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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기밀문서 속 ‘핵 사용 조건’ 보니…“영토 침범당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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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4.02.29. 오후 4:33  수정2024.02.29. 오후 4:45

 

파이낸셜타임즈, 러군 문서 입수

튀르키예 해군의 잠수함과 헬기, 수상함이 26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앞바다에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합동군사훈련인 ‘다이내믹 만타 24’에 참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주요 강대국과 전쟁 초기에 전술핵을 사용하는 군사 연습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는 러시아군 기밀문서를 입수했다고 2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기밀문서는 2008년에서 2014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워게임 시나리오와 핵무기 사용 작전원칙을 논의한 해군 간부를 위한 프레젠테이션 문서 등이 포함된 군사파일 29개로 이뤄졌다. 문서에는 핵무기 사용 기준을 적이 러시아 영토를 침범했을 때, 또 잠수함 발사 전략탄도미사일의 20%가 파괴되었을 때 등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베를린의 ‘카네기 러시아 유러시아 센터’의 책임자 알렉산데르 가부데프는 “이런 문서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라며 ”이들 문서는 러시아가 재래식 수단으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핵무기를 쓸 수 있는 문턱을 매우 낮췄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신문은 이번에 입수한 문서가 10여년 전 것이지만 그 내용은 지금도 러시아군 작전 교리로 유용할 것이라고 전문가를 인용해 전했다.

러시아는 최근 들어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에 힘을 쏟고 있으며, 이런 흐름은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문서는 동부 지역에 주둔한 러시아군이 중국의 침공을 가정한 시나리오에 따라 연습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 문서에선 러시아군이 “남쪽”의 2차 공격을 막기 위해 전술핵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남쪽은 중국을 뜻하는 것으로 중국의 공격을 가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문서는 “적이 두번째 단계의 병력과 장비를 전개하고 더 진격해오는 경우에, 최고사령관의 명령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또 다른 해군 간부용 프레젠테이션 문서에는 잠재적인 핵공격의 기준에 대해 개괄하고 있다. 여기에는 적의 러시아 영토 상륙과 국경을 책임지는 군대의 패배, 적의 임박한 재래식 무기 공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슬라이드 자료에는 핵무기 사용의 조건으로 러시아군이 여러 복합적인 변수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보아 주요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없는 경우를 기술하고 있다. 또 러시아의 잠수함 발사 전략탄도미사일의 20%가 파괴되었을 때, 핵추진잠수함 30%가 파괴되었을 때, 순양함 세 척 이상, 비행장 3곳 이상 또는 해안 지휘센터가 동시에 타격을 입었을 때 등도 잠재적 핵 사용 조건으로 거론되었다.

영국의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잭 웨틀링은 “이들 문서가 핵무기 사용의 일반적인 규정집이라기보다는 핵 사용 조건이 되었을 때 러시아군이 해야 할 행동요령과 절차를 연습하고 숙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군 단위에서는 정책결정권자들이 핵무기를 사용할 신뢰할 옵션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러시아연방의 핵억제 정책에 관한 기본 원칙’을 보면, 러시아 핵무기 사용 조건으로 △적군이 러시아 영토 또는 동맹국에 핵무기나 대량 살상 무기를 사용할 경우 △러시아 공격용 탄도미사일이 발사됐다는 믿을 만한 정보를 입수한 경우 △러시아의 핵심 시설이 공격 당해 핵전력 대응 행동이 약화될 경우 △러시아가 재래식 무기 공격을 당해 존립 위험에 직면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파이낸셜 타임스가 입수했다는 기밀 문서에 대해 “(러시아군의) 핵무기 사용을 위한 조건은 절대적으로 투명하며 문서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 신문이 입수했다는 기밀문서에 대해선 “신뢰성을 강력히 의심한다”고 사실상 허위문서라고 주장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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