제국의 전성기에 네덜란드 상인들이 최대 60만명의 아프리카인을 납치해 노예로 삼아 남미 카리브해 인근과 인도네시아 등 자국 식민지로 주로 보냈다. 노예로 붙잡힌 이들은 대규모 상업 농장인 ‘플랜테이션’ 농장의 노동력 등으로 착취당했다.

이번 조처는 지난 2020년 설치된 국가 자문 위원회의 결론에 따른 것이다. 자문위는 네덜란드의 노예제는 공식적인 사과와 재정적 배상을 할 만한 반인륜적 범죄였다고 결론지었다. 네덜란드 정부는 역사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해 2억 유로의 교육 기금을 설립하기로 했다. 하지만, 피해자 후손에 대한 개별 배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총리의 사과는 피해자 후손 단체들과 관련 국가들로부터 비판도 받고 있다. 이날 사과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식민지 시대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앞서, 노예제 관련 시민단체들은 네덜란드 노예제 공식 폐지 150주년이 되는 내년 7월1일에 남미 수리남에서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네덜란드는 1863년 7월1일에 식민지던 수리남을 포함한 모든 국내외 영토에서 노예제를 폐지했으나, 수리남에서 노예제 완전 폐지는 과도기 10년을 거쳐 1873년에 완료됐다. 시민단체들은 네덜란드 총리가 아니라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배상 없는 사과는 불충분하다는 주장도 많다.

네덜란드령으로 카리브해 있는 섬인 신트마르턴의 시민단체 활동가 로다 애린델은 영국 <가디언>에 “우리는 진정한 배상적 정의를 위해 수백 년을 기다려왔다. 조금만 더 기다려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남미 수리남의 노예제 명예회복 재단에서 일하는 로이 카이쿠시 그로엔버그는 “네덜란드 정부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마치 새 식민지를 다루는 듯하다”면서 후손들과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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