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 해외의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해외소식2024-03-04 08:53:36
0 0 0
전철역에 아이 맡기고 출근… 日 ‘900원 보육혁명’
내용

 입력2024.03.04. 오전 3:06

 

저출생 극복한 나가레야마市
 

일본 지바현 나가레야마시에 있는 ‘보육 스테이션’에서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나가레야마시는 도쿄로 가는 주요 전철역에 이런 보육 스테이션을 설치해 부모들이 출퇴근길에 아이들을 맡겼다가 데려갈 수 있도록 했다. 나가레야마시는 보육 스테이션, 어린이집 등 인프라 확대로 최근 6년 연속 일본 내 인구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교도통신 연합뉴스
지난 26일 오전 7시 20분, 도쿄 도심에서 약 25km 떨어진 지바현 나가레야마시(市)에 있는 오타카노모리역(驛). 20m쯤 떨어진 라이프가덴빌딩 3층의 ‘오타카노모리 보육 스테이션’에선 1, 2분마다 ‘오하이오 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 들렸다. 20여 분 동안 아빠·엄마들이 각자 한두 명의 아이를 안거나 손잡고 끊임없이 들어왔다.

아이를 맡긴 부모들은 역과 바로 연결된 통로를 걸어 전철에 몸을 실었다. 이곳은 일반 어린이집과는 다른 ‘보육 스테이션(정거장)’이다. 부모 출근이 끝나는 오전 8시 아이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나가레야마시에 있는 102곳 어린이집으로 출발했다. 하루를 보낸 아이들은 오후 4~6시엔 다시 ‘보육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전철로 퇴근한 아빠·엄마를 만나 집으로 간다.

도쿄 베드타운인 나가레야마시는 저출생으로 고민하는 일본에서도 매년 인구가 늘고 있는 도시다. 2022년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 집계에서 6년 연속으로 772개 시 가운데 인구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작년 인구는 20만9237명으로, 10년 전인 2013년의 16만8024명보다 약 4만명이 증가했다. 0~9세 아이는 같은 기간 1만6194명에서 2만4169명으로 늘었다. 합계 출산율은 1.56명으로, 일본 평균인 1.26명을 웃돈다. 일본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는 이 도시의 인구가 2050년엔 24만1000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나가레야마시의 마케팅과 가와지리씨는 “지방정부의 역할 중에서도 보육 시설은 가장 기본이면서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라고 말했다.
 

그래픽=백형선
나가레야마시는 2010년 17곳이던 어린이집을 작년까지 102곳으로 6배 늘렸다. 2017년엔 어린이집 대기 아동 수 ‘제로(0명)’를 기록했다. 아이 맡길 어린이집이 부족해 맞벌이 부부가 고민하는 일이 이 도시에선 없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 입장에선 원하는 어린이집이 멀리 있거나 집 주변 어린이집은 일찍 정원이 차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나가레야마시는 도쿄로 가는 주요 전철역 2곳에 ‘보육 스테이션’을 설치해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역에 ‘정거장 어린이집’을 만들어 출퇴근길에 바로 아이들을 맡기고 찾아오게 했다. 집이 어린이집에서 500m 이상 떨어졌으면 보육 스테이션을 이용할 수 있다. 요금은 한 달 2000엔(약 1만8000원)으로 저렴하다. 퇴근이 늦으면 보육 스테이션에서 저녁 8시까지 아이를 맡아준다. 부모와 아이에게 저녁 식사도 제공한다. 밥값은 400엔(약 3600원)이다. 오타카노모리 보육 스테이션의 관계자는 “일하는 엄마가 늦게 퇴근하면 아이 밥을 챙겨주기가 쉽지 않은데 ‘따뜻한 저녁 한 끼 못 차려줬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우리가 대신 ‘집밥’처럼 차려준다”고 말했다. 일본 주간지 다이아몬드는 “보육 스테이션은 부모가 아침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하는 스트레스와 퇴근이 늦으면 데려오기 힘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했다”며 “회사 출퇴근 시간까지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나가레야마시의 성공 사례는 주변 도시로 확산해 현재 일본 35개 도시가 전철역 바로 옆에 보육 스테이션을 만들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어떨까. 나가레야마시는 어린이집에 이어 ‘초1의 벽’도 넘으려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어린이집 때보다 늦게 학교에 가고 일찍 오는 경우가 많다. 맞벌이 부부는 아침 1시간, 오후 3~4시간 정도 아이를 맡길 곳이 필요하다. 나가레야마시는 시내 17개 모든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교실을 1~3곳씩 운영하고 있다. 오타카소학교의 경우 희망 학생이 많아 학교 내 방과 후 교실 1곳과 학교 밖 2곳을 두고 협력한다. 예컨대 일주일에 2번은 학교에서, 3번은 민간 학원에서 방과 후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협력 시스템을 통해 부모가 원하면 오후 8시까지 아이를 맡아둔다. 현재 이 도시는 초등학교 1~3학년생은 희망하면 전부 대기 없이 방과 후 교실을 이용할 수 있다.

출산율이 오르자 도시 모습도 변하고 있다. 0~9세 어린이가 2만4000명에 이르면서 인구 20만 소도시에 소아과 병원만 30여 곳이 들어섰다. 경쟁이 붙으면서 주말이나 한밤에 운영하는 소아과도 생겨났다. 젊은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갈 만한 공원과 놀이터도 늘었다. 이날 오타카노모리역 근처 니시하쓰이시 공원에는 어린이집에서 나온 아이들 50여 명이 뛰놀고 있었다. 공원 모래밭에선 노란색 모자를 쓴 10여 명이 모래성을 쌓았고, 분홍색 모자의 아이들은 술래잡기를 했다. 옆에선 70대의 어르신 20여 명이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인 30대 가루베씨는 “아이들이 놀이터만 가도 또래 아이들이 많아 잘 어울려 논다”며 “셋째를 낳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지바현(나가레야마시)=성호철 특파원 sunghochul@chosun.com

기자 프로필